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와 소회
올해(2022년)에는 담임을 맡지 않고 행정 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11년 만에 처음으로 비담임을 해봐서 그런지 아직은 조금 어색하고 이따금씩 작년 담임반 아이들이 생각나곤 한다.
퇴근길에 휴대전화 메모지에 적힌 글을 떠들어보다가 작년 우리 반 아이들과 관련하여 쓴 글을 찾았다.
아마 졸업식날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하던 종례의 내용을 추려서 적었나 보다.
-
코로나로 인해 교실에서 졸업식을 했다.
졸업식을 마친 뒤 마지막 종례를 했다.
‘축하해! 잘 지내렴! 고마웠어.’
졸업을 시킬 때 항상 하던 인사말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대신 어물거리던 입에서는 마른 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른이 어른인 이유는...”
평소 졸업식에 앞서 북받치던 그런 감정이 아닌 묘한 기분에 인후에서 쇠맛이 느껴진다.
“본인이 지닌 지독한 감정 찌꺼기들을 자기의 그릇에 잘 담아 넘치지 않게 보관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래야 타인의 감정에 얼룩을 묻히지 않을 수 있거든
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면
사실 올해는 선생님 교직생활 중에 가장 힘들었던 한 해였어. 업무도 그렇고 사건도 많아서 진짜 하루종일 일에 짓눌려 지냈거든.. 내가 힘든 것을 너희가 몰랐으면 좋았을텐데.. 아마 모두 알았을 거야. 왜냐면 자꾸 내 그릇에서 흘러넘친 감정들이 기어코 너희를 찔렀던 것 같거든.
그래서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
너희 중 어떤 사람은 중학생이라 할 수 있는 철없는 행동을 하기도 했고, 어리기 때문에 이해 가능한 잘못을 하기도 했지. 또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를 저지른 경우도 있었어.
그럴 때 잘 가르치고 좋은 방향으로 옮겨 주라고 내가 있는 것인데.. 올해의 나는 나의 힘듦에 기대어 너희에게 한도를 초과한 화를 내기도 했고 정량 이상의 지적을 했던 것 같아.
그 매서운 말과 사나운 눈빛에 누군가는 자존심을 다치고 누군가는 마음의 문을 닫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끝맛이 쓴 느낌을 영 지울 수가 없단다.
혹여 상처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 아픔의 근원이 본인의 모자람 혹은 모남으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꼭 이야기해 주고 싶었어.
부디 서운함과 아쉬움은 교문을 나서는 너희를 따라가지 못하기를 바랄게.
음..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이해가 필요하고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데
내가 너희에게 미안함이 먼저 드는 것을 보면 내가 계획했던 것보다 너희를 사랑하지 못한 것 같아. 오히려 버거운 일상을 보내는 나를 많이 이해해 주던 너희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1년을 보내느라 정말 애 많이 썼어. 삶은 어쩌면 견디어 내는 것 그 자체로 대단한 것이 아닌가 싶다.
더 나을 내일이 있기를 기원하며 못다 한 사랑을 가득 담아본다. 졸업을 축하한다.”
막연한 마음을 담아서 이야기하느라 아이들의 눈도 못 마주치고 주절거리는 나에게 오히려 수고했다고 고마웠다고 박수를 쳐주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어떤 눈으로 쳐다봐야 할지, 나는 배우지 못하여 고개를 또 떨구었다.
내가 너희를 가르친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성장시키고 다독인 것은 오히려 너희였구나.
참 고마웠다.
-
올해 나는 전근을 했기 때문에 작년 담임반 아이들을 더 보기가 어려워졌다.
모두들 16세 시절보다는 덜 힘들고 잘 지내고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