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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작가 역사트레킹 Apr 17. 2021

왕릉의 숲길 걷기,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경기도 여주 세종대왕릉과 효종릉 탐방기






* 세종대왕릉









2021년 3월 9일 화요일.


이날은 경기도 여주에 있는 세종대왕릉과 신륵사를 탐방했다. 한 달도 더 넘은 여행기를 이제서야 작성한다. 너무 게을렀어...ㅋ


여주는 세종대왕께서 먹여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곳곳에 세종대왕의 이름을 끌어와 네이밍을 했더라. 세종여주병원, 세종도서관... 하물며 훈민정음 한글교회라는 곳도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피식하며 생각이 들더라.


"이 도시는 아직도 세종대왕께서 통치하고 있는 게 아닐까?"


세종대왕께서 잠들어 계시는 영릉(英陵)은 여주시 능서면 왕대리에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1446년 세종의 부인이었던 소헌왕후가 숨을 거두자 헌릉 서쪽편에 능을 마련한다. 헌릉은 세종의 아버지인 태종 이방원이 묻힌 곳인데 강남구와 서초구에 걸쳐 있는 대모산 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효자였던 세종은 아버지와 가까운 곳에 묻히기를 원했다. 그래서 소헌왕후의 능에 자신의 수릉(壽陵)을 마련한다. 수릉은 살아있을 때 미리 봐두는 임금의 무덤을 말한다.


우리 옛 풍습에는 윤달에 수릉을 미리 봐두거나 수의(壽衣)를 만들면 장수한다는 속설이 있다. 미리 무덤가를 마련하고, 죽을 때 입을 옷을 만들어놓으면 오래산다니... 윤달이 가져다주는 독특함이라고 해야 하나?ㅋ


세종대왕은 실제로 대모산, 즉 헌릉 서쪽편에 묻히게 된다. 최근에 크게 언론에 오르내린 서초구 내곡동이 바로 그곳이다. 소헌왕후와 합장을 했는데 조선 왕릉 중에서는 최초의 합장릉이었다. 영릉은 1450년에 들어선다. 지금은 그곳에 국가기관이 들어서 있어서 일반인들은 접근을 할 수가 없다.


세종대왕은 그렇게 아버지와 어머니가 잠들어 있는 헌릉 옆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평안함은 19년 후인 1469년(예종 1년) 깨어지고 만다. 세종이 승하하고 난 후 연이어 안 좋은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문종이 재위 2년 4개월 만에 숨을 거두고, 뒤를 이은 단종도 세조에 의해 사약을 받게 된다.


단종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왕위를 찬탈한 세조도 불행을 피하지는 못했다. 장남이었던 의경세자가 20살의 나이에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도 잦은 병치레를 겪어야 했다. 계유정난을 일으키고 기세등등하게 왕좌에 오른 세조였지만 재위 기간은 13년에 불과했다.


그렇게 흉사가 거듭되자 영릉은 예종 원년에 멀리 여주땅으로 천릉(遷陵)을 하게 된 것이다. ‘옮길천(遷)’자에서도 보듯 천릉은 이장(移葬)을 뜻한다. 천장(遷葬)이라고도 부른다. 세종대왕의 능을 옮겼지만 흉사는 멈추지를 않았다. 예종이 재위 13개월 만에 숨을 거두웠기 때문이다. 예종은 세조의 장남이었던 의경세자의 아들이었다.


능을 옮긴다고 불길한 일들이 없어지겠는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결국 사람의 문제다. 아무리 천하제일 명당에다 이장을 하고, 용한 무당에게 굿을 시키더라도 사람이 못 됐으면 흉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나쁜놈이 나쁘게 되는게 세상 이치 아닌가! 인생사 자업자득, 인과응보!








* 세종대왕상








여기서 다른 왕릉들의 위치를 살펴보자. 거의 수도권을 벗어나 있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단종이 묻힌 강원도 영월에 있는 장릉은 예외다. 경종이 묻혀 있는 의릉 같은 경우에는 성북구에 자리잡고 있는데 한양도성에서 직선거리로 4km도 되지 않는다. 태조 이성계의 두번째 부인이었던 신덕왕후가 잠들어 있는 정릉은 그보다도 더하다. 3km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울을 중심으로 왕릉이 자리잡고 있는 이유는 왕들의 능행차 때문이었다. 능행차는 하룻길이 원칙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도세자를 만나러 갔던 정조대왕의 화산 능행차가 1박 2일이었듯, 꼭 원칙대로만 되지는 않았다.


지금은 경강선으로 편하게 전철을 타고 갈 수 있다해도 여주는 멀긴 멀다. 걸어서 하루에 다녀올 수 없는 길이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었다. 뱃길이 있지 않은가! 여주에는 남한강이 흐르고 그 물결을 타고 가면 하루 안에 한양에 닿을 수 있다. 육로든 수로든 하루거리면 되지 않은가. 어쨌든 뱃길로 하루거리라 왕릉을 쓰기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거 꼼수 아닌가? 어째 구렁이가 스리슬쩍 담 넘어 가는 거 같다.^^


세종대왕의 능답게 영릉(英陵)은 다른 왕릉들보다 더 큰 규모를 자랑한다. 500미터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또다른 영릉(寧陵)과 비교를 해보면 바로 알게 된다. 영릉(寧陵)은 제17대왕 효종과 부인 인선왕후의 능이다. 이 영릉도 천릉을 했는데 원래는 구리시 동구릉에 있었다. 세종대왕릉이나 효종의 능이나 둘 다 자리 이동을 한 셈이다.


영릉(寧陵)은 봉분이 두 개인 쌍릉 형식인데 좌우가 아닌 위아래로 봉분이 늘어서 있다. 무척 독특한 형식인데 경종의 능인 희릉도 위아래식으로 되어 있다. 이와 달리 세종대왕의 영릉(英陵)은 합장릉이다. 그래서 외형적으로는 단릉과 유사하다.


세종대왕릉은 규모가 크기에 시간을 두고 천천히 둘러보는 것이 좋다. 능 입구에는 세종대왕 시기에 발명된 각종 발명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니 그것들을 관찰해보는 것도 좋을 거 같다. 또 효종의 능까지 숲길로 연결되어 있으니 꼭 같이 탐방해보자. 왕릉의 숲길을 한들한들 걸어보는 것이다.


세종대왕도 만나고, 왕릉 숲길도 걷고...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 세종대왕릉: 능 바로 옆까지 올라갈 수 있어 석물들을 관찰하기에 좋다.









* 세종대왕릉








* 효종릉: 사람들이 많이 찾는 세종대왕릉에 비해 한적하다.









* 재실: 영릉(효종의 능)에 있는 재실이다. 영릉 재실은 비교적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어 지난 2007년에 보물 1532호로 지정되었다.








영릉(寧陵): 효종의 능인 영릉은 좌우가 아닌 상하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사진 왼쪽의 봉분이 효종의 능이고, 오른쪽이 왕비인 인선왕후의 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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