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추억

by 문객

말없이 운전을 하다 보니 차는 어느새 김광석 거리에 도착했다. 김광석 거리는 대구 방천시장 둑길 옆으로 조성되어 있다. 거리 곳곳에는 그가 생전에 남긴 주옥같은 노래의 풍경과 가사, 공연의 모습 등이 색색의 빛깔로 벽면에 그려져 있다. 짧지 않은 그 거리를 걷는 동안 김광석을 가슴에 품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노래 속으로 들어가 잠시 동안 짧은 추억 여행을 떠날 수가 있다. 생각해 보면 그가 떠난지도 이십 년이 훨씬 넘었는데, 그가 남긴 노래와 풍경 등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는 것을 보면 김광석이라는 가수의 삶과 노래가 전한 그 의미가 정말 크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도 십 년을 못가 잊히는 것이 일반적인데, 곁에서 함께 하지 않았던 가수가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오래도록 울림을 전한다는 것은 음악이 가진 또 다른 매력이라고 볼 수 있다.

처음 김광석 거리를 찾았던 것이 꽤 오래전이었는데 거리의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변한 건 그때는 혼자 이 거리를 찾았는데 지금은 혼자가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이곳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루머와 머루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김광석 그림 앞에서 각자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선생님, 우리 이곳에서 셋이 기념사진 한 방 남겨요."


금빛 물결 속에 공연을 하고 있는 김광석의 그림 앞으로 아이들이 향한다. 나도 대충 포즈를 잡고 아이들 옆에 서 본 다음 지나가는 사람에게 부탁을 한다. 양 옆으로 김광석 콘서트의 관객이 된 것처럼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는다. 머루가 웃는다. 균형이 맞지 않는 눈빛 사이로 초승달 같은 웃음이 찾아든다. 한쪽의 눈만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 수밖에 없었던 머루의 눈빛에 오랜만에 둥글둥글한 표정이 보인다. 조금 아래쪽으로 걸어가 보니 김광석이 평소 꿈꾸었던 오토바이 탄 모습이 보인다. 그는 늘 노래를 부르며 나이가 들면 해보고 싶은 것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멋들어진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는 것이라고 했다. 가끔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금목걸이, 찢어진 청바지, 각종 액세서리로 치장을 하고 멋들어진 가죽 잠바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떠나고 싶다고 했다. 루머와 머루도 그의 그런 바람을 들은 적이 있는지 오토바이 탄 김광석 앞에 자신들도 비슷한 포즈를 하고 사진을 찍는다.


아래쪽으로 조금 내려가 보니, '말하지 못한 내 사랑'이라는 노래의 가사가 적혀 있고 교복을 입은 남학생과 여학생이 기와집 돌담을 달리한 채 서로의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루머와 머루는 남학생과 여학생 밑으로 가 서로를 마주 보며 사진을 찍는다. 그들의 모습이 소년처럼 행복해 보인다.


여기저기 구경하다 보니, 배도 고파오고 김광석 거리 한편에 자리 잡은 떡볶이 집으로 향한다. 꽤 좁은 공간이지만 다닥다닥 붙어있는 테이블이 정감 있게 다가온다. 벽면 한쪽에는 이곳을 다녀간 수많은 사람들이 써 놓은 낙서가 보인다. 사랑을 고백하는 젊은 연인들의 고백도 보이고, 취업을 앞둔 동기생들의 졸업여행을 담고 있는 내용도 보인다. 그리고 천정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멋들어진 필 채로 김광석을 그리워하는 누군가의 짧은 시도 보이고 어느 정치인의 공약 같은 다짐도 보인다.


떡볶이가 나온다. 사장님의 인상이 김광석의 미소처럼 친근하고 소박하게 보인다. 추측하건대 그는 아마도 돈보다는 김광석의 음악이 좋아서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장사를 하게 된 것 같다. 자유로움을 강조하는 가게의 분위기와 다양한 메모지에 생전에 김광석이 남긴 주옥같은 말들을 적어놓은 걸 보면 그는 더없이 김광석의 팬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머루야, 어때? 김광석 거리 좋아?"

"네, 막상 와서 그가 머물던 방천시장이랑 이곳저곳을 거닐다 보니 김광석의 음악이 더 가깝고 친근하게 느껴져요."

