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성찰

by 문객

"머루야, 아버지 원망 많이 했지?"

"........ 원망이라고요? 원망 같은 감정조차 가질 수가 없었어요. 엄마는 늘 아버지의 행방에 대해서 묻지 못하도록 제 입을 닫아버렸거든요."

"그래, 이제와 미안하다는 말이 너에게 어떤 의미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할 말이 없구나."

"할 말이 없으면 그냥 좀 할 말이 없는 대로 가만히 계셨으면 좋겠어요. 자꾸 변명처럼 들리는 그런 말 좀 그만하고요."

"........"


그녀가 머루의 눈빛을 바라보며 애써 머루의 입을 막고자 눈치를 주지만 머루는 그녀의 눈빛을 외면한다. 십 년 넘게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거취조차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갑작스럽게 스님의 모습으로 나타나 아버지라고 말하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머루의 혼란스러운 마음이 더없이 안타깝게만 다가온다. 그녀가 루머와 머루를 데리고 잠시 문밖으로 나간다. 스님은 아무말없이 머루가 새겨 놓은 마음 심자를 바라만 본다.


"선생님, 여기까지 왔는데 안 좋은 모습만 보이는 것 같아 미안해요. 내가 좀 사연이 깊은 사람입니다. 사업한다고 여기저기 돈 빌려 공장 하나 차렸는데, 아는 사람 보증을 잘 못서 하루아침에 모든 것 다 잃고 빚쟁이가 되어 떠돌아다녔어요. 그게, 머루가 이제 막 걷기 시작하면서 돌아다니던 네 살 무렵이었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 안 해본 일 없이 닥치는 대로 해가며 생활비를 마련해 살았는데, 어느 날 공황장애 비슷한 것이 찾아오더라고요. 아마 먹는 것도 제대로 못 먹고 잦은 스트레스에 쫓기다 보니 그런 증세가 나타난 것 같아요. 그러다 결국 머리에 있는 혈관이 막혀 죽다 살아난 거 같아요. 그 이후로 더 이상은 안될 것 같아 작은 사찰에 가 수행을 하다가 결국 이렇게 스님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 길은 그때 당시 살기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그런 길이었던 거 같아요. 그 이후로 집사람이랑 머루가 고생을 너무 많이 했어요. 머루 눈 저렇게 된 것도 알고 보면 다 나 때문인 거 같아요. 내가 좀 더 반듯한 사람이었다면 머루 엄마가 그런 고생을 하지 않았겠지요. 머루한테 지금 내 모습을 이해해 달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저 아버지라는 존재가 이 땅 어딘가에 있다는 정도만 말하고 싶을 뿐이에요."

"네, 스님. 머루도 아마 스님의 그런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는 순간이 올 거예요. 지금은 너무나 본인도 당황스럽고 해서 그러한 말이 나온 거 같아요."

"모쪼록 선생님 덕분에 머루도 만나고 너무 고마워요."

"아닙니다. 저도 예전에 이곳에 와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하고 돌아갔던 기억이 있어요. 아마도 그 일에 대한 보답으로 이러한 만남을 이루게 해 준거 같아요. 스님,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요. 이제 머루도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서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살아가면서 더 자주 만나며 서로의 존재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을 거예요."

"선생님, 고마워요."


문밖으로 나오자 루머는 마루에 앉아있고 머루와 그녀는 마당을 돌고 있다. 그녀는 머루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 한 손으론 머루의 손을 꼭 잡고 있다. 경내의 밤이 깊어간다. 어둠 속에 묻힌 바람소리가 잔잔하게 마음을 달랜다.


"샘님, 여기까지 이렇게 애들이랑 같이 동행에 고마워요. 샘님 덕분에 우리 머루가 아버지를 보게 되었네요. 예전에 몇 번 머루 데리고 이곳에 오려고 했었는데 막상 용기가 나지 않더라고요. 오늘은 머루랑 저는 같이 자도록 할게요. 루머와 샘님도 피곤하니 얼른 쉬세요."

"네, 어머님, 어머님도 편안한 밤 보내세요. 머루, 루머도 잘 자고."

피곤한 몸을 대충 씻고 침대에 눕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머루는 아버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할까? 아직은 청소년기이기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스님으로서의 아버지 모습에 대해 많이 당황스러워했을 것이다. 옆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루머는 아버지 생각이 나지 않았을까? 며칠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아버지로부터는 아무 연락이 없다. 그는 정말 루머의 존재를 잊고 싶은 것일까? 분명 집을 나갔고 담임으로서 루머의 행방에 대해 전화를 했었는데, 아직도 전화 한 통이 없다.


밤이 깊어간다. 뒤척이는 이불 사이로 부스스 혼란한 마음만 깊어갈 뿐 잠시 쉽게 오지 않는다. 텔레비전도 없고 핸드폰을 꺼내어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라는 노래를 켜 본다.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 새와 작별하듯 그대 떠나보내고 돌아와 술잔 앞에 앉으면 눈물 나누나. 그대 보내고 아주 지는 별빛 바라볼 때 눈에 흘러내리는 못다 한 말들 그 아픈 사랑 지울 수 있을까? 어느 하루 비라도 추억처럼 흩날리는 거리에서, 쓸쓸한 사람 되어 고개 숙이면 그대 목소리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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