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말했다.

종교 레토릭(rhetoric)의 위험성

by His table


"오늘 새벽에 주님이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은 각자의 레토릭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정치나 종교와 같은 분야에서의 레토릭은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의 레토릭을 듣는 청중들은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교회와 같은 특수한 집단에서 지도자가 사용하는 레토릭을 분석하면 재밌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런 것 같습니다." 또는 "그럴 수도 있습니다."와 같은 모호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먼저 레토릭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레토릭(rhetoric)이란 고대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설득의 기술'로 정의되었습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에서 효과적인 레토릭(설득)을 위해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첫째. 로고스 = 논리적 설득

둘째. 파토스 = 감정적 호소

셋째. 에토스 = 화자의 인격과 신뢰도 또는 권위


오늘 저는 한국 교회의 종교지도자들 중 특히 문제적인 지도자들의 레토릭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아마 우리가 있는 교회에도 이런 레토릭을 가진 종교지도자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뒤도 돌아보지 말고 그곳에서 도망치십시오.


1. 로고스(논리적 설득)의 부재.


현재 한국 개신교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논리적 설득의 부재입니다.

조금 더 엄밀히 말하자면 한국의 목회자들은 성도들에게 이것을 필요로 하지 않도록 훈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목회자들 스스로가 이런 훈련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오늘처럼 저열한 목회자들이 즐비한 시대에도 덕망 있는 목회자들도 있습니다.

저는 남포 교회의 원로목사이신 박영선 목사님이 그런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박 목사님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무근검)에서 오늘 한국 개신교에 대해 이렇게 비판합니다.


"현대 복음주의의 위기를 가져온 두 번째 문제는 반(反) 지성주의입니다.... 체험이 너무 강해 신학의 전체 내용 안에서 자신의 체험을 자리 잡게 하는 일에 방해를 받습니다. 체험 때문에 신학의 균형을 깨기에 이릅니다. 체험은 가치 있는 일이지만, 그것이 말씀으로 확인되지 않을 때는 체험만 살아남게 됩니다. 그리고 체험을 근거로 위험한 신학이 형성됩니다."


작금의 한국 교회가 반지성적이고, 맹신적인 종교가 되어버린 것에는 '체험위주의 신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체험을 강하게 한 사람들일수록 교회에서는 소위 '권위'를 가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아는 동생이 다녔던 교회의 목사는 설교 때마다 간증을 한답니다.

그 목회자가 젊었을 때 기도를 하면 아픈 이들이 치유가 되었다고 하는데요.

한 번은 동네에 송아지가 아파서 기도를 했는데 병에서 고쳐졌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간증 뒤에 나오는 설교의 내용들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는 말을 하나님이 하시는 말처럼 들으라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오만하고, 방자한 말을 쏟아내는 목회자를 손가락질하겠지만,

정작 해당 교회의 성도들은 목회자의 말을 듣고 "아멘('믿습니다. 동의합니다'라는 의미)"이라고 반응합니다.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초월적인 체험을 했다고 해서 그가 신의 대리인이 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그가 하는 말들에서 논리적 모순이 수두룩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비판하지 못하는 한국 교회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2. 파토스(감정적 호소)로 가득 찬 설교.


로고스의 빈자리를 매워줄 수 있는 것이 바로 파토스입니다.

오늘 한국 개신교 목회자들은 파토스에 치중된 설교를 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문제는 회중들도 감정적 호소로 가득 찬 설교를 듣는 것에서 일종의 '희열'을 느끼며,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일종의 '도파민 중독'과 같은 현상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Neuroscience News (2025)를 통해 버지니아 공대가 발표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도파민,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은 감정적 어조와 뇌 영역과 관련된 뚜렷한 패턴으로 감정적인 단어에 고유하게 반응"한다고 말합니다.


저는 감정적 호소가 담긴 설교에 사람들이 반응하고, 즐겨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추정합니다만,

제가 지적하고 싶은 문제는 그것보다는 더 본질적인 것입니다.


