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곽작가 역사트레킹 Feb 21. 2021

<옛 절터여행> 허전함이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곳

원주 법천사지, 거돈사지 탐방






* 법천사지에서 거돈사지 가는 길








*** 지난 1월 31일부터 2월 5일까지, 6일간 강원도 일대를 탐방했다. 잘 간직하기 위해 기록한다. 디테일한 것보다는 스케치 정도 수준이다. 탐방 순서는 이렇다.



인제 ☞ 속초 ☞ 양양 ☞ 강릉 ☞ 평창 ☞ 원주









* 법천사지 당간지주








2021년 2월 5일 금요일.


강원도 동계여행의 마지막 날. 이날은 원주에 있는 폐사지 여행으로 테마를 잡았다. 남한강변을 끼고 있는 원주 일대에는 예전에 큰 사찰들이 번창을 했었다. 하지만 이후 억불정책, 전란 등으로 인해 사찰들은 폐사가 된다. 이날은 그렇게 폐사가 된 법천사지와 거돈사지를 찾아나섰다. 이 두 곳은 모두 원주시 서쪽에 위치한 부론면에 자리잡고 있다.


먼저 부론면 법천리에 있는 법천사지를 찾았다. 법천사(法泉寺)는 한자에도 보이듯 '진리가 샘물과 같이 솟는다'라는 뜻을 가졌다. 남한강을 따라 강원, 충청, 경기의 물산들이 이동을 했던 이 일대에는 흥원창이라는 큰 조창이 있었다. 고려시대 13개 조창 중에 하나로 설치된 흥원창은 조선시대에도 계속 그 기능이 이어져 마포 일대에 있던 경창까지 세곡과 공물들을 수송했다. 그런 남한강 수계를 이용한 조창과 그에 따른 물산의 집산은 이 일대에 큰 사찰들이 자리잡을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물적 동력이었을 것이다.


먼저 당간지주를 찾아보았다. 법천사지도 다른 페사지들처럼 허허벌판에 있는터라 평지에 우뚝 서 있는 당간지주에 첫 시선을 모을 수밖에 없다. 사찰이 융성했을 때도 지금처럼 사찰이 망했어도 당간지주는 사람들에게 길잡이 역할을 해준다. 사실 당간지주가 없었다면 좀 헤맸을 것이다.


길이가 약 4미터 정도 되는 법천사지 당간지주는 후기 신라시대에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별다른 장식없이 소박한 외형을 드러내고 있는 당간지주는 강원도 문화재자료 20호이다. 좀 거시기하지 않은가? 천년의 세월을 넘긴 문화재가, 더군다나 비교적 외형이 잘 보전된 당간지주가 도지정 문화재라는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당연히 보물일 줄 알았는데 말야.


당간지주를 뒤로 하고 지광국사탑비를 보러 갔다. 원주 출신인 지광국사는 속명이 원해린이었다. 승통, 왕사, 국사 등의 큰 칭호들을 받은 지광국사는 당대 제일의 고승이었다. 1058년(문종12)에 국사에 오른 그는 1070년에 법천사에서 열반에 든다. 법천사는 지광국사가 출가를 했던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탑비가 이곳에 있는 것이다.


전체 높이가 4.5미터에 달하는 지광국사탑비는 정교한 조각 솜씨가 돋보이는 문화재다. 비신을 받히고 있는 용같은 거북이는 당장이라도 발걸음을 뗄 것처럼 힘에 넘친다. 하지만 그래봐야 거북이 걸음이지...ㅋ


맨 상단의 이수 부분은 또 어떤가. 탑의 상륜부처럼 보주를 장식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비신 옆쪽에 용을 새겨놓았다. 비신 옆쪽에 조각을 새겨놓는 비석은 그리 흔한게 아니다.


그 규모나 정교함 때문인지 지광국사탑비는 국보 제59호로 지정되어 있다. 원래 탑비와 함께 지광국사탑(국보 101호)이 있었는데 지금은 부재중이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에 일본인이 가져갔다가 3년 후에 다시 돌려받아 경복궁 뜰에 전시하였다. 그러다 보존처리를 위해 대전시에 있는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로 이전됐다. 언론 보도를 보니 이제 곧 있으면 진짜 원래 제자리인 법천사지로 돌아올 예정이란다.


지광국사탑이 돌아온다면 다시 한 번 법천사지로 가야하나? 안 갈 수가 없잖아!^^


좀 높은 곳으로 올라가 법천사지 일대를 둘러보았다. 황량한 벌판 위에 전각터와 행랑터가 눈에 들어왔다. 상상력을 발휘하여 건물을 지어볼까? 옛 법천사는 분명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옛 영광은 사라지고 이제 쓸쓸한 터만 남아 있다. 그 적막한 터 위로 겨울 바람이 슬쩍 지나간다. 다시 옷깃을 부여잡고 거돈사지로 이동을 한다.







