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머와 함께 청다방으로 향한다. 루머가 문을 열고 나를 먼저 안으로 인도한다. 중년의 여인이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쳐다본다. 친구의 엄마? 꽃무늬 원피스에 방금 머리를 감은 듯 산만하게 흐드러진 머릿결 사이로 육십 촉 조명이 줄의 길이를 달리하며 그녀를 비추고 있다. 열 평 남짓한 공간엔 테이블 두 개와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3인용 소파 네 개가 전부다. 그리고 벽면 한쪽엔 다소 오래된 광고 포스터 속 한 여인이 활짝 웃으며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다. 바닥에 깔아놓은 양탄자에서는 오래된 묵은 빛이 돋아난다. 정면 한쪽엔 오래된 화조도 병풍이 꽤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누구?"
"제, 선생님이에요."
"샘님이라고. 아이고, 이 먼데까지 어혀 오셨데? 루머 잡으러 왔구먼."
"아, 그건 아니고요."
"뭐 줄까요? 시원하게 커피 한 잔 타 줄까요?"
"아니요, 잠시 인사하고 아래층으로 가보려고요."
"아따, 뭐가 바쁘다고. 이 밑에서 아들놈하고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마쇼. 거기 앉아 보소. 시원한 아이스로 한 잔 타 줄 테니."
"네"
루머와 소파에 앉는다. 아직 루머하고의 만남 자체도 어색한데 그녀가 열심히 커피를 탄다. 소파에 앉아 천장을 바라다본다. 천장 위와 벽면 사이에는 부적이 보인다. 부적의 내용을 알 수는 없으나 무언가를 간절하게 기원하고 있는 듯 곳곳에 부적이 붙어있다. 그녀가 커피를 들고 자리에 안는다.
"먹어봐요. 먼 데까지 왔는데."
"네, 고맙습니다."
"그래서 이제 루머 데리고 가나요?"
"........"
"그래도 지네 둘이 잘 지내서 좋더구먼."
"네"
무언가를 얘기하려다 그녀의 입이 닫힌다. 어색함과 고요한 정적이 교차하며 셋이서 서로의 눈빛만을 바라본다. 그녀가 타 준 커피를 물컹물컹 들이킨다. 루머가 그녀에게 말한다.
"어머니, 이제 아래로 내려갈게요."
"그랴, 가봐라."
좁은 계단을 지난 반지하로 향한다. 문을 열자, 한 사람이 보인다. 루머의 친구다. 그런데 한쪽 눈이 좀 이상하다. 흐릿한 동공이 초점을 잡지 못한 채 나를 바라본다. 힘이 없다.
"안녕하세요."
좁은 방안이 책으로 가득하다. 그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하며 지내고 있는 것일까?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책이 보이고 기형도, 이성복, 백석, 신동엽 시인의 시집이 보인다. 그리고 책상 한 곳엔 사르트르의 구토라는 책이 펼쳐져 있다.
"선생님, 일단 좀 앉으세요."
"이 책 다 너희들이 읽는 책이야?"
"네, 특히 이 친구 머루가 독서광이에요."
"언제부터 책을 이렇게 읽기 시작했어?"
"밖이 싫어지면서부터요."
"그래, 사르트르도 읽나 보구나."
"네"
"선생님도 아세요?"
"조금"
"그나저나 루머랑 이곳에 어떻게 오게 된 거야?"
"제가 갈 곳이 없다하길래 이곳으로 가자고 했어요. 할머니 집은 좀 그렇고 해서."
"거기서 머루는 학교 안 다녔어?"
"다녔는데, 저도 거의 안 가고 그랬어요. 그냥 학교 가면 너무 답답하고 잠만 자고 오는 것 같고, 애들 시선도 좀 그렇고."
"저도 머루랑 이곳에서 책도 읽고 이야기도 하고 같이 밥도 먹고 하니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