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묵호항 인근 식당에서 간편하게 아침밥을 먹고 해안도로를 타고 경북 청송으로 향했다. 어제 루머가 이야기한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동해 해안도로는 마치 백두대간의 능선처럼 굽이 굽이
푸르른 물결을 한없이 선물해 준다. 바닷가 인근으로 난 토막 같은 작은 길을 지나다 보면 바다와 함께 해 온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그곳엔 작은 빨랫줄에 오징어를 말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고 방금 바다 인근에서 수확해 온 각종 해산물을 보기 좋게 썰어 누군가를 위해 들어진 한상을 차리는 아주머니의 모습도 보인다. 그리고 가끔 어딘가에서 바다를 향해 멋진 꿈을 이야기하며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도 보인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사람들은 누구나 동해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삶을 노래하고 사랑을 전하는 시인이 되곤 한다. 루머와 머루는 창문을 열어 놓은 채 각자의 방향대로 다가오는 풍경에 취해 있다.
"머루야, 머루는 아버지가 어디 계셔?"
"저는 잘 몰라요. 초등학교 때 집을 나가셨는데, 이후로 본 적이 없어요. 엄마한테 물어보면 먼 곳으로 돈 벌러 가셨다고만 해요."
"그래."
"머루도 아버지 많이 보고 싶겠다. 그렇지?"
"네, 그런데 어머니한테 자꾸 물어보면 화만 내니, 아버지 이야기는 되도록 안 해요."
"그래."
"루머는 창밖 보며 무슨 생각해?"
"바다가 참 푸르네. 선생님, 푸른 빛깔은 사람의 마음을 행복하게 하나 봐요. 푸른 하늘, 푸른 바다, 푸른 잎사귀, 푸른 들판 등을 보고 있으면 제 마음에도 우울했던 그늘이 사라지는 것 같아요."
"맞아, 푸른빛은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하는 색이라 그래. 푸른빛이 원래 희망, 소망, 그리움, 열정 등을 상징하고 있잖아."
"네, 선생님."
"루머야, 너무 걱정하지 마. 어머니는 잘 지내고 계실 거야. 있는 그대로 어머니의 모습을 받아들인다고 생각해 봐. 어제 선생님이 얘기했듯이 어머님은 다른 사람과 다르게 남들의 영혼을 함께 교섭하고 이야기하는 면에서 보다 많은 관심이 있어서 그 길을 택한 것이라고 생각해."
"네"
경북 청송으로 향하는 길에는 바다, 산, 숲길 등이 번갈아가며 펼쳐져 있다.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니 어딘가에서 숲길이 보이고, 숲길을 달리다 보니 산의 능선에 올라와 있다. 창문을 열고 자연이 주는 숨결에 취해 천천히 주왕산 인근으로 향한다.
"루머야, 어머니 계신 곳이 어디라고?"
"주왕산 버스 터미널 부근 선녀보살집이라고 했어요."
"선녀보살?"
"네"
내비게이션에 선녀보살을 친다. 여러 선녀보살이 뜬다. 그중, 주왕산 버스 터미널 부근에 선녀보살이 보인다. 루머의 어머니를 만나면 뭐라고 해야 할까? 루머한테는 그저 다른 관심과 개성을 가진 삶 정도로 어머니의 모습을 이해하라고 했지만, 그 가운데서 루머와 어머니의 연결고리를 어떻게 접근해 가야 할지 쉽게 방향이 잡히지 않는다. 목적지에 인접할수록 마음이 더욱더 복잡해진다. 솔직히 무당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버겁게 느끼는 것은 나 자신인지도 모른다. 점집이야 친구 따라 몇 번 가봤지만 막상 무당이라는 존재 자체를 루머의 어머니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니 발길이 무겁다.
대문 앞에 쇠기둥으로 세워진 허름한 간판이 보인다. 선녀보살집이다. 그 밑에 전화번호도 적혀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전화를 해 보고 그다음에 루머에게 들어가자고 할까? 차 안에 머뭇거리는 순간이 길게만 느껴진다. 루머의 얼굴에도 뭔가 모를 불편함이 느껴진다. 옆에 앉아 있던 머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선녀보살 간판만을 바라본다.
"루머야, 들어가기 전에 먼저 이 집이 어머니가 맞는지 전화를 먼저 해보는 것은 어떨까?"
"네, 선생님. 잠시만요."
"그래, 루머야."
긴장이 되는 듯 루머의 안색이 좋지 않다.
"선생님, 기형도 시인 알아요?"
"응, 알지. 그런데 왜 갑자기 기형도 시인을 묻는 거니?"
"엄마를 생각하면 늘 기형도 시인의 엄마 걱정이라는 시가 생각나요.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다 기억하고 있구나."
"네, 늘 엄마가 보고 싶을 때면 기형도의 이 시를 읊조리곤 했어요. 그러다 보면 엄마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이 밤기운에 묻혀 사라지곤 했던 것 같아요."
"그래"
"선생님, 엄마가 저 어렸을 때 매우 많이 아팠어요. 병원에 가도 이유도 모르고 집에서는 자꾸 아버지 하고 불화만 생기고, 이유 없이 자주 아픈 엄마 때문에 늘 집안엔 걱정과 근심이 가득했던 거 같아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게 신내림을 받지 못해서 그런 거라고 하더라고요. 당시 친척분들은 엄마가 신내림을 받으면 그 영향으로 자식들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막아보려고 했지만 결국 엄마는 알 수 없는 아픔 때문에 떠난 것 같아요."
"그래, 선생님도 그 부분은 정확히 잘 모르지만 아마 말 못 할 나름대로의 고민이 어머니께 있었을 거야. 무녀가 되고 싶어서 그 길을 갔다기보다는 무당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있었겠지."
"맞아요, 선생님. 아마 그랬을 거예요. 선생님, 전화해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