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부, 경쟁

by 문객

부를 얻는다는 것은

권력을 얻는다는 것이고

소비의 제왕이 된다는

것이다

생산과 소비,

권력의 불균등한 현상

돈과 사회

돈과 욕망

돈과 권력

돈의 우상화 속에서

하루하루

바쁜 발걸음이 지속된다



수많은 사람이 시시각각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지하철에 앉아 오고 가는 사람들의 눈빛, 발걸음, 몸짓 등을 보고 있노라면 당장 어딘가로 무작정 무언가를 쫓아 떠나야만 한다는 당위적 의무감에 휩싸이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의 가치는 속도와 경쟁이다. 빠른 속도를 바탕으로 경쟁에서 빨리 승자가 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권력이자 미덕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일까? 오늘날 많은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심리적 무기력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번아웃 증후군이란 뉴욕의 정신분석가 프로이덴버거가 명명한 것으로 소진 증후군, 연소 증후군, 탈진 증후군이라고도 불리는데, 지나치게 일에 몰두하다 심리적, 정신적 무기력 상태에 빠져들게 되는 것을 말한다.


우린 늘 성공한 자와 실패한 자, 열심히 산 자와 게으른 자, 열정적인 자와 무기력한 자, 도전하는 자와 패배하는 자 등의 대립적 공식을 적용해 오직 쉼 없이 바쁘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미덕인 것처럼 살아가도록 강요받고 있다.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학생들은 늘 수많은 경쟁의 수레바퀴 속에 매몰된다. 시험과 성적, 등수라는 객관적 척도는 이러한 경쟁의 수레바퀴를 쉼 없이 돌리는 기폭제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은 결국 소수의 승자를 위해 다수의 패배자를 양산하게 된다. 이러한 잘못된 공식은 사회에 나와서도 지속된다. 사회에서 성공의 척도는 부와 권력이다. 많은 부를 쌓고 높은 권력에 오르는 것이 성공의 척도가 된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그 자리에 오르면 오를수록 많은 사람이 그에게 축배를 드는 이상한 사회 풍토가 형성되는 것이다.


열심히 살고는 있지만 우린 늘 외롭고 공허하다. 다수의 패배자인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 봐도 소수가 누리고 있는 승자의 축배를 맛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느림과 뒤처짐은 죄악이자 부끄러운 삶의 표본으로 전락하고 만다. 오늘도 어디를 가나 사람들은 하나같이 대동단결하여 말한다. ‘바쁘게 살아야 성공한다.’라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속도는 곧 경쟁과 직결되고, 경쟁의 승자는 부와 권력을 손에 쥐게 된다. 부와 권력은 인간의 내면속에 감추어진 욕구와 욕망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는 습성이 있다. 따라서 부와 권력을 많이 쥐면 쥘수록 사람들은 조금씩 욕망의 노예가 되어 욕망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평가하고 이용하여 수단화시키려는 잘못된 습성을 품게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있다는 것은 곧 권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돈을 이용해 수많은 사람을 무력화시킬 수가 있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거짓이자 위선인 경우가 많다. 모두가 돈을 위해 움직이고 돈을 모으기 위해 한평생의 삶을 바친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우상이자 삶의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돈은 한정되어 있다. 따라서 돈을 쌓을 수 있는 자는 몇몇의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본의 축적은 꿈도 꾸지 못한 채 생계유지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실패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린 이러한 실패자가 되지 않기 위해 어려서부터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그 무서운 경쟁과 승리, 빠름과 분주함, 부와 권력 쟁취라는 톱니바퀴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코로나19의 시대적 암울함 속에서도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부를 축적하는 방법이다. 서점에 가 베스트셀러에 진열된 책을 보면 대부분이 자산축적과 관련된 책이다. 인문학, 사회과학은 아무리 좋은 위치에 진열 해 봐도 좀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한다. 유튜브를 봐도 인기가 있는 영상 대부분은 자본 축적과 관련되어 있고 사회적으로 인기가 있다고 소개되는 책들은 자본 축적과 관련된 것이다.


