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소망

by 문객

벌써 시간은 새벽 세 시를 향하고 있다. 계속 뒤척임만 있을 뿐 눈이 감기지 않는다. 책상 위에 앉아서 꽂아있는 책들을 읽어본다. 대부분 스님들이 집필하신 책이다. 그중 가장 편안하게 다가오는 '마음 수첩'이라는 책을 펼쳐본다. 템플스테이를 오고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묶어서 만든 책이다.


'스님들은 너무 외롭고 심심하겠다. 이곳엔 텔레비전도 없고 게임도 없고 오직 나무와 밤하늘의 별만 있다. 스님들은 매일 별만 보고 사는 걸까? 엄마, 아빠는 이곳에 머무는 동안 마음 여행을 통해 매우 좋은 시간이었다고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마음을 어떻게 여행하는지도. 빨리 집에 갔으면 좋겠다. 심심하다.' - 초등학교 5학년 OOO

'깨달음은 결국 마음의 문제라는 것을 다시 알게 된 시간이었다. 정신없이 살아온 지난날들을 되새겨 본 귀중한 시간 속에서 마음껏 내면의 풍경을 감상했다. 그런데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이 이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인지. 그래도 이곳에 머무는 기간 동안 잠시 바깥 풍경의 복잡함을 잊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전한다.' - 부산에 사는 OOO

'헤어짐의 아픔을 견디지 못해 이곳을 찾았다. 떠나간 그 사람이 아직도 많이 보고 싶고 그립지만 이별의 아픔이란 게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는 것을 알기에 조금씩 그의 존재를 지워보고자 한다. 부디 그 과정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사람도 하늘 어딘가에서 이곳의 좋은 풍경만을 가슴에 담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 서울에 사는 OOO

'몇 년째 취업 준비를 하다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 사표를 쓰고 마음이 답답해 이곳을 찾아왔다. 직장에서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또 어떤 직업을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한동안은 마음이 가자는 대로 그렇게 가보고 싶다. 애써 아픈 마음을 다른 그 무엇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강제적으로 끌고 가고 싶지는 않다. 바람이 부는 대로 그렇게 한 동안은 살아가 보고 싶다. 백수청년처럼.

- 전주에 사는 OOO

글을 읽다 보니, 어느새 새벽을 깨우는 범종소리가 들려온다. 새벽예불 시간이다. 고요한 어둠 속으로 범종 소리가 잠든 가야산을 깨운다. 그 소리가 묵묵하고 은은하여 마치 노승의 어루만짐처럼 들려온다. 잠시 범종소리에 마음을 가다듬고 조용히 눈을 감아본다. 이곳을 거쳐 갔을 수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사연 속에서 뜻 모를 공감과 상처의 어루만짐을 느껴본다.


"샘님요, 아침 식사해야죠?"

그녀의 목소리이다. 새벽녘 범종소리를 듣다가 피곤함에 잠시 잠에 들었다.

"네, 어머님. 바로 나갈게요."


루머와 머루도 일어나 함께 식당으로 동행한다.


"샘님, 이제 어디로 갈 계획이에요?"

"글쎄요, 이곳에 너무 갑작스럽게 오게 되어서, 아이들한테 한번 물어봐야 할 것 같아요."

"네, 저는 아침 먹고 안양으로 다시 올라가요. 애들이랑 즐거운 여행 되고요. 어젯밤에 선생님 덕분에 머루랑 이야기 잘 나누었어요. 언젠가는 머루도 아버지를 이해할 날이 오겠죠. 모쪼록 머루 좀 잘 부탁드려요."

"네, 어머님."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한 후 각자의 방으로 와 옷을 갈아입고 사찰에서 내어준 옷을 포개어 사무실 앞 선반 위에 올려놓는다. 머루의 표정도 어제와는 다르게 편안해 보인다. 잠시 암자에 있는 스님께 찾아가 인사를 드리고 먼 길을 떠나야 하는 그녀를 배웅한다. 애써 어젯밤의 분위기처럼 서로의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정제된 모습으로 인사를 나눈 뒤 눈빛과 다독거림으로 서로의 안부를 챙긴다. 스님의 미소가 더없이 고요하다. 애써 무언가를 참는 듯 고요한 미소가 눈빛 가득 그리움을 전한다. 그녀가 차에 시동을 건다. 짧은 인사를 나눈 후 그녀가 출발한다. 스님이 떠나는 그녀의 차량을 향해 손을 흔든다. 우리도 스님께 인사를 건네고 차에 오른다. 머루가 차에 타기 전 스님의 얼굴을 다시 한번 천천히 바라본다. 그리고 복잡한 속내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듯 고개를 숙인다.

"애들아, 이제 우리 어디로 가볼까?"

"글쎄요, 선생님."

"선생님이 자주 오르던 산이 있는데, 그 산에 한번 같이 갈래?"

"무슨 산요?"

"응, 전주 인근에 있는 모악산이야."

"네, 선생님. 저희도 괜찮아요."

"그래, 그럼 다음 목적지는 모악산으로 향하자."

"네."

"머루야, 마음은 괜찮지?"

"네, 선생님. 어제 엄마랑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면서 아버지의 입장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어요."

"그래, 어제 선생님도 아버지하고 이야기해봤는데, 스님이 될 수밖에 없었던 여러 상황이 있었더라고."

"네, 선생님. 저도 어제 엄마한테 들었어요."

"그래. 지금은 좀 어렵겠지만 아버지의 삶을 천천히 이해해 보도록 하자."

"네."

"루머는 혹시 아버지한테 연락드렸어?"

"아직요."

"선생님하고 잘 지내고 있다고 문자라도 한 번 남기지 그래."

"......."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아버님도 지금 네 걱정을 많이 하고 계실 거야."

"......."

"애들아, 산은 좋아하지?"

"등산은 해 본 지가 꽤 오래되어서요."

"머루는?"

"저도 산의 정상까지 가본 지가 거의 없었던 거 같아요."

"그래, 천천히 가면 되지. 뭐 꼭 정상까지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니 힘들면 중간에서 내려와도 되고. 편안하게 생각하자."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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