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한 제자가 교무실에 찾아와 말합니다.
"선생님, 저 기억하세요?"
"응, 기억하지."
"선생님 수업이 좋아 철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철학과?"
철학과라는 말에 말문이 잠시 닫힙니다.
"어떻게 다닐만 해?"
"네"
"힘들지?"
"교수님이 로스쿨 쪽으로 도전을 해보라고 해서요. 그쪽으로 방향을 잡으려고 합니다."
"그래, 잘했다."
고등학교 3학년 입시지도를 하다 보면, 성적이 좋든 나쁘든 모든 학생과 학부모님들이 의치예에 입학하기를 간절하게 소망합니다. 물론, 전망 좋은 과를 지향하는 것은 응원할 일이지만 흥미와 가치, 일의 의미조차 묻지 않은 채 무조건 의치예만 가야 성공한 삶이라는 등식이 무모할 만큼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모든 학생이 다 의치예만 꿈꾸면 누가 건물을 설계하고, 기술을 개발하며, 글을 쓰고, 작곡을 하며, 가치의 문제를 고민할지 걱정이 됩니다.
철학과를 간 제자에게 '정말 잘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아마 그런 말을 자랑스럽게 주변에 할 수 있고, 또 그 말에 우리 모두가 호응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곧 다른 무엇보다 '사람의 길과 가치'를 중시하며 더불어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증표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