살인으로 발현된 모정.
무엇이든 예의주시 될 수 있다면..
삶은 덜 흥미롭겠지만 지금의 편안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의 경계에서 흔들거리는 삶을 바라보겠는가. 그 끈을 놓아주겠는가.
무엇이든 하나의 선택이 극적이다.
영화 ‘마더’는 너무나 원했고 받고 싶던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어머니.
그녀는 자식을 지키고 싶던 짐승과 같은 본능을 가진 강인한 어머니의 모습뿐 아니라,
나약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인간의 모습도 보여준다.
‘세상에 너와 나 둘 뿐…’ 이 주는 외로움의 이미지는 때로는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그 무엇이다.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다듬으며 지난날 해 온 나의 지진한 과정처럼.
‘maya에서 mov 프리뷰는 어찌 걸지..
avi로 출력 후, 편집프로그램에 가져가서 convert 해야 하나..
avi로 뽑고 quicktime 플레이어에서 불러다 보면 되지 않나…>_< ’
그 지진한 아웃풋의 과정을 떠올리는 불편함.
그와는 또 다른, 생살을 도려내는 어미 본능을 충실히 수행하며
항상 눈가가 촉촉한 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그 불편함.
영화는,
'당신은 그런 어머니가 될 수 있는가, 아니 그런 어미가 되어야 한다.'
와 같은 강조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하지는 않는다.
물론 어미 본능은 자식으로 향하는 하나의 길이다. 그 길에서 이전에는 쉽게 접하지 못했던 상황을
주고 강한 호기심을 자극하며, 내키지는 않지만 지켜는 보고 싶은 ‘특별한 불편함’을 만든다.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마더의 오프닝과 엔딩 시퀀스.
오프님 속 도준의 엄마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표정으로 화면을 응시하며 춤을 춘다.
하지만 당당히 존중받아야 할 ‘마더’의 춤사위는, 엔딩에서는 햇빛 속에 실루엣만 비치며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춤과 노래로 신께 고하며 그에게 다가가는 축제처럼 보인다.
그렇게 마더는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자신의 이름이 소실된 누군가의 보호자가 아닌
존중받아야 할 성스런 ‘마더’의 명예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