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간다는 것은
길을 잃는 과정의 연속이다
누구나 길을 걷다 보면
길을 잃게 된다
길을 잃지 않는 것은
두 가지 뿐이다
가야할 길이 없다거나
다른 누군가가 닦아 놓은
길을 질문 없이
따라가는 경우뿐이다
밤이 깊어간다. 밤이 깊어갈수록 사람의 소리는 사라지고 자연의 소리가 더욱더 또렷하게 밝아온다. 바람도 소리가 있고 나뭇잎도 소리가 있다. 바람의 소리는 마치 영혼의 울림처럼 깊고 고요하며 은은하게 마음을 적시는이슬비처럼 곱고 투명하다. 바람의 소리는 귀로 듣기보다 마음으로 듣고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시각과 청각, 촉각의 뒤틀림 속에 머무는 바람의 영혼 속을 잔잔하게 더듬다 보면 그 속엔 잃어버린 추억들이 하나둘씩 돋아나빈 자아를 따뜻하게 어루만져 준다.
밤이 깊어간다. 보이는 것이 어둡고 침침해질수록 눈은 밝음으로부터 멀어져 어두운 내면으로 향하게 된다. 시각이라는 것은 본래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자 할 때 마음과 통하게 된다. 눈앞에 보이는 현상적 실체에만 집중할 경우, 그 안에 갇혀 있는 본질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가끔은 밝음보다 어둠이 필요한 것이다. 어둠속으로 깊게 들어가 보면 알게 된다. 빛나는 것보다 빛나지 않는 것 속에 존재하는 가치에 대해서.
합천 해인사, 스무 살 무렵부터 꼭 한번은 가보고 싶었던 동경의 공간으로 떠난다.
욕망을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욕망을 충족시키는 일은 늘 달콤하고 유쾌하며 짜릿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린 삶의 대부분을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산다. 공부를 하고 취직을 하고 돈을 벌고 권력을 얻고자 하는 모든 것이 욕망의 충족과 연결된다. 그러나 이러한 욕망의 충족에는 한계가 있다. 석가모니는 보다 엄격하게 인간의 욕망은 마치 바닷물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더욱더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기에 욕망으로부터 해방된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했다. 그러나 욕망 충족이 쾌락이 아니라 더 깊은 고통을 줄 수 있음을 안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욕망 결핍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깊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늘 분주하게 살고 있다. 그러나 석가모니의 말처럼 인간의 욕망에는 끝이 없다. 정말 채우면 채울수록 더 큰 것을 바라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다. 따라서 욕망 충족에는 반드시 절제가 필요하다. 절제가 함께 하지 않는 욕망 충족은 결국 그 욕망으로 인해 삶을 파멸로 이끌 수도 있다.
수행의 길을 떠난다. 현실적 욕망을 모두 끊을 수는 없어도 최소한 현실적 삶 가운데 욕망의 바다에 미친 듯이 뛰어들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욕망을 점검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합천 해인사, 템플스테이
이 시간만큼은 온전하게 밖의 세계와 차단하고 내 안의 나를 만나본다. 떠남은 꼭 무언가를 얻지 못해도 좋다. 어쩌면 처음부터 무언가를 얻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따라서 떠남은 그 자체가 바람의 인사처럼 아무런 의도가 없는 발걸음이어야만 한다. 그리고 되도록 많은 것을 내려놓고, 주변을 벗어나 순백의 자연과 나를 온전하게 빈공간으로 초대해야만 한다.
한 평 남짓한 공간에 책상과 옷장, 침대 하나가 있다. 충분한 공간이고 편리한 시설이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모든 것이 완벽하다. 넓은 마당과 깨끗한 공간, 그리고 더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정적, 이 정도면 충분히 답답한 습기(習氣)를 제거하고 내면의 나와 마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무실에서 내어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잠시 사찰의 역사와 템플스테이 기간 동안 지켜야 할 절차와 의식 등을 숙지하고 다시 방안으로 들어간다. 사립문 사이사이로 문풍지를 통과한 따스한 햇살이 방바닥에 구름 같은 흔적을 남긴다. 그 햇살이 너무 따뜻해 햇살 아래 몸을 눕힌다. 사방을 주시하면 주시할수록 사방은 말이 없고 내면의 마음만이 움직인다. 천장 위에 하나둘씩 새겨지는 지난날의 성찰과 반성, 그리움을 뒤에 남긴 채 책상 위에 꽂혀있는 불교 서적 몇 구절 읽어볼까 하다가 다시 꽂는다. 많이 읽었고 많이 사유했으나 늘 삶은 위태로웠고 공존은 어려웠다. 일상은 늘 책에 나오는 것처럼 쉽게 전개되지 않았다. 살아가는 삶은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하여 그 모습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일까? 언젠가부터 실질적인 내면의 울림을 전하지 못하는 책이 지겹고 답답하게만 다가왔다.
겨울이 다 지나지 않은 계절이라 그런지 찬바람이 문틈 사이로 삐죽삐죽 들어온다. 바람이 상쾌하다.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가본다. 마당에 나가 아무 말 없이 걸어본다. 가끔 어디에선가 사찰을 찾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어느 스님의 불경 소리가 귀에 들려온다. 그리고 옆 계곡에서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마치 호흡의 숨결처럼 잔잔하게 가슴을 적셔온다. 시냇물 소리는 사람의 기운과 함께 조응하는 소리라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이 편하다. 듣기 좋은 소리가 있고 듣기 싫은 소리가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연의 소리는 대부분 듣기가 좋다. 이건 아마도 인간 또한 자연의 한 부분으로서 자연의 생명체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마당 한 편엔 수백 년을 살아왔을 나무 몇 그루가 보인다. 나무의 아래에서부터 위까지 멀리 쳐다본다. 나무를 보다 보면 나무 속 하늘이 보인다. 아무런 규제 없이 세월이 허락한 시간 속에서 자신의 몸을 키워 온 나무는 말이 없다.
