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교회 박영선 목사 논란에 대한 단상
작년 한 해 ‘개혁’이란 외침과 바람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특히 ‘사법개혁’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됨에 따라, 개혁의 대상이었던 사법부도 마지못해 반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실 급한 불을 끄겠다는 임시방편으로 보이지만, 어쨌거나 대법원이 주최한 공청회에 참여한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은 내란 재판과 사법개혁을 연결하는 것을 반대하며 이런 말을 전했다.
“휴먼 에러(human error)가 있으면 휴먼을 고쳐야지, 시스템을 고쳐서는 안 된다.”
현재 내란 재판의 문제는 특정 재판관의 문제이지 현 사법제도가 원인이 아니라는 발언이다. 이와 비슷한 장면이 최근 다른 곳에서도 보였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비리가 폭로되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를 기점으로 정치권 전체의 민낯을 보게 되는 참상이 벌어졌다. 민주당 정청래 의원의 이번 사안에 대한 발언은 마치 데자뷔 같다.
“시스템 에러보다는 휴먼 에러에 가깝다.”
문제는 정말 휴먼일까, 아니면 시스템일까? 왜 그들은 시스템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고 말하는 것인가? 어제 보도된 남포교회의 문제를 비판하고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많은 글이 그저 ‘박영선 목사에 대한 비판 또는 조롱’에 가깝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목도하는 문제들이 발생하는 시스템의 운영자인 ‘휴먼’의 한계성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견제하지 못하는 시스템이라면, 앞으로도 한국 교회는 이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1. 시스템 에러를 부인하는 이유
앞서 재판관, 정치인 등이 시스템 에러를 부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기의 이해관계 또는 집단을 지키고자 하는 방어 기제가 발동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이를 한국 교회로 적용해 보자.
예컨대 대형교회의 시스템 문제를 지적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솔직히 말하자면 대부분 어떤 이유로든 대형교회에 소속되지 않은 이들이다. 반대로 세습, 성범죄, 재정 비리 등이 일어났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휴먼’의 문제로 인식한다.
이런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으니 대형교회 입장에서도 최후의 카드로 ‘휴먼 에러’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한 개인에게 책임을 지우고 결국 집단을 지키는 가장 교묘하고 편리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어떤 목사가 “나이가 들어 변질되었다”라는 식의 비판에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나에겐 경작되지 않은 밭에 물을 주고 씨를 심어 생겨난 당연한 결과로 보일 뿐이다. 물론 그가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진심이었는지를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땅도 좋았고 환경도 따라주었으며 농부도 지혜로웠는데, 끝에 가서 열매가 안 좋은 걸 보니
“농부가 그냥 나쁜 놈”이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것이다.
애초에 어떤 땅에 씨를 뿌리고 있는지 모르고 응원하던 사람들,
그것을 따라서 똑같은 밭에 열심히 씨를 뿌리고 있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것이
한국 교회의 진짜 문제가 아니냐고 말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이라도 우리가 단순히 휴먼 에러라는 지엽적인 판단에서 벗어나,
이 문제가 발생하는 시스템 에러에 대한 정직한 성찰이 필요하다.
비단 남포교회의 문제가 작은 교회들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이 있을까?
2. 휴먼 에러를 고치지도 인식하지도 못하는 시스템
박영선 목사에 대한 비판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되는 것으로 보인다.
1) 그의 설교와 다른 작금의 변칙적 세습에 대한 비판
2) 지금까지 박영선 목사의 행적과 이번 사태에 대한 연속성 있는 비판
전자의 비판들은 ‘배신감’에 정서적 기반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후자는 예상했다는 반응 또는 이미 기대가 없었다는 반응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에겐 전자가 문제처럼 보인다.
박영선 목사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지켜보지 않았던 사람들이라면 몰랐을 그의 정치적 발언과
목회자로서의 행적은 차치하더라도,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주제로 유명 설교자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교회 시스템은 그가 아니라면 셧다운(shut down)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를 대체할 대안이 나타날 때까지 교회 측도 그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이는 여의도, 저동, 서빙고, 서초동에서도 똑같이 일어났었다.
결국 교회가 셧다운 되거나 설교자가 셧다운 되거나 둘 중 하나이다.
악어와 악어새 같은 시스템의 문제는 우리를 ‘설교자 중심의 교회’에 대해 다시 숙고하게 만든다.
설교 중심 교회의 헤게모니를 쥔 설교자가 은퇴 이후에도 교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설교자라는 휴먼 에러를 검증하고
최소화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신학교의 교육 과정,
개척 시 건강한 교회 구조에 대한 교단 차원의 검증, 후임 목회자 청빙 과정과 은퇴 목회자에 대한 처우 등에 관한 시스템 말이다.
근본적인 시스템 에러를 고칠 휴먼을 양성하는 과정과 기관들의 시스템도 에러가 생긴 형편이다.
이제는 시스템 에러가 중요한지 휴먼 에러가 중요한지 따지는 것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3. 좋은 목자가 그립다
“그들을 내버려 두어라. 그들은 눈먼 사람이면서 눈먼 사람을 인도하는 길잡이들이다.
눈먼 사람이 눈먼 사람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 (마 15:14)
눈먼 사람을 쫓아가는 눈먼 사람들이 있다. 문제는 이들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데
막아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도 눈이 멀었거나 아니면 관심이 없는 탓일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형편이 아닐까? “그곳으로 가지 마! 거긴 낭떠러지야!”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아니면 내가 눈이 멀었다는 사실이라도 알고,
나와 함께 가는 사람들 때문이라도 걸음을 멈출 수 있는 그런 목자들이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겁도 없이 빠르게 걷는 목회자들을 주변에서 많이 본다.
확신에 가득하여 거침없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화가 나지만,
그를 따르는 이들에게 외쳐봤자 나만 욕먹겠지라는 생각에 마음을 접는 나를 본다.
어쩌면 한국 교회의 문제는 나 같은 사람 때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