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아, 샘님이랑 이 쪽 방으로 건너오렴. 밥 먹게."
그녀의 방으로 향한다. 밥상 위에는 방금 끓인 된장찌개가 뚝배기에서 모락모락 김을 내뿜고 있다. 그 옆으론 계란찜, 조기구이, 소시지 등이 맛깔스럽게 차려져 있다. 작은 밥상 옆으로 틈을 내 다닥다닥 붙어 앉아본다. 서로의 무릎과 무릎이 부딪힌다. 그녀가 밥상 뒤로 살짝 빠진 채 조기를 가져다가 가시를 바른다. 젓가락을 눕혀 등쪽 부분을 꾹 눌러주면서 잔가시마저 모두 말끔하게 사라진 노릇한 속살을 밥 위에 하나씩 올려놓는다. 아이들은 모두 말없이 밥을 먹는다. 나도 그녀가 발라준 조기살과 함께 수저를 든다.
"샘님, 어혀 드세요. 먼 데까지 왔는데, 차린 건 없어도 밥은 많이 있으니 부족하면 말하고요."
"네"
그녀도 숟가락을 든다. 된장찌개를 떠먹는 호롱 호롱 하는 소리와 물컹하게 입안을 적시는 계란찜의 온기가 서로의 얼굴을 환하게 적신다. 말은 없어도 이 순간만은 모두가 조용한 침묵 속에서 서로에게 전해야 할 마음을 이해하고 있는 듯 밥을 먹는 눈빛이 고요하다.
몇 숟가락을 들던 그녀가 일어나 냉장고에서 술을 꺼내 물이 담아있던 유리잔을 비우고 그 안에 소주 두 잔을 담아 한 잔을 내 앞에 내민다.
"샘님, 술 한잔 하세요. 오늘은 애들 방에서 같이 자고 루머를 데리고 가더라도 내일이나 가야 되지 않겠소. 야들도 지들이 나눈 정이 있는데 갑자기 올라와서 대뜸 데리고 가면 지들 마음이 얼마나 상하겠소."
어딘지 모르게 루머를 찾아온 나의 발길이 그녀에게 다소 불편하게 다가온 것 같다. 어쩌면 지금 이곳에서 루머와 머루는 그 어디에 있을 때보다 더 즐겁고 행복한 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 또한 한쪽 눈을 제대로 보지 못한 머루의 아픔 속에서 루머라는 존재의 동행에 대해 마음 한편에 안타깝지만 고마운 마음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마음 때문인지, 루머를 향한 그녀의 눈빛 속에는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함이 묻어났다.
루머가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계속 머물겠다고 하면 나로서도 더 이상 할 방법이 없다. 내가 가자고 해서 루머가 갈 아이도 아니고 나는 다만 담임으로서 루머에 대해 알고 싶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녀가 걱정하는 마음이야 충분히 공감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기우일지도 모른다. 루머는 벌써 학교라는 공간을 저 먼 곳으로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가득 찬 술잔을 다 비우고 또 한잔을 따른다. 그녀의 얼굴빛이 조금씩 붉게 변해간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 사연이 있는 듯 그녀의 눈빛이 술잔 앞에 빙빙 머뭇거리다 머루를 향한다. 그리고 그 눈빛 그대로 루머를 다시 한번 쳐다보고 김치 한 조각에 소주의 쓰린 맛을 씻어내고 다시 술을 따른다.
"애들아, 너희들 다 먹었으면 방에 좀 가 있거라. 샘님하고 할 얘기가 있으니."
술잔과 함께 붉은빛으로 변해가는 그녀의 얼굴빛이 익숙하다는 듯 루머와 머루가 방으로 향한다.
"샘님요, 머루 눈 봤어요? 그거 다 나 때문에 글케 된거요. 지아버지 사업한다고 재산 다 말아먹고 어디 도망가서 행적도 모르고 혼자 살아간다고 애 데리고 다니며 시장에 가 물건을 파는데, 갑자기 애 울음소리가 들려서 가보니 넘어지면서 못에 눈을 찔린 거에요. 그때 큰 병원에서 제대로 수술만 받았어도 저렇게 되지는 않았을텐데. 참, 인생이라는 게 지지리 복도 없는 것들은 다 그렇게 살라는 건지, 원망도 많이 했소. 그래도 키워보려고 이 학교 저 학교 전학시키며 해봤는데, 지가 애들이 놀린다고 자꾸 결석을 하더라고요. 그러다 살 길이 더 어려워져 결국 부여 지 할아버지 댁으로 보냈는데, 처음에는 잘 댕기는가 싶더니 사춘기가 오더만 또 학교와 담을 쌓더라고요. 갸가 머리 하나는 참 좋은 놈인데, 부모 잘못 만나 인생 한번 꿈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하고 저렇게 방 안에서 책만 읽고 있으니 답답해요. 샘님요, 한잔 더 하세요. 샘님이닌깐 이런 소리 다 하네요."
"네, 어머님"
"그래도 루머가 와서 제가 요즘은 참 밝아졌어요. 예전엔 나하고는 거의 말 한마디 않고 지냈는데, 루머가 온 이후론 애가 내 얘기도 듣고 지 말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들어보니, 루머도 사연이 있는 애라, 처음에는 하룻밤 자고 부모님 걱정한 게 내려가라고 하니, 자기는 뭐 걱정해 줄 가족이 없으니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재가 뭔 사연이 있구나 싶어 그 이후로 묻지 않았어요. 지들도 그 나이 먹었으면 뭐 다 생각하는 바가 있겠다 싶었지. 샘님요, 오늘은 여기서 푹 쉬고, 내일은 어떻게 할지 내일가서 또 얘기하게요. 어혀 건너가 푹 쉬고, 얘기 들어줘서 고맙워요.'
'네, 어머님도 푹 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