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눈빛

by 문객

바다로 난 해안도로를 달리다 묵호항 주변에 정착한다. 항구에 가면 늘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함께 해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갑판 위에 파닥거리는 각종 해산물과 그 해산물을 사고파는 사람들의 눈빛과

오가는 말이 항구 주변을 가득 에워싼다. 세상에 많은 흥정과 거래가 존재하지만 항구에서 맞이하는 사람들 간의 흥정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삶의 부둥킴 그 자체이며 '정'의 몸짓이기도 하다. 가격에 대한 흥정이지만 그 흥정의 내막 속으로 깊게 들어가 보면 그건 돈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 간 관계와 숨결의 교류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이들과 묵호항, 논골담길, 묵호등대, 도째비골 스카이워크, 해랑 전망대 등을 거닐다 보니 어느새 날이 저물어 간다. 아이들과 묵호항 주변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오늘은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한다.


"애들아, 묵호항 여행은 괜찮았니?"

"네, 선생님."

"루머는 어디가 가장 좋았어?"

"저는 도째비골 스카이워크 걷는데 무서웠지만 재미있었어요."

"머루는?"

"저는 묵호등대에서 바라본 동해바다가 너무 멋있었어요."

"선생님은 묵호항 주변 풍경이 너무 좋더라고. 사람 사는 냄새도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논골담길 그림 벽화도 참 인상적인 것 같아. 벽화 하나하나에는 이곳을 지켜온 사람들의 땀과 세월이 묻어있는 것 같아."

"네, 선생님."

"내일은 어디로 가볼까? 혹시 가보고 싶은 곳 있어?"


루머가 가보고 싶은 목적지가 있는 듯 말을 하려다 멈춘다.


"괜찮아, 편하게 얘기하렴."

"선생님, 여기에서 혹시 주왕산은 멀지요?"

"그렇게 멀지는 않은데, 왜 루머야, 주왕산에 가보고 싶어?"

"아니요."

"편하게 말해도 괜찮아. 루머야."

"그래, 루머야. 선생님께 말씀드리렴."

"네, 거기에 엄마가 있어서요."

"엄마가?"

"네"

"주왕산 어디 즈음에 계시는데?"

"선생님, 저희 엄마 무당이에요. 그래서 집에서 쫓겨났어요. 주왕산 버스 터미널 인근에 있다고 했는데."

"그래, 루머야. 내일은 동해 해안도로를 타고 어머니가 계신 주왕산 쪽으로 가보도록 하자. 어머니 주소나 연락처는 알고 있지?"

"네, 선생님."

"아니야. 여기 왔을 때 어머니 얼굴 보고 가는 것도 좋지. 걱정 말고 또 가보고 싶은 곳 있으면 언제든지 편하게 얘기하렴."

"네"

"머루는 어디 가보고 싶은 곳 없어?"

"저는 괜찮아요. 선생님. 가다가 생각나면 말할게요."

"그래, 언제든지 편하게 얘기하렴."

루머의 어머니가 무당이라고. 처음 듣는 말이다. 학교에서 상담할 때 그는 좀처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족문제로 어떤 고민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괜찮다는 듯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가기를 싫어했다. 그때마다 루머가 불편해하는 기색이 보여 늘 화제를 다른 이야기로 돌리곤 했다. 루머는 어머니가 무당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몇 번을 망설이고 내 앞에 '저희 엄마는 무당이에요'라고 말하던 루머의 눈빛 속에는 어머니에 대한 복잡한 마음이 가득 서려 있는 것 같았다.


"루머야, 괜찮아. 사람이 살아가는 길은 다 다를 수 있어. 피아노에 뛰어난 능력이 있는 사람은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고, 체력적인 면이 탁월한 사람은 운동선수가 되듯이, 너의 어머니는 영적인 측면이 다른 사람과 다르게 발달되어 있기에 그 길을 선택하게 된 것이라고 봐. 무당이라는 존재도 결국은 사람이 선택하는 하나의 삶의 길이잖아. 루머야, 어머니의 존재가 부끄럽고 그런 것은 아니지?"

"네, 다만 그 문제로 어려서부터 아버지하고 갈등이 너무 심해서 집안에 늘 싸우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어요. 결국엔 시골에 사는 친할아버지가 올라오셔서 이혼하라고 해서 어머니가 집을 나가게 된 것이에요. 저는 아직은 잘 모르겠는데, 어머니가 그 길을 꼭 선택해야만 했는지, 가족을 위해 그 길을 포기할 수는 없었는지가 아직도 궁금해요.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신내림을 받았다고 하시거든요."

"그래, 아마 우리가 모르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 거야. 어머니도 분명 루머와 함께 행복한 삶을 살고 싶었을 거야. 그런데 그 행복마저 외면하게 만든 더 큰 시련과 아픔이 있었겠지. 어느 어머니가 사랑하는 자식을 버리고 그 먼 곳으로 가고 싶었겠니?"

"네, 선생님. 저도 그 부분은 공감해요.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어머니라는 존재가 참 쓸쓸하게 보여요. 그리고 한편으로 혼자 남은 아버지도 안타깝게 생각되고요. 물론, 어머니를 좀 더 이해하지 못하고 늘 술에만 의지해서 상황을 벗어나려 했던 그런 모습이 지금도 너무 싫지만요."

"그래, 부모님은 아마도 너에게 말 못 할 그런 사연들이 많이 있을 거야. 그래도 네가 이렇게 조금이나마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네, 선생님."


묵호항의 밤이 깊어간다. 별처럼 고깃배 위에 밝혀진 등불 아래엔 아직 분주한 작업이 끝나지 않은 인부들의 모습이 보인다. 머루가 김광석의 음악을 튼다. 하모니카 소리가 노래의 앞부분을 밝힌다. 그 소리에 창문 너머 수평선 위로 지지 않는 사람들의 희망의 목소리가 들린다. 김광석의 노래를 따라 불러본다.

사랑이라 말하며 모든 것을 이해하는 듯 뜻 모를 아름다운 이야기로 속삭이던 우리 황금빛 물결 속에 부드러운 미풍을 타고서 손에 잡힐 것만 같던 내일을 향해 항핼 했었지 눈부신 햇살아래 이름 모를 풀잎들처럼 서로의 투명하던 눈길 속에 만족하던 우리 시간은 흘러가고 꿈은 소리 없이 깨어져 서로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멀어져 갔지 우 그리움으로 잊히지 않던 모습 우~ 이제는 기억 속에 사라져 가고 사랑의 아픔도 시간 속에 잊혀 긴 침묵으로 잠들어가지


루머의 눈빛 속에 별들이 머문다. 잔잔한 바다 위에 떠있는 저녁별처럼 길을 찾는 별들이 루머의 눈빛 속에 하나둘씩 피어난다. 머루가 루머의 얼굴을 쳐다보며 어깨 위에 손을 얹힌 채 김광석의 노래를 따라 부른다. 작은 숙소 안이 잔잔한 물결처럼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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