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만남

by 문객

루머가 선녀보살 밑에 쓰여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건다. 몇 번의 통화음이 들리고 작게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

"여보세요?"

"엄마, 저, 루머예요."

"루머라고? 내 아들 루머?"

"네"

"아이고, 자식아. 이게 몇 년만이야. 그래,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어?"

"잘 지내고 있어요."

"아버지는?"

"잘 계셔요."

"엄마, 저, 지금 여기 왔어요."

"여기, 여기가 어딘데?"

"엄마 있는 곳이요."

"참말로? 누구랑"

"친구하고 선생님이랑요."

"참말인가?"

"네"


잠시 후, 푸른색 한복을 입고 머리엔 하얀색 두건을 쓴 그녀가 문밖으로 나온다. 우리도 따라 차문을 열고 그녀를 맞이한다. 화장기 짙은 얼굴빛을 뒤로 한채 그녀가 루머를 부른다.


"루머야"

"엄마"


루머를 껴안은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난다. 루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잠시 그녀의 품 안에 몸을 맡긴 채 잃어버린 체온을 느끼며 눈을 감는다. 루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엔 잃어버린 세월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이 묻어난다. 한참을 꼭 안고 있다가 얼굴을 바라보다 한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으며 루머의 표정을 살핀다. 루머는 그녀의 눈빛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그저 그녀의 품 안에 묵묵하게 얼굴을 묻고 있다.


"루머 선생님이세요?"

"네, 어머님"

"이쪽은 루머 친구고?"

"네, 안녕하세요."


그녀가 대문을 활짝 열고 그녀의 집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집안에 들어서자 표정을 알 수 없는 사진과 부적이 곳곳에 붙어있다. 그녀의 발길을 따라 방으로 향한다. 방문을 열자 방안엔 큰 촛불 두 개가 어둠을 밝힌 채 곳곳의 풍경을 밝혀준다. 벽 한쪽에는 알 수 없는 인물들이 그려져 있는 병풍이 펼쳐져 있고, 작은 소반 위에는 책과 무언가를 적기 위한 종이가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그 옆의 다른 소반 위에는 쌀과 물이 담긴 대접이 보인다. 벽면 한쪽에는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종이가 빨랫줄 같은 곳에 줄줄이 매달려 있고 정면으로는 금빛 동상이 나란히 그녀의 자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은 알 수 없는 향기가 계속 코끝을 적셔온다. 그녀가 우리에게 방석을 건넨다.


"이쪽으로 와서 편하게 앉으세요. 제 사는 곳이 좀 누추하죠?"

"아닙니다. 어머니"

"어떻게 선생님이 아이들을 데리고 이 먼 곳까지 왔어요?"

"방학이고 해서 아이들이랑 여행 좀 하다 보니 이곳에 오게 되었어요."

"우리 루머는 학교 잘 다니고 있죠?"

"네, 어머니."


루머와 머루는 한동안 방안 곳곳에 설치된 장식물을 쳐다보며 말을 하지 못한다. 아마도 루머는 어머니가 무당이라는 사실만을 알고 있었을 뿐, 무당이라는 삶 그 자체에 대해서는 처음 접해볼 것이다. 루머의 시선이 쉽게 어머니를 향하지 못한다. 잠시 그 누구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한 채 침묵의 시간이 흐른다. 그녀가 아이들의 모습과 내 눈치를 살피다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고 과일 몇 개를 꺼내 소반 위에 올려놓는다.

"과일 좀 드세요."

"네, 어머니, 감사합니다. 어머니도 같이 드세요."

"애들아, 너희들도 과일 좀 먹으렴."

"네"


말없이 그녀가 내놓은 포도를 한 알 한 알 입속에 넣는다. 달콤한 포도향의 진액이 입안을 적신다.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포도를 먹는다. 진한 향기 속으로 벽면을 타고 하얀색 무복이 걸쳐 있다. 그리고 그 위에 꽃갈모 같은 것이 무복 위에 얹혀 있다.


"루머야, 아버지 건강은 괜찮냐?"

"아빠가 어디 아파요?"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몸이 좀 많이 아프다고 해서."

"루머는 그런 소식 들은 적 없어?"

"아빠하고 이야기를 별로 안 해서요."

"그래, 아버지 좀 네가 잘 챙겨드리렴."

"........"


층층이 쌓인 그녀의 눈썹 아래로 무언가를 갈망하는 그리움과 쓸쓸함이 묻어난다. 구체적인 가정상황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무당의 길을 가기 위해 집을 떠나왔을 것이다. 이별에 대해 상대방을 향한 어떤 원망이나 상처 같은 것은 보이질 않았다. 다만, 보지 못한 가족을 향한 그리운 마음만이 그녀의 눈빛에 흐른다. 루머가 고개를 들고 엄마를 바라본다.


"엄마, 꼭 한 번은 엄마 사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보니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 나는 엄마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 길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볼 게. 그러니 너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 엄마를 이해해 줘서 고맙다. 이제 너도 많이 컸구나."

"엄마, 건강 잘 챙기고. 얼굴이 너무 마른 것 같아."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집에 가면 아버지 좀 네가 잘 챙겨드리렴."

"그래, 노력해 볼게. 그리고 우리 또 선생님이랑 가야 할 곳이 있어서 이곳에 오래 있지는 못할 것 같아. 다음에 기회 되면 다시 찾아올게."

"벌써 간다고? 하룻밤이라도 자고 가지?"

"다음에 오면 자고 갈게."


조급하게 루머가 그녀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뭔가 당황한 눈빛으로 그녀가 우리를 바라본다. 만난 지 한 시간도 안되었는데, 갑자기 루머가 어색한 분위기를 눈치챈 것인지 가겠다고 말하자 그녀의 눈빛이 당황스러워진다.

"선생님, 우리 루머 좀 잘 부탁드려요. 애가 심성은 참 착한 아이인데, 환경이 그러다 보니 아마 학교생활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을 거예요. 그래도 부족한 제 모습을 생각해서 잘 좀 부탁드려요."

"네, 어머니, 루머는 학교 생활 잘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네, 고맙습니다. 선생님."

"엄마, 그러면 우리 이제 갈게. 다음에 꼭 다시 올게."

"루머야, 좀 더 있다가지 그래. 우린 괜찮아. 오랜만에 여기까지 왔는데 벌써 이렇게 가면 어머니가 많이 섭섭할 거 같은데."

"그래, 루머야, 선생님이랑 나는 괜찮아. 엄마랑 좀 더 이야기도 하고 좀 있다 가자. 내일 가도 좋고."

"아니야, 다음에 엄마 만나러 내가 찾아올게. 괜찮아."


그녀가 루머의 표정을 살핀다.


"그래요, 선생님. 다음에 루머랑 저는 또 만나면 되니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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