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고삐를 제대로 잡고 간 사람들이 남긴 부산물을 보고서 그것이 내 고삐인 걸로 착각하면 인생은 죽을 때까지 답이 없는 미궁으로 남게 됩니다. 남이 어떤 고삐를 잡고 그 고삐를 유려하게 문장으로 풀어낸 것들을 보면 일단 열등감과 질투심을 느끼셔야 합니다. 그리고 내 고삐가 무엇인지를 서둘러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경전을 읽는 이유는 종이 되기 위함이 아닙니다. 경전을 읽고서 주인이 되기 위함입니다. 바로 자기 자신의 주인 말입니다. - <건너가는 자>, 최진석
나를 찾아가는 일은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봐도 좀처럼 답을 주지 않습니다. 그만큼 어려운 길입니다. 때때로 많은 책을 읽고 사유해 봐도 나는 누구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 길인가 싶어 걷다 보면 이 길이 아닌 것 같고, 머뭇거리다 보면 금세 방향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 삶의 길인 듯합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대부분의 학문이 존재하는 이유는 결국 삶의 길을 묻고 그 길을 찾기 위한 과정의 연속입니다. 그러면 왜 우린 이렇게 힘든 사유의 과정을 해야만 할까요? 그냥 마음이 가자는 대로, 발길이 머무는 대로 그렇게 살아가면 안 될까요? 아마도 그렇게 걷다 보면 한 번뿐인 삶이 '나 없는 누군가의 배경에 가려' 쉽게 사라질까 두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삶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소망은 어쩌면 유한한 삶이 지닌 가장 가치로운 일이자 간절한 바람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