"루머는?"

"네, 선생님. 저도 좋아요. 그런데 선생님, 김광석은 왜 자살 했어요?"

"글쎄, 아직도 풀리지 않은 궁금증이 많은데, 그건 그냥 물음표로 남겨둬야 할 것 같아."

"네"

"다만 지금도 그의 노래가 다른 많은 가수들에 의해 다시 불려지고 있다는 것과 그 노래를 잊지 못해 이렇게 이 거리까지 와서 그의 향기와 노래를 다시 되짚어본다는 것은 많은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네, 선생님."

"루머는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선생님하고 너무 잘 통하는 것 같아. 그런데 왜 이렇게 학교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어?"

"보여주지 않았다기보다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만남이나 시간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 맞아. 언제 한번 선생님이 너에게 다가가 김광석의 음악을 물어본 적이 있었겠니. 늘 학교에서는 대학 이야기만 하고 시험날짜만 알려주고 답답한 사상들만 가르치려고 했으니, 네 마음도 저절로 닫히게 되었겠지."

"그래도 선생님 윤리 수업은 들을만 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사상가들도 많이 나오고, 여러모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도 많이 되었던 것 같아요. 제가 자주 책상에 엎드려 있었지만 들을 것은 다 들었답니다."

"그래, 그건 정말 반가운 소리구나."

"머루는 학교에 대한 추억 같은 거 없어?"

"저는 그냥 중학교 때부터 학교 다니는 것이 너무 불편하고 힘들었어요. 성격이 그렇게 밝지가 않아서 아이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늘 학교에 가면 혼자 하는 생활이 익숙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학교에 가면 갈수록 더욱더 외톨이가 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한쪽 눈이 이러다 보니, 친구들도 쉽게 다가오지를 못하는 눈치였고 선생님들도 그냥 제 존재로부터 되도록 멀어지고 싶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자주 결석을 하다 보니, 학교가 더욱더 멀어지더라고요."

"그래"

"그런데 이러한 외로움을 인터넷상에서 루머와 같이 소통하고 이야기하다 보니 위로가 많이 되더라고요.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우리 둘은 정말 공통점이 많이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루머도 수업 시간에 고개를 잘 못 들어 선생님들한테 오해를 사거나 혼난다고 하는데, 저도 그랬거든요. 이상하게 사람들의 눈빛을 마주 보는 것이 버겁고 힘들더라고요. 지금은 그래도 많이 좋아진 거예요. 그때는 정말 단 한순간이라도 사람들의 눈빛을 잘 쳐다보지 못했어요."

"머루가 학교생활이 많이 힘들었겠구나."

"그래도 이러한 외로움의 돌파구로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하면서 나름대로 잘 지내긴 했어요."

"그래, 사람들은 누구나 다 말하지 못한 걱정과 고민 하나 정도는 가슴에 묻으며 살고 있는 거 같아. 선생님도 너희들에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참 많은 고민과 상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단다. 때로는 그 상처가 내 삶을 더욱더 짓누르기도 하고, 때로는 그 상처 때문에 다시 일어나 살아가 보자고 굳은 다짐을 하기도 해.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상처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아. 왜냐하면 그 상처로 인해 내가 좀 더 성숙한 삶을 살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의 상처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니게 된 것은 어쩌면 상처가 전하는 가장 큰 선물일 거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

"맞아요. 저도 제 눈에 대한 이러한 아픔이 없었다면 루머와 같은 친구를 만나지 못했을 거예요. 제 아픔을 알고 있었기에 루머의 아픔에 대해서도 같이 공감하면서 위로해 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 애들아. 오늘은 우리 김광석 거리를 좀 더 구경하고 내일 다른 곳으로 가자. 저 방천시장 쪽으로 가면 김광석 공연도 하니, 거기에 가서 김광석의 노래도 들으며 오늘만큼은 김광석의 영혼에 한번 취해보도록 하자."

"선생님, 말씀도 멋있게 하시네요. '영혼에 취해', 그래요, 오늘만큼은 그의 노래와 영혼에 마음껏 취해보게요. 그리고 선생님, 맥주도 한잔하세요. 저희들 때문에 빼지 마시고요."

"그래,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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