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아픔이기에 앞서
어쩌면
신이 주신
더없이 고마운
선물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가 삶을 지속하고 있는 이상 상처는 늘 발생하고 그 상처와 함께 하루하루를 공존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상처 속에는 한 사람의 영혼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상처를 쉽게 받는 사람도 있고, 상처를 잘 받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 데, 그건 틀린 말이다.
누구나가 다 상처는 똑같이 받으며 살아간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공유하고 표현하며 위로받느냐에 따라 상처의 질과 양이 달라지는 것이다. 상처에 쉽게 무너지는 사람은 어려서부터 이러한 상처를 누군가와 공유하고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오직 자신의 내면의 짐으로만 여겨온 경우가 많다. 반면에 상처에 의연하게 잘 대처하는 사람은 항상 그 옆에 상처를 보듬고 이해해 줄 누군가가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상처는 받지 않는 것보다 누구와 함께 상처를 치유하고 살아갈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살아가는 일은 상처와 함께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좀처럼 타인의 상처에 진심으로 관심 갖는 것을 꺼려한다. 상처를 보듬어 준다는 것은 본인 또한 그 상처와 하나가 되겠다는 영혼의 교섭이어야 하는데, 갈수록 이러한 교섭의 장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각자도생’이라는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이 갈수록 각박한 사회의 생존이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어려울수록 함께 보듬고 나아가야 그 어려움을 극복해 갈 수 있다는 협력적 방안에서 벗어나 이젠 그러한 협력과 공생의 가치조차 생존의 어려움이 너무 깊어 아무런 울림을 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나조차 살기가 힘든 상황인데 어떻게 남을 돌보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느냐하는 울림이 곳곳에 가득하게 퍼지고 있는 것이다.
협력과 공생의 가치가 무너지고 사람들이 모두 제 갈 길만을 정답인 것처럼 걸어갈 수밖에 없는 사회에는 희망이 없다. 순간적인 효율성은 다소 상승할지라도 이러한 사회는 결국 모두가 자멸하게 되는 현상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경쟁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그 경쟁은 반드시 공생과 협력을 바탕으로 한 경쟁이 되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사람들은 경쟁의 승자 앞에 당당한 축배를 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생의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채 ‘나만 혼자 잘 살겠다’라는 논리를 바탕으로 경쟁의 논리 앞에 다가가면 그 경쟁은 결국 약육강식의 논리에 따라 혼자만 잘살기 위해 각종 투기와 불법이 난무하는 경쟁이 되는 것이다.
코로나19라는 시대적 암울함으로 인하여 청년실업이 증가하고 수많은 자영업자가 길 위로 쫓겨나고 있는 상황이다. 수없이 많이 넘어지고 아파하면서 힘든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내성을 쌓고 더 큰 희망을 키울 수 있다는 논리는 이제 그들에게 더는 통하지 않는다. 죽을 만큼 힘들고 넘어져 봐도 희망이 없고 삶에 대한 격차는 더욱더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노력할 만큼 노력해 봤고, 남들이 하는 만큼 다 해봐도 좀처럼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상처와 어려움은 신이 주신 공생을 위한 선물일 수도 있고, 모두의 자멸을 위한 신의 재앙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처가 선물이 될지, 재앙이 될지는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이다. 상처의 어루만짐은 인간의 자생적 눈물의 가치를 더욱더 증폭시키는 효과가 있다. 죽을 만큼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빠져서 바닥을 힘겹게 지탱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다가와 자신의 일처럼 따뜻하게 어루만지며 격려하고 힘을 내라고 말해 줄 때 인간의 눈물은 공생을 위해 더욱더 깊은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본성상 다른 누군가와 함께 존재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존재로 태어나고 성장하게 된다. 이러한 사회성이 충분히 충족되지 못하고 차단된 채 공유할 수 있는 마음이 길을 잃을 경우 우리는 절망하고 아파하게 되는 것이다.
물질적 가치, 권력, 명예 등은 모두 인간이 있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인간의 가치를 상실하거나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더욱더 타인의 상처와 눈물에 관심을 가져야만 개개인의 삶은 물론 사회 전체도 온전하게 돌아갈 수가 있다. 그리고 바닥에서 절실하게 외치는 사람들의 상처와 눈물은 더욱더 깊게 새겨듣고 꼭 응답해 줘야만 한다. 강자는 힘들고 어려울 때 수많은 사람이 그 옆에 붙어서 도움을 주려고 하지만, 약자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기에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그 간절함을 절대 외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약자의 눈물 앞에 더욱더 깊은 공감을 다해 어루만져 주는 사회가 될 때 우린 비로소 더불어 하나가 되어 너와 나의 삶 앞에 진실하게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상처가
상처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상처를 함께 할
누군가가
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