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출

by 문객

오늘로 루머가 가출한 지 일주일째다. 바쁘게 학교에 루머의 장기무단결석 사실을 통보하고 별도의 가정방문 및 내교통지서를 보낸다. 아직까지 루머의 행방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루머는 학교에 늘 말없이 조용히 왔다가는 그런 아이였기 때문에 주변의 친구들도 루머가 어디로 갔는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집에 전화를 해 봐도 루머의 행방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아이들도 하루 이틀 루머의 행방을 묻다가 일상의 흐름 속에 묻혀 더는 그의 안부를 묻지 않았다. 텅 빈 책상이 뜻 모를 공허함 속에 묻혀가지만 아이들은 그의 사라짐과 상관없이 대학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힘든 항해를 지속할 뿐이었다.


루머는 늘 학교에 등교하면 힘없이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거나 책을 읽곤 했다. 그리고 좀처럼 다른 친구들과 장난을 치거나 대화를 나누는 행동 없이 그의 작은 공간 안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돌아가곤 했다. 상담할 때도 루머는 애써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듯 이런저런 질문에도 짧은 답변 몇 마디로 마무리를 지었다. 입시 위주의 고등학교 담임에 익숙한 나로선, 이러한 루머의 내면세계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그와 상담을 하기보다는 점수와 등수를 확인하고 그에 맞는 대학이 어디인지를 함께 고민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루머는 사람들의 시선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수업 시간에도 혹시나 눈빛이 마주치면 바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볼펜 끝머리로 책상 위에 낙서를 하거나 책을 읽곤 했다. 이러한 행동 때문인지 루머는 자주 선생님들의 상담 대상이 되었고 성격적 측면에서 문제가 있는 아이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을까? 갈수록 루머는 말이 없어졌고, 수업 시간에도 침묵하거나 고개를 들지 않았다. 간혹 무언가를 주시하며 또렷이 바라보는 시선을 볼 때면 그 눈빛 사이로 깊어가는 걱정과 고민이 보였지만 애써 그러한 마음을 표현하지는 않았다.


혼자만의 공간 속에서 말없이 하루종일 학교생활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교도소보다 더 가혹한 형벌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싶어도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밥을 먹으러 갈 때에도 말없이 그 행렬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은 그 입장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렇게 그들의 대열에서 이탈되는 누군가에게 위로의 말로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를 이해할 수 없는 아이 정도로 무시하거나 외면했다.

루머는 어디로 간 것일까? 야간 자율학습 감독을 하며 루머를 향한 복잡한 감정을 지우지 못한 채 루머의 행방을 찾아보기로 계획을 세워본다. 설령 이러한 발걸음이 교사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한 몸짓일지라도 그 행동이 루머에게 적어도 상처가 아닌, 잃어버린 관계의 소중함을 깨우쳐 줄 수 있다면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 다행히 학교도 곧 방학에 들어가니, 그를 찾는 발걸음도 비교적 자유롭다.


어디서부터 루머의 행방을 찾아야 할까? 일단 루머의 유일한 보호자인 아버지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보는 게 좋을까? 그러나 아버지는 루머의 존재나 행방에 대해 그렇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얼마 전 루머가 가출하던 날, 아버지에게 가출 사실을 알렸지만 별로 대수롭지 않게 바쁘다는 이유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 후, 더는 아버지에게 루머에 대한 고민을 말할 수가 없었다. 자식이 가출을 했다는데,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어떻게 담임의 전화를 그렇게 끊을 수 있을까라는 실망은 그 후 좀처럼 사그라들지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에서 아버지는 루머의 행방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루머의 가족사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에 대해서 루머에게 구체적으로 묻거나 상담한 적은 없다. 다만, 그는 현재 어머니 없이 아버지 하고 단둘이 살고 있다. 루머의 말에 의하면 어머니는 초등학교 때 집을 나갔다. 왜 어머니가 집을 나갔고 그의 마음에 어떠한 상처와 아픔이 남아 있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못했다. 어쩌면 그건 가장 감추고 싶은 비밀을 상담이라는 목적하에 끄집어내는 또 다른 폭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인문계 고등학교의 현실 속에서 대학입시가 아닌 학생들 개인의 인성 상담과 고민 상담 등에 신경을 쓴다는 것이 좀처럼 쉽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매일같이 쏟아지는 각 대학의 정보를 확인하고, 아이들의 내신을 체크하면서 한 명 한 명에게 해당하는 대학과 학과를 알려주고 그것에 맞게 얼마만큼 더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모든 지도와 관심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 다시 루머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 아버님, 저 루머 담임인데요. 혹시 루머한테 연락은 왔나요?

- 그 자식은, 또, 왜 찾아요? 지가 가봤자 어디를 갔겠어요. 놔둬요. 지가 알아서 하라고. 지가 뭐 어떻게 하겠어요?

- 아버님, 그래도 일단 루머를 찾아야죠?

- 찾지 마세요. 찾으면 뭐해요.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갸 들어오면 또 나가요. 찾지 마요.

- 아버지, 그래도 자식은 자식이잖아요. 아버지 아니면 누가 루머를 챙기겠어요.

- 띠, 띠, 띠.....


또다시 통화가 일방적으로 끊긴다.


전화 통화 속에서 보여준 아버지의 음성은 톤이 낮은 음성으로 자주 끊김과 이어짐이 반복되었다.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반 즈음 술에 취한 정신과 짧게 끊어지는 몇 마디 속에는 대화를 통해 루머의 행방에 대해 같이 공유하며 이해하고자 했던 여백의 공간이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말과 말 사이에는 비교적 긴 쉼표와 마침표가 이어지면서 부족한 자신의 모습과 엇나가는 아들에 대한 미움이 진흙탕처럼 물컹하게 느껴졌다. 올바른 것을 말하고 가르치기에 앞서 무너진 스스로의 자화상을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이 어쩌면 아들의 존재를 더욱더 멀어지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야자시간이 깊어갈수록 책을 보다 졸고 있는 아이들이 하나둘씩 늘어간다. 축 처진 아이들의 어깨와 피곤에 지친 눈빛들이 초침 소리와 함께 묻히어 간다. 어디선가 몇몇은 나의 눈빛을 주시하며 귀에 에어팟을 꽂고 열심히 무언가를 시청 중이다. 달려가 스마트폰을 뺏으며 주의를 주는 것이 감독선생님의 임무라는 것을 알지만, 졸린 눈빛 사이로 또렷하게 빛나는 그 눈빛만은 지켜주고 싶어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마음의 길을 따라가는 것은

자신을 비우는 것이다.

자신을 비운 사람만이 진정으로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다.

그 길이 어디 즈음에서

희망이고

빛이 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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