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한 역설

by 문객

사랑이라는 두 단어만큼

생에 힘을 불어넣어 주고

생의 가치를 되새겨주는 것은

없다

그러나 그만큼

강력하다는 것은

그만큼 깊은 외로움과

공허함을 가져다준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신이 곁에 있어도 내 삶은 불안하다. 따스한 당신의 숨결과 온정이 불안한 내 마음과 정신을 어루만져 보려고 하지만 흔들리는 마음에 늘 평온한 나를 찾는 것은 한없이 어렵고 힘들다. 내 눈빛 속에 희망을 말하는 너의 눈빛만큼 나도 너에게 희망과 사랑을 전해주고 싶지만, 불안은 온전하게 너를 담지 못한다. 쉼 없이 너의 모든 것을 내 안에 품고 너의 순백의 마음에 내 순백의 마음을 함께 묻고 싶지만 이러한 소망은 늘 소망에만 그칠 뿐 합일을 이루지 못한다.



다만, 인식의 범위를 미처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동물을 접하거나 단순한 자연적 현상을 마주할 때면 이러한 성찰의 작업은 비교적 쉽게 이루어진다. 흔들리는 나뭇잎 하나, 불어오는 바람 한 조각, 붉게 물들어가는 저녁 풍경 등을 바라볼 때면 잠시나마 순백의 마음을 접하여 내 온 마음을 그대로 투영하게 된다. 그 순간만은 불안과 흔들림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고요하고 따스한 긴 침묵이 온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져 준다. 그러나 그런 가치만을 너무 중시하다 보면 결국 외톨박이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린 결국 사람 속으로 들어가 사람과 함께 공존하며 나를 찾는 방법을 모색해야만 한다는 당위적 의무감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사랑한다고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랑한다고 영혼이 늘 함께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다만 하나의 투영된 영혼을 갖고자 하는 소박한 바람일 뿐이다. 사랑에 금이 가는 이유 또한 상대방의 영혼을 내 영혼으로 일체화시키려 하거나 내 마음대로 상대방의 눈빛을 바라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사랑할수록 정신은 더욱더 공허하거나 멀어질 수 있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당신과 내가 인간으로서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숙명이기 때문이다.



사랑 앞에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자. 너 아니면 내가 존재할 수 없다는 마음은 그저 욕망이 잠시 붙잡고 싶은 집착일 뿐이다. 실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당신의 영혼이 아니라 당신의 습관이 만들어 놓은 삶의 방식일 뿐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혼의 일부를 기대는 것이자 삶의 외형적 짐을 일정 부분 나누어 짊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가까운 사람일지라도 내 온 마음을 제대로 내비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애써 그럴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내 온 마음을 다 내비친다고 해서 그 온 마음이 상대방에게 온전하게 담겨질 수도 없기 때문이다.



사랑할수록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 그 거리는 담지 못한 서로의 빈자리를 스스로가 채울 수 있도록 여백을 주는 것이다. 그러한 여백이 없으면 언젠가 그 사랑은 결국 공허함과 쓸쓸함에 묻혀 부서질지도 모른다.



사랑은 결국 나를 온전하게 드러내 줄 수 없다. 사랑함은 책임과 감정으로 얼룩진 관계는 말할 수 있어도 홀로 선 단독자로서의 나를 쉽게 드러내 주지는 못한다. 사랑함에 빠지는 이유는 결국 자아 찾기가 가져다주는 두려움과 외로움을 짊어지고 나아가는 게 버겁고 힘이 들기 때문에 사랑함에 빠지는 것이다. 사랑의 초반기에 우리를 맞이하는 감정은 강렬하다. 육체와 정신이 요동치는 사랑함은 마치 그 어떤 장애물도 다 헤쳐나갈 것 같은 열정과 힘을 준다. 그러나 모든 사랑은 다 식게 마련이다. 영원할 수 있는 사랑은 없다. 영원하다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책임과 헌신을 다하겠다는 마음이지, 처음의 그 마음처럼 늘 영원하게 불타오를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랑이 식어갈 무렵 다시 찾아오는 것은 결국 자신의 모습밖에 없다. 그래서 우린 늘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모습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자신의 모습을 찾지 못한 사랑은 쉽게 타올라 쉽게 부서지기 마련이다. 나를 알지 못하는 포용은 참된 포용이 될 수가 없다.


