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낯선 발걸

by 문객

여행이란 지친 삶을

달래기 위한

쉼의 시간이기에

화려하고

빛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소박하고

덜어내기 위한

몸짓이 되어야 한다



여행이란 관계적, 사슬적 존재로서의 모습으로부터 벗어나 되도록 순백의 나와 마주할 수 있다는 점에 깊은 의의가 있다. 되도록 멀리, 이전의 ‘나’라는 한 존재를 모르는 곳으로 떠나면 떠날수록 ‘나’는 더욱더 ‘나’와 가까워진다. 그곳에서 마주하는 나는 더는 그 누군가가 강요하고 요구하는 내가 아니라 내 본모습이 바라고자 하는 나의 모습인 것이다.


여행은 되도록 동행자가 없을수록 좋다. 동행자가 있다는 것은 아직 내 자신을 온전하게 낯선 곳에 풀어 놓을 수 없다는 벽을 지니게 된다. 물론 그 여행은 조금 덜 외롭고 조금 더 유쾌할 수는 있지만 결국 관계적 사슬의 연장선 속에 존재하는 여행이 되기에 자신의 본질을 찾고 내면 자아를 구출하기에는 한계점을 지니게 된다.



여행의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홀로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스스로와의 만남을 준비하고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굳이 먼 해외로 나갈 필요는 없다. 물론, 경제적으로 여건이 된다면 좀 더 자신을 낯선 곳에 내던질 수 있는 곳이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꼭 필수조건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곳곳에도 얼마든지 내 삶을 성찰하고 나에 대해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곳은 많기 때문이다. 낯선 시장도 좋고, 바닷가도 좋고, 산도 좋다. 버스를 타고 가도 좋고, 자전거를 타고 가도 좋다. 아니면, 무작정 맨발로 걸아가도 좋다.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낯선 환경에 처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새로운 숨결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기에 그 무엇도 장애가 되지 않는다.



특히 전국 곳곳에서 사람들이 가장 분주하게 오고가는 재래시장을 방문하는 것은 삶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시장에 가면 단순하게 상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있고 정이 있으며 관계와 어울림이 공존한다. 시장은 단순하게 제품이 화폐에 의해서 교환되는 자유시장의 질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만남과 정의 나눔이 공존한다. 따라서 시장에 머물다 보면 상품을 보기에 앞서 사람의 호흡과 숨결을 먼저 느끼게 된다. 백화점이나 마트는 단순하게 상품과 화폐의 가치만이 진열대에 냉정하게 전시되어 있지만, 시장에 가면 먼저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 뒤에 상품과 화폐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시장은 잃어버린 삶의 친밀한 숨결이 공존하고 있다. 두부, 젓갈, 시금치, 오이, 감자, 대파, 막걸리, 순대, 마늘, 고추, 배추, 무 그리고 할머니, 젊은 청년, 아주머니, 너와 나 등이 함께 한다. 어디 하나 의미 없음이 없다. 그곳에 있는 것은 지금 우리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우리가 곁에 두고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장에 있는 물건에는 정확한 가격표가 붙어 있지 않다. 부르는 게 값이요, 흥정이 노래가 된다. 가격을 깎아 주지 않아도 좋지만 ‘더, 더, 더’를 외쳐본다. 그 순간 가격이라는 교환가치는 사라지고 눈빛과 눈빛 속에 정이 오간다. ‘좋다’라는 당신의 숨결에 비닐봉지 속에 ‘덤’이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덤’은 그냥 내던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동반자로서의 삶의 표현이다. 곁에 아이라도 있으면 아이 손에 또 다른 뭔가를 쥐여 주곤 한다. 아이는 그 순간 마트에서 가격표에 맞춰 물건을 고르던 눈빛과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이해하며 좀 더 포근한 눈빛을 간직하게 되는 것이다.



시장에 가면 천천히 하나하나의 물건에 시선을 둔 채 걷고 싶어진다. 그곳엔 생존을 재촉하는 빠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엄격하게 분리된 공간의 벽이 없다. 어느 정도는 다른 사람의 갑판에 내 상품을 진열해도 좋다. 그 정도의 여유와 품격은 ‘정’과 ‘쉼’을 전해주는 공간인 것이다. 낯선 지역에 가 그 지역을 알고 싶으면 시장에 가보라는 말이 있다. 시장은 지역의 모습과 삶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에 가 머물다 보면 그동안 살아온 삶의 모습이 사람들 사이에서 하나둘씩 돋아나게 되는 것이다.



여행은 수없이 많은 풍경과 사람을 아무런 장애 없이 만나게 해 주는 힘이 있다. 그 속에서 나는 타자로 엮어진 거울자아가 아니며 타자와 동등하게 순간을 함께하고 있는 동반자가 된다. 따라서 애써 자신의 모습을 관계의 틀에 맞추어 포장할 필요는 없다. 본인의 마음이 가자는 대로, 발길이 머무는 대로 이곳저곳을 바람처럼 누비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자유로움은 곧 자신의 본모습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게 되며 벽을 두고 바라본 사람들 간의 관계에 새로운 빛을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그동안 만나보지 못했던 수많은 사람과 마주치게 된다. 일상의 삶 속에서 관계는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틀 속에 고정된 채 그 틀의 유지만을 위해 살아가게 된다. 가정에서의 나, 직장에서의 나, 자식으로서의 나, 친구로서의 나는 있지만 진정한 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여행은 이러한 ‘나’를 버리고 그저 아무 틀과 책임이 없는 순백의 나를 맛보게 해 주는 것이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어도 좋고, 목걸이를 하나 걸쳐도 좋다. 가다가 힘들면 길가에 앉아 멍하니 사람들의 움직임을 바라봐도 좋다. 배가 고프면 허름하게 생긴 국밥집에 들어가 할머니의 인생 이야기와 함께 긴 밤을 보내도 좋다. 노래가 듣고 싶으면 아무 곳이나, 내가 원하는 그 노래를 들으며 발길을 돌려도 좋다. 강이 좋으면 강변에 머물고, 산이 좋으면 정상을 향해 정신없이 오르면 된다. 낯선 이에게 길을 묻고 낯선 이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또 낯선 이에게 행복을 전하며 짧은 노래를 불러도 좋다. 가끔 아이들의 놀이가 궁금해 그 속에 껴 공도 차보고 고무줄놀이도 해 보며 숨바꼭질을 해 봐도 좋다. 아니면, 바닷가 선창에 머물면서 오고 가는 고깃배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밤새 희망의 밤바다를 향해 망상에 잠겨 있어도 좋다. 당신의 마음과 발길이 허락된다면 이 모든 것은 바로 당신 삶의 소중한 울림이기 때문이다.



여행 중에

만났던

낯선 사람과의 만남이

세월이 지나도

오래도록

기억 저편에서

희망의 울림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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