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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 타신 예수와 캐딜락을 탄 그에게 환호하는 이들에게

by His table

마치 개선장군처럼 비싼 외제차에서 내려 많은 이들의 환호에 응답하듯

환한 미소로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보며,

최근 몇 년 간 느껴보지 못한 분노와 허탈감을 느꼈다.


그 와중에 느껴진 이상한 기시감이 있었는데,

잠시 생각해보니 이와 비슷한 장면이 복음서에도 등장한다.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께 수많은 유대인들이

환호와 찬양을 보내던 장면이 그것이다.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마2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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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던 것처럼

성조기와 태극기를 흔들며, 그를 맞이하는 장면을 보니.

마음 깊은 곳에서 깊은 시름과 여러 단상들이 떠오른다.


물론 두 장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아니 두 장면을 비교하는 것 자체에 불편함도 있다.


예수님은 볼품 없는 나귀를 타셨으나 그는 캐딜락을 탔으며,

예수님은 죄 없이 십자가를 지러 가시지만,

그는 자기 죄로 인한 십자가를 피하러 가는 길이다.

그럼에도 오늘 느껴진 기시감의 원인은 두 장면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2000년 전 나귀를 타신 예수님을 환호하며 맞이하던 그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대중으로 변한 이유는

무엇일까?

불과 4달 전에 폭력과 권력을 위해 내란을 일으키며, 국격을 훼손한

그를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처럼 환호하며, 태극기를 흔드는 그들의 동인은

무엇일까?


두 장면에 등장하는 공통점은 환호하는 대중들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지금 환호하는 대상이 어떤 존재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나귀를 타신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왕임을 몰랐던 그들도,

캐딜락을 타고 두두등장한 그가 폭군이요 독재자라는 것을 모르는

그들도 마찬가지다.


그런고로 앞으로 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겠으나,

저기서 환호하며 그의 등장에 감동하는 그들이 시간이 지나도

끝까지 그를 따를 것인지는 지켜봐야 아는 것이다.

물론 당신들이 어떠하든 그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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