낯선 한 사람이 또 이곳을 찾아 올라온다. 한 손엔 캐리어를 끌고 등엔 가방을 메고 힘겹게 올라온다. 짐이 꽤 많은 거 같다. 중년의 낯선 여인, 갑자기 그 여인의 삶이 궁금해진다. 적어도 아이가 있다면 대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저 여인은 왜 추운 겨울 홀로 이곳에 오게 된 것일까? 바람에 날리는 머릿결이 부산하게 움직인다. 머릿결 사이사이로 수줍은 듯 피어나는 눈빛이 나처럼 초행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여인의 모습에 잠시 시선이 간다. 평소에는 별로 관심 갖지 않을 모습인데, 낯선 곳에서 좀처럼 인적이 보이지 않는 곳이어서 그런지 시야에 다가오는 모든 것이 새롭고 호기심 가득 다가온다.
바람이 강해진다. 가볍게 차려입은 옷깃 사이로 조금씩 한기가 서려온다. 다시 방안으로 들어간다. 앞으로 이곳에 머무는 동안, 밖의 세상과는 일체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고 싶다. 여기에 머무는 기간이 단 며칠이라 할지라도 타자와의 관계를 끊고 그 끊어진 공간 속에서 독자적 존재로 홀로 선 나를 맞이하고 싶다.
여섯 시, 저녁 공양을 하고 약 30분간 진행되는 불전사물을 보러 간다. 해인사 대웅전 아래에 있는 법고, 범종, 목어, 운판이 전하는 세상을 깨우는 울림의 소리를 들어본다. 범종으로 시간을 알리고 법고로 축생을 비롯한 만물을 깨우는 시간, 법고의 웅장함이 사찰 안으로 깊고 은은하게 퍼져간다. 모여든 사람들의 눈빛엔 뭔가 모를 장엄함과 쓸쓸함이 느껴진다.
불전사물을 보고 저녁 예불을 보러 대웅전으로 향한다. 주지스님이 들려주시는 반야심경 앞에 잠시나마 고민과 걱정을 털어본다. 스님이 전하는 불경과 목탁 소리는 인간의 뇌와 감각을 깨우는 작용이 있다. 반야심경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으나 그 말이 전하는 가락과 울림 속에는 단순한 의미 전달 이상의 효과가 전해진다. 가만가만 스님의 음성과 목탁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내 마음 속에 고요한 목련 한 송이 피우는 것 같은 고요의 경지를 맞이하게 된다.
예정된 일과를 마치고 다시 혼자의 공간인 방안으로 들어간다. 이미 산 속은 어둠으로 가득 차 별빛과 달빛 몇 점만 보일 뿐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다. 어둠 속에서 시선이 향하는 곳은 별과 달 뿐이다. 방안으로 들어간다. 앞으로 이곳에서 며칠 간 긴긴 고독과 함께 나를 찾는 여행을 지속해야만 할 것이다. 물론 이 기간이 나에게 무엇인가 직접적인 깨달음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정신없이 달려온 삶 앞에 브레이크를 밟고 지나온 삶을 되돌아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시간은 충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불을 켜지 않고 방안의 어둠을 온전하게 맞이한다. 방안과 방 밖의 경계는 바람의 감촉뿐이다. 삶도 어쩌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빛을 어떻게 밝히고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될 것이다. 내 마음의 빛에 따라 세상은 밝은 빛이 될 수도 있고 어두운 빛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밤은 깊어가나 잠이 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도 자연의 순리대로 맞이하고 싶다. 내일의 일정이 없으니, 자연의 순리대로 잠이 오지 않으면 오지 않는 대로 이 긴긴 밤을 편안하게 허락하고 싶다.
어둠 속에 있다 보면, 밝음 속에 묻혀 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어릴 적 추억들도 생각나고, 한때 삶의 가장 큰 기쁨과 소망을 허락했던 사람들의 표정과 웃음, 이야기 등이 인식의 차원을 넘어 감성의 깊은 내면 속으로 울림을 전한다. 일상 속에서 무언가에 쫓겨 살다 보면 지나간 관계는 그저 추억으로만 남겨두려고 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왜냐하면 하루하루를 지탱하는 것조차 버겁기 때문이다. 따라서 살아가다 보면 일상에 묻혀 좋은 기억, 행복한 만남, 풋풋한 추억 등은 지난 시간 속으로 빠르게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해가 떠오른다. 문풍지 사이로 다시 아침햇살이 밝아온다. 이제 기록을 멈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아무것도 없는 마음으로 남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이곳의 의미는 두고두고 일상을 걸어가면서 다른 의미로 피어나게 될 것이다. 너무 많은 것을 찾고 너무 많은 것을 말하려다 보면 진정 아무것도 담을 수 없기에 템플스테이의 나머지 기억은 묵언으로 남겨둔다.
떠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수행의 길이 된다
일상의 관계를 벗어나
무작정 어딘가로
자신을 내던진다는 것은
자신의 빈 마음과
마주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