나는 그 누구보다 간절하게 사랑을 원한다. 사랑에 대해 그 어떤 부정적 마음을 지니고 싶지도 않다. 다만, 사랑이 전하는 울림 또한 어쩌면 관계적 존재로서 존재가 선물하는 작은 여백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사랑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그 여백의 공간 너머 상대방을 그 자체로 온전하게 담아낼 수 있는 ‘참된 나’를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사랑은 신이 주신 가장 큰 선물이자 가장 큰 고통이다. 세상의 모든 관계는 사랑으로부터 시작해 미움을 낳고, 원망을 쌓아가면서, 또다시 사랑으로 종결되거나 극단적인 무관심, 그리움, 가혹한 죽음으로 끝나기도 한다. 사랑은 단순하게 관계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두 사람 간의 감정적 교류를 넘어서 욕구, 권력, 부 등 다양한 인간의 문화적, 사회적 습성과도 연결된다.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 하는 것도 맞지만 사회적, 문화적 습성에 잘 어울리기 때문에 만나고 사랑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무엇이 맞는지는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누군가는 감정보다 조건을 먼저 앞세우기도 한다. 이러한 조건이 사랑의 기준이 되는 이상, 사랑에 관한 순백의 논증은 어쩌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랑과 결혼이라는 연결고리는 자본과 권력이 만들어낸 계약적 산물의 허상일지도 모른다. 연봉의 액수, 직업, 아파트 유무 등이 결혼의 객관적 기준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명백한 사실이 되고 이 사실에 맞춰 누군가에게 좋아하는 감정을 느끼고 그 사람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의 한 구성원으로 존재한다는 것, 그 속에 이미 사랑은 존재의 참된 공존을 위태롭게 하는 함정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사랑은 낯선 두 사람이 만난 영혼의 몸부림이자, 현실적 삶에 잘 순응해 나아가기 위한 계약적 감정의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다만, 이상과 현실을 동시에 공존하는 현실 속에서 보다 어느 것을 좀 더 중시하며 살아가느냐에 따라 사랑이 주는 각자의 의미가 달라질 것이다.



참된 사랑은 참되게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참된 사랑이 가능한 것이다.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타인도 온전하게 사랑할 수가 없게 된다. 하지만 자기의 가치를 알고 자기의 참모습에 대해 참된 사랑의 가치를 느끼는 사람은 결국 타자에게도 최소한 그러한 사랑의 몸부림을 내비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랑함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외로운 자아 찾기의 과정속에서 주어지는 위로와 안식일 것이다. 즉 사랑함 그 자체가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말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홀로 선 누군가가 다른 한 사람을 가슴에 담고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은 삶이 전하는 소소한 행복일 뿐이다. 사랑이 결코 삶의 모든 것을 규명해 주지는 않는다. 가끔 우린 사랑이야말로 이 세상의 모든 관계와 인간됨의 본질을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지니지만 이성 간의 만남을 통한 사랑은 결국 그 사랑의 끝자리에 도달하게 되며, 그 끝자리에서 마주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시인의 말처럼, 참된 사랑은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홀로 선 두 사람이 만나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데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만이 걸을 수 있는 삶의 길이 있다. 때때로 부모가 자식에게 행하는 헌신적, 희생적 사랑을 연인 간에 바라고 소망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사랑은 자아의 외로움을 채우기 위한 몸부림에 머물고 말게 된다. 그리고 사랑하는 두 사람의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랑은 절대 헌신이나 희생이 되어서는 안 되고 서로의 발전을 위한 몸부림이 되어야 한다.



일찍이 에릭 프롬은 이러한 사랑의 관계를 즉시 하면서 보호, 책임, 존중, 지식 등 사랑에 필요한 네 가지 요건을 제시했다. 특히, 존중이란 상대방을 나의 필요로 이용하려는 것은 단순한 욕망과 집착이지 사랑이 아니라는 점을 프롬은 강하게 언급했다. 즉 있는 그대로의 한 존재를 동반자적 위치에서 늘 관심 있게 지켜보면서 그의 삶이 더욱더 빛나도록 조력자가 되어 주는 것이 참된 사랑이라고 본 것니다.


이상적 사랑은 때때로 죽음마저 승화시킬 수 있는 힘을 주지만, 현실적 사랑은 결국 다양한 조건, 관계, 환경 등에 제약을 받으며 결국 사랑이 현실이라는 깨달음을 전해주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적 사랑이 빛나기 위해서는 결국 자기의 참된 모습을 바탕으로 현실적 제약을 이상적 사랑의 마음으로 포용할 수 있는 여백과 포용이 필요한 것이다.



너를 사랑한다는 것이

나를 사랑하지 못해

너에게 향하는 것이라면

그 사랑은

결국 큰 부담과 상처만 안고

부서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사랑이 너를 향하기 전에

나를 먼저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그 사랑은 오래도록

둘 곁에 함께 할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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