돈에 취해 사는 것은 재미가 있다. 돈에 취해 돈이 늘어나는 잔고를 확인할 때면 마치 큰 성장을 이룬 듯 자부심이 생긴다. 부동산, 펀드, 주식 등 금융문맹에서 벗어나 금융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 세계에 안목을 키우는 것은 미래를 위한 성장의 발걸음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자본이 모여드는 곳에 들어가 그 자본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다 보면 조금씩 멀어지는 것들이 생기게 된다. 돈은 늘어나고 통장 잔고는 쌓여 가는데, 인간적 가치는 조금씩 사라지고 모든 것이 화폐화, 도구화, 수단화 되어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이스털린의 역설에서 알 수 있듯이 자본이 축적된다고 무한정 행복이 비례하여 증가하지는 않는다. 자본 축적에 따라 행복이 증가하는 데에는 한계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즉 그 한계점을 넘는 순간 더는 자본과 행복은 비례관계에 있지 않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많은 부가 있어야지만 행복할 수 있다라는 생각에 오늘도 정신없이 삶의 대부분을 부와 연관 지어 부를 축적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직장 생활 16년, 아직도 내 삶은 자본과의 전쟁 속에서 살고 있다. 열심히 일해도 돈은 늘지 않고 해야 하는 것, 지불해야 하는 것들만 늘어간다. 자식들은 커가고 남들은 새 아파트, 새 차 등을 구입하여 자기의 가치를 상승시키는데, 여전히 내 모습은 16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삶의 낙오자가 되어 가는 이상한 풍경이 연출된다.



먹고 싶은 음식 잘 먹고, 추운 겨울 따뜻하게 잘 자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잘 입고, 잘 살고 있는데 주변의 변화하는 시선에 자기의 마음이 자꾸만 흔들리는 것이다. 흔들리지 않으려고,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수없이 외쳐 보지만 사람들은 ‘그럼 너는 계속 그렇게 살아’라고 말한다. 실패자인가? 실패자가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 아이들을 붙잡고 ‘아빠는 돈을 버는 직업이 아니라 사람을 가르치는 직업이라 그래’라고 말해 보지만, 첫째는 그 말 앞에 빙긋이 웃고, 둘째는 내 모습이 안쓰러운지 ‘그래, 그래’라며 맞장구를 쳐준다.



이제는 조금은 정직하고 싶다. 그리고 또 조금은 자본의 힘 앞에, 경제의 논리 앞에 답답한 가치를 내려놓고 싶다. 어쩌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스스로 실패자가 되기를 자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 금융전문가의 말처럼 금융문맹은 자신을 넘어서 가족의 삶까지 파괴하는 잘못된 가치관이자 습관일지도 모른다. 경제는 알아야만 한다. 부의 노예화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를 알고 부를 계획화 해야만 하는 것이다.



부를 계획화하는 것은 많이 버는 것을 계획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합리적 소비를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잘 벌고 많이 축적할지라도 그 돈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 부는 한순간에 다 사라질 수밖에 없다. 부라는 것은 바람과도 같다. 제대로 붙잡아 가두지 못하면 어느 순간 흔적도 없이 다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소비의 계획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삶은 빈곤하고 가난할 것이며 부의 사슬에 얽매여 더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돈은 철저하게 중립적 가치를 지닌 대상이다. 이러한 돈에 어떠한 가치를 부여하고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것은 철저하게 그 돈을 손에 쥐는 사람의 가치에 따라 달라진다. 돈 자체는 분명 좋은 것이다. 다만, 이러한 돈의 가치를 잘못된 가치관 때문에 부정하게 사용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정의로운 부자는 존경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돈의 노예화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삶을 계획화하는 것이다.



