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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 앤드 어웨이(Far And Away.1992)

by 안녕스폰지밥

열 살 무렵, 집에 'VHS 데크'라는 게 생겼다.

'Gold Star'

신기하게도 테이프를 먹었다 뱉어 내기를 반복하는

이 기계의 생명 아닌 호흡에 귀 기울이던 시간이 기억에 있다.


'이제는 TV에서 주말의 명화만을 주입식으로 보지 않아도 되는구나.

원하는 영화를 찾아볼 수 있어.

우리 집에는 "비디오"라는 영화 보는 기계가 있다~ 와~~'


그렇게 해서 고른 첫 영화는 '마이키 이야기 2'였다.

공중파든, 케이블 방송이든, 웹콘텐츠로든

우후죽순 영화가 영화라는 의미 없이 넘쳐나는 때가 아니었기에

영화 선택과 같은 중요한 결정들은 언니와 오빠에 의해, 그리고 TV에서 보여주는 예고편 영상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렇게 두 번째로 본 영화이면서 그 후 비디오로 TV로, 세 번은 더 보고 설레었던 기억 속에

'파앤드어웨이(Far and Away)'라는 영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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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파 앤드 어웨이 가 무슨 뜻이야?"

"멀고도... 먼?"

언니는 초등학생에게 단순 명료하게 설명해 주었다.

영화를 본 후 영화와 관련된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했고, 상상하게 되었다.

영화의 주인공인 탐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 촬영당시 부부였다는 개인사로 인해 더 완벽해졌던 설렘.

우리 집 1층에 있던 비디오 대여 가게에 그 영화의 포스터가 붙어 있던 시간 동안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반드시 한 번씩 걸음을 멈추고 설렘의 스틸샷을 마음에 찍어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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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음악.

처음 접하는 매력적인 미디어 콘텐츠에서 느끼는 낯섦, 호기심.

그리고 나를 위해 존재한다 느끼게 하는 기호품을 만났을 때의 설렘, 친근함.

그 과정을 한 해, 한 해 밟아 가며 느끼고 울게 한 문화 충격의 향연은

그 시절을 온전히 박제하고 싶을 만큼 아련하게 멀어져 가고 있다.

파 앤드 어웨이는 그 과정의 앞섬을 여미는 영화이기에 더욱 애틋하다.

어른이 되어가며 시시때때로 감정의 골에 차 들어오는 성에 어린 허무가

현재라는 시간에서 새삼 더욱 서늘하게 느껴질 때마다

다시금 과거의 따뜻함을 채근하고 보채게 한다.


그래서 이 영화를 찾아보았다. 볼 때마다 지루하다는 느낌은 없다.

그 친근함과 위로가 되는 희망의 메시지까지 나를 위해 있어 주니까.

미국 오클라호마의 목초지에 터를 잡고, 여전히 티격태격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사랑하며 살고 있을 죠셉과 크리스틴.

숨 막히는 코르셋을 벗어던진 영주의 딸과, 자신의 땅을 얻기 위해 깃발을 들고 전력질주하던 청년은

더 넓고 자유로운 땅에서 평등한 사랑을 하고 있겠지.

영화 속에서 자신들의 땅을 찾아 심히도 넓은 땅을 걸어가던 긴 행렬과

그만큼의 광활함을 포용하던 하늘의 풍경은

처음 영화가 준, 일렁이는 판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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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left behind everything he knew

for the only thing he ever wa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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