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머가 일어나 방문을 연다. 머루와 나도 따라 일어나 루머의 뒤를 따른다. 뭔가 모를 어색한 만남과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던 복잡한 감정이 떠나는 발걸음을 어렵게 만든다. 주섬주섬 그녀가 우리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준다. 옆에 다가온 그녀의 몸에서 짙은 향냄새가 난다. 말없이 우리를 바로보지 못하는 그녀의 눈빛에 눈물이 흐른다. 루머가 그녀에게 말없이 안긴 후 차에 탄다.
"루머야, 어머니랑 좀 더 시간을 갖지, 왜 이렇게 빨리 나왔어?"
"엄마가 어떻게 사는지가 정말 궁금했는데, 막상 엄마의 모습을 보고 무당으로서 사는 풍경을 바라보니 엄마가 너무 낯설게 다가왔어요. 단순하게 엄마가 무당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방안의 풍경을 보니 엄마가 보통 사람하고는 참 많이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 그래도 어머니의 모습에 대해 네가 이해하고자 하는 그 마음을 어머님은 충분히 알고 계실 거야. 그것만으로도 이번 너의 방문은 어머니에게 행복한 선물이 되었을 거야. 그리고 조만간에 꼭 다시 어머니를 찾아보도록 해라. 선생님이 보니 어머님이 정말 많이 외로우신 것 같아. 알았지?"
"네, 선생님."
"그런데 루머야, 아버지가 어디 아프신 것 같은데 전화라도 한번 해보지 그래."
"네, 선생님. 조만간에 연락 할게요. 집 나온 후, 연락이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더 연락하기가 어려워지더라고요."
"머루야, 이제 우리 어디로 갈까?"
"선생님, 대구에 있는 김광석 거리에 한번 가보는 건 어떨까요?"
"김광석 거리?"
"네, 루머랑 텔레비전에서 볼 때마다 꼭 한 번 가보고 싶었어요."
"루머는?"
"네, 선생님. 저도 꼭 가보고 싶어요."
"그래, 그럼 김광석 거리로 다음 목적지를 정하자."
"그런데 머루는 언제부터 김광석 음악을 좋아했어?"
"저는 처음에 다른 가수가 리메이크 한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를 들은 후 그 곡을 처음 부른 가수가 김광석이라는 것을 알고 그의 노래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아, 그렇구나. 선생님도 그 노래를 들으면 누군가를 가슴에 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 같아. 물론 그 대상은 여자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부모님이 될 수도 있고, 또 친한 친구가 될 수 있겠지."
"네, 맞아요. 김광석의 음악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 때 꼭 그 상황을 위로해 주는 곡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의 음악을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영혼이 치유되는 것 같아요."
"으음, 우리 머루도 김광석 음악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루머만큼은 아니에요. 루머는 완전히 김광석에 빠져 사는 것 같아요. 하루에도 몇 번씩 그의 노래를 듣곤 해요."
"그래, 루머는 학교 수행평가에서도 김광석을 존경한다고 써냈지?"
"네, 선생님, 기억하시네요."
루머가 웃는다. 나이의 격차를 떠나 서로 간에 공유할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서로의 마음을 열 수 있게 하는 통로가 된다. 그들과 내가 서 있는 위치와 직업, 환경 등은 너무 다르지만 김광석을 좋아하는 그 이유로 어느새 마음의 교류가 쉽게 이루어진다. 그나저나 너무 급하게 그녀의 집에서 나온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루머는 아무래도 나와 머루에게 그녀가 살고 있는 방안의 풍경을 더 오래도록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던 무당으로서의 엄마의 삶과 그 삶이 보여주는 다른 풍경은 아마도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까지 우리가 가던 차를 향해 손을 흔들다 고개를 숙이던 그녀의 모습이 자꾸만 생각이 난다. 얼마나 자식이 보고 싶었을까? 미처 그 그리움의 감정을 다 드러내기도 전에 또 이렇게 급하게 집을 나서는 모습에 상처는 받지 않았을까?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마음속을 떠나지 않는다.
만남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통로가 되기도 하지만 더욱더 멀어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서로의 존재에 대해 양쪽이 모두 지금 그대로의 모습 자체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만남이라면 그 만남은 앞으로 더 자주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이해하는 배려의 순간이 될 것이다. 반면에 만남으로 인해 서로의 존재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이 거부감으로 다가오거나 이해할 수 없는 혼돈의 마음으로 다가온다면 그 만남은 그리움마저 사라지게 만든다. 루머와 그녀, 그녀는 누구보다도 루머하고의 만남을 통해서 머나먼 타지에서 살아온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며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깊어질 것이다. 그러나 루머의 마음 속에는 어떤 풍경이 자리잡았을까?
루머와 머루가 말이 없다. 출발한 지, 한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거나 차창 밖 풍경을 쳐다볼 뿐 차 안엔 고요한 정적이 흐른다. 애써 그 생각의 흐름을 깨고 싶지 않아, 잔잔하게 흐르던 음악도 끄고 각자의 생각을 담고 대구 김광석 거리로 향한다. 창밖으로 흐르는 풍경엔 가끔씩 오랜 시간을 견뎌왔을 풍경이 보인다. 그 풍경 속엔 나무도 있고, 작은 집도 있고, 넓은 들판도 보인다. 부디 루머와 머루의 마음속에도 저 오래된 풍경의 평온함처럼 지난 시간들이 그저 그리움이라는 마음속에 다 묻히어 가기를 바란다. 원망과 미움이 아닌, 가족을 향한 그리움으로 상처와 아픔마저 다 잊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