경제적 속박에 구속당하면 그때부터 삶은 더는 자유로울 수 없다. 일상의 삶 자체가 경제의 연속됨이다. 당장 먹고 사는 것조차 제대로 유지할 수 없다면 그건 생존 자체를 위태롭게 하기 때문에 그 이상의 가치를 꿈꿀 수가 없게 된다. 따라서 우린 모두 돈을 모아야만 한다. 그리고 최소한 돈 때문에 자신의 삶과 가치를 잃어버리는 일은 발생하지 않도록 배워야 하고 노력해야만 한다. 이러한 여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자아 찾기의 과정 또한 의미가 없게 된다. 생존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자기의 삶에 대한 성찰은 가치를 잃게 된다. 빚이 있어 가족과 함께 동반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누군가의 비참한 풍경은 이러한 자본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절실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무엇이든지 지나치게 한쪽만을 고집하게 되면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부에 관심을 갖는 것은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의 그늘이 자꾸만 이중적 인간의 잘못된 자화상을 연출하게 되는 것이다. 대통령, 국회의원, 시인, 교사 모두 돈을 모으고 돈을 추구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관심을 갖지 말라는 것은 어쩌면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그저 멍하니 빈 하늘만을 쳐다보라고 말하는 공염불과 같은 말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돈을 모으고, 어떻게 돈을 쓰며, 어떠한 경제 관념을 갖느냐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곧 삶을 부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 축적은 긍정되어야만 하고 존경받아야만 한다. 다만, 중요한 것은 부정한 자본 축적의 과정이다. 이것은 자본 시장 전체의 질서를 파괴하고 사람들이 소중하게 간직해 온 상식의 기본 틀을 허무는 것이기에 단호하고 엄중하게 처벌을 해야만 한다. 투명하고 깨끗한 사회 속에서 정직하게 일하고 노력하여 많은 부를 축적하는 것은 존경의 대상이지, 비판이나 시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다른 선진국과 다르게 우리 사회의 부자들이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와 같은 투명한 자본사회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었다고 하면, 자신의 본업을 등지고 투기, 투자를 했거나 권력형 비리와 연결되어 뭔가 큰 거 하나를 잡았다는 생각이 팽배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너도나도 정직한 노력의 대가를 인정하지 못하고 자꾸만 부에 대한 왜곡화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돈은 중요하다. 그러나 정직한 돈은 더욱더 중요하다. 그리고 우린 정직한 돈 앞에 당당하게 존경하는 마음을 표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그 돈은 정직한 사람들의 숨결을 이어받아 더 많은 사람에게 정직하게 쓰여지게 되는 것이다.



합리성을 잃어버린 부는 사람의 영혼을 조금씩 갉아먹는 무서운 독성이 있다. 광기의 부는 소비의 노예화, 가치의 빈곤화, 관계의 수단화라는 삶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부가 더는 생존을 위한 고귀한 수단이 아니라 지배와 권력, 무분별한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할 경우 우리의 영혼은 어쩌면 쉽게 회복될 수 없는 나락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무게도 중요하지만, 부의 가치화는 더욱더 소중한 것이다.



자본주의와 부, 이 두 관계는 필연적인 동반자 관계에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가치를 제로 가치로 만드는 것은 결국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부의 가치가 끊임없이 활성화되어야만 한다. 다만 이러한 부의 가치가 어떻게 활성화되고, 누구에게 돌아가는지가 매우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일수록 부는 결국 공정한 시스템의 영향을 받아 정직하게 노력한 사람들에게 많이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직한 부는 결국 자본주의 사회의 건강한 원동력이 되어 금융, 소비, 경제의 합리적 순환구조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빛나는 부의 두 얼굴이 오늘도 사람들의 발걸음, 손짓, 눈빛을 매료시키고 있다. 부는 그저 하나의 숫자이지만, 그 숫자가 어떤 빛깔을 지니게 되느냐 하는 것은 그 부를 품에 안은 사람의 모습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돈이 싫다고

돈 없이도 살 수 있다고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채워지지 않는 돈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투사 내지 방어적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돈은 분명 소중하다

그러나 그 돈이

누구에게

어떻게 쓰이고 있느냐는

더더욱 소중하다

따라서 우린

돈을 벌기에 앞서

돈의 방향을 제대로

조정할 수 있도록

마음의 운전대를 바르게

잡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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