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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남은 우리는 누구인가

by 박영윤

“조선 반도는 입만 터는 문과 놈들이 해먹는 나라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조선엔 가망이 없다.”

— 이국종 교수의 강연 중 발언 중에서


단순히 분노하지도, 단순히 공감하지도 않은.

미묘하게 아프고, 씁쓸하고, 아쉬운 동의!


우리가 살아가는 한국 사회,

변하지 않는 구조 안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타오르다 꺼지고, 버티다 무너진다.

그가 말한 것처럼

“진짜 열심히 산 사람”이

“망했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세상.

그게 어쩌면 우리가 알고도 모른 척했던 현실이다.


"문과 놈들"

"조선의 DNA"

"절이 싫으면 떠나라."


분노는 정당하지만

표현은 거칠다.


모두가 떠날 수 있는 건 아니다.

떠날 수 있지만 떠나지 않기로 마음먹은 이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까지도 “가망 없는 조선에 남은 어리석은 중”으로 치부되어선 안 된다.


이국종 교수의 말은 ‘진실’일 수 있지만,

진실만으로는 사람을 설득할 수 없다.

때로는 말의 온도도 필요하다.


나는 그가 강연 중 언급했다는

윤한덕 교수의 이름에서 잠시 멈췄다.


“한평생 외상외과에서 X빠지게 일했다.

근데 바뀐 건 하나도 없더라. 내 인생 망했다.

나랑 같이 일하던 윤한덕 교수는 과로로 죽었다.

너희는 제발 저렇게 되지 마라.”


죽도록 일하고도, 죽음만 남긴 구조.

그 구조를 버티다 결국 스러진 사람의 이름 앞에서 무언가를 대답해야 할 것만 같다.

윤한덕이라는 이름은 단지 한 사람의 비극이 아니라

"지금 우리는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이국종 교수는 서울대병원, 세브란스 같은 대형 병원을 언급하며

“전공의의 노동을 착취해서 유리벽을 바른다”고 말했다.

그 문장은 잊히지 않는다.

어쩌면 의료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늘 누군가의 노동과 희생 위에

겉으로는 그럴듯한 ‘통유리’를 붙이고 있는 건 아닐까.


교육도, 문화도, 예술도, 정치도.

누군가는 “가망 없다”고 떠나고,

누군가는 그 안에서 여전히 발버둥치고 있다.


조선에 남은 우리는 누구인가


나는 떠나지 못했다.

떠나고 싶지도 않다.

내가 살아온 삶, 함께 버텨온 사람들,

끝내 바뀌지 않더라도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믿음이 있다.


가망 없는 곳에 남아 희망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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