* 지공국사현묘탑비







* 지공국사현묘탑비: 비신 옆면에 용이 새겨져 있다.








* 법천사지







거돈사지(居頓寺址)는 부론면 정산리에 있는데 법천사지와는 약 4km 정도 떨어져 있다. 두 곳은 원주역사문화길이라는 도보여행길로 연결되어 있어 트레킹 행할 수 있다. 포장된 농로길과 비포장길을 걷는 것이라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당간지주가 법천사지의 길잡이였다면 거돈사지에서는 삼층석탑(보물 제750호)이 그 역할을 하고 있었다. 높이 5.4미터에 달하는 거돈사지 삼층석탑은 안에 흙을 채운 토단 위에 세워져 그 높이가 더 두두러진다. 1층 비신은 길쭉한데 갑자기 2층부터는 확 줄어드는게 눈에 띈다. 또 탑 앞에 있는 배례석도 인상적이다. 하지만 탑 자체에는 딱히 화려한 장식이 없다. 대신 후기 신라시대 양식을 잘 계승한 탑이다.


3층 석탑 뒤로는 본당 건물터가 있는데 그 가운데에 큰 돌들이 쌓여진 것이 보인다. 이것은 돌로 만든 불대좌이다. 불대좌면 불상을 놓는 곳이 아닌가? 그런데 왜 건물 중간에 있었을까? 예전에는 본존불이 모셔진 본당 건물은 일반 신도에게 개방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본존불을 본당 중앙에 안치해도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조선시기에는 본당도 일반 신도들이 와서 종교활동을 행하게 됐고 불대좌는 건물 후미로 자리를 잡게 된다. 공간 효율성면에서 당연한 위치변동이었다. 이후 불대좌는 수미단으로 바뀌게 된다.


건물 한 가운데 떡하니 있는 거대한 불대좌만 남아 있다는 건 누군가 그 위에 있는 불상을 가져갔다는 뜻인가? 원래 있어야 하는 것의 부재를 지켜봐야 하는 게 폐사지 여행의 본질이다. 그런 부재감을 계속 확인해서 그런가? 폐사지 여행은 항상 허전함이 그림자처럼 뒤따라 다닌다. 그런 허전함 허허로움도 여행의 일부가 아니겠는가.






* 거돈사지 3층석탑








* 불대좌







석축 위쪽에 있는 원공국사탑을 보러갔다. 원공국사는 법명이 지종이었는데 고려 광종 때 큰 활약을 했던 승려였다. 이후 1018년 현종 때 거돈사에서 입적을 했다. 그 원공국사를 기리는 탑이 세원진 것이다.


-찰칵찰칵


사진을 찍으며, 피식 웃었다. 사실 거돈사지에 있는 원공국사탑은 가짜다. 오리지널은 현재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데 진짜 원공국사탑은 보물 제 190호로 지정되어 있다. 북한산 비봉에 있던 진흥왕 순수비 사례와 유사하다. 오리지널은 보존을 위해 박물관에 있고, 원래 그 자리에는 카피본을 세운 것이다.

어쨌든 카피본이지만... 원공국사승묘탑은 고려시대 대표적인 팔각 부도탑으로 그 외형이 참 멋스럽다.


마지막으로 원공국사탑비를 보았다. 보물 제78호인 원공국사탑비는 법천사지에 있는 지광국사탑비보다는 소박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비석을 받치고 있는 귀부, 즉 거북이 모양의 받침돌은 역시나 특이하게 생겼다. 거북이의 귀가 커다랗고 독특해서 얼핏보면 해마처럼 보인다. 또 얼굴은 어떤가. 손오공처럼 보인다. 언발란스한데 이상하게 합쳐놓으니 서로 잘 어울린다. 우리 선조들의 해학미가 잘 녹아있어서 그런 것일까?


이렇게하여 원주 부론면 법천사지, 거돈사지 탐방이 종료가 됐다. 아울러 강원도 동계여행도 무사히 종료가 됐다. 얼음트레킹(아침가리골)에서부터 바람트레킹(선자령), 폐사지 탐방까지... 여러모로 참으로 유익한 여행이었다. 하지만 여행 내내 동장군과 옥신각신 했다는...ㅋ





*원공국사탑








* 원공국사탑비







* 거돈사지 3층석탑: 배낭이 대신 인증샷을!^^





이전 05화 천년고찰에서 남한강을 굽어보니 세상 시름이 사라지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