파토스로 가득 찬 설교에 치중된 종교지도자와 회중들로 구성된 종교집단은 이성적, 논리적 사고와

정반합을 통한 공동체적 문제 해결 능력을 상실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한국 교회는 비판적인 사고를 통한 문제의식과 토론과 논의를 통한 의견 제시 또는 대안을 도출하는 능력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근래에 한국 개신교 목회자들의 부정부패와 비리가 정치계에까지 닿았다는 소식이 연일 들려옵니다.

모 대형교회 목회자는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이 되기로 결정되었고,

모 대형교회 목회자는 구명로비 의혹으로 압수수색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것을 '종교 탄압'이라는 프레임을 씌웁니다.


아마 그들의 레토릭은 탄압에서 고난이라는 방향으로 흘러갈 확률이 높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다 보니 고난을 받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식의 레토릭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더 이상 종교지도자들에게 이런 식으로 속거나 기만당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그저 추악한 거짓말일 뿐입니다.


3. 무대 위에서 만들어진 에토스(화자의 인격과 신뢰도 또는 권위)


로고스와 파토스에서 종교지도자들의 문제를 지적했다면,

에토스에 대한 부분에서는 소위 '성도들'에 대한 문제를 지적해야 될 것 같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유명하고 신망받는 목회자들은 대부분 '대형 교회' 또는 '집회'를 통해 스타가 된 목사들입니다. 많은 이들이 그들의 레토릭에 감동받고, 그들을 향한 열렬한 환호를 보냅니다.


그러다 그들의 사생활 또는 윤리적 문제가 발생하면 그들을 비난하고 또 다른 추앙의 대상을 탐색합니다.

저는 이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국 교회의 성도들은 메시지 보다 캐릭터에 집중하는 편입니다.

보통 이런 캐릭터들은 무대 위에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니면 책이나 영상 같은 콘텐츠를 통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런 류의 목회자들을 향해 보내는 절대적 지지와 신뢰에는 '관계성'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예전에 아는 청년이 자신에게 맞는 교회를 찾기 위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얼마 후, 일산의 모 교회에 방문했던 그 청년은 저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번 주일 교회에 가봤는데, 목사님이 청년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가진 것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그게 어떻게 느껴졌는데?"


그 청년은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맞습니다. 무대 위에서 설교를 듣고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눠본 적도, 그들과 밥 한 끼를 같이 먹어본 적도,

그들의 삶의 자리에 발을 디뎌본 적도 없는

당신들은 어떻게 그리 쉽게 그들에게 신뢰와 권위를 줄 수 있나요?


이런 문제가 만들어내는 사례는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하나를 들어볼까요?


독일의 히틀러입니다.

그는 강렬한 카리스마와 파토스를 통해 독일 군중들에게 스스로를

민족의 구원자, 운명적 지도자라는 에토스를 만들었습니다.

많은 이들은 이것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많은 회중 앞에서 말하는 사람들은 종종 유혹에 빠집니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말을 관철시키기 위해 윤리적 선을 넘어버리는 유혹말입니다.


이들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닙니다!

이들은 의식이 깨어있는 회중들,

비판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에 의해 통제됩니다!


4. 결론


한국 개신교는 큰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이 위기를 만들어낸 것은 바로 '우리'입니다.

저도 포함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오늘 저열한 레토릭으로 사람들을 기만하는 종교지도자들과

무분별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수용하며 지지하는 추종자들이 만들어낸 한국 교회의 폐해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만약 오늘 누군가 여러분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다면 그를 멀리 하십시오.

만약 그런 이야기에 열광하는 집단에 둘러 쌓여 있다면 얼른 그곳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앞으로 "그가 말했다'는 이런 폐해를 통해 만들어진 한국 교회의 실상을 고발하고,

실제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장이 될 것입니다.


*관련된 질문이나 의견이 있다면 댓글을 통해 남겨주시면 성심껏 답글을 드리겠습니다.

그럼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계시(啓示)인가, 망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