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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두산 Aug 15. 2023

내가 기내식을 먹지 않는 이유

속이 편안한 여행을 위해

    2004년 12월, 19살, 첫 배낭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인도. 당시 요가 공부를 하고 있었기에 요가의 발상지인 인도는 평생에 한 번은 꼭 가봐야 하는 곳이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 고등학교 수학여행으로 제주도행 비행기(30분 남짓) 탑승 경험이 전부인 나에게, 다른 곳도 아닌 인도행 비행기를 타는 일은 한편으로 신나는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약간의 걱정과 긴장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해가 뜨기 한참 전부터 일어나 공항으로 갈 준비를 하던 나는 밥 한 술 뜨고 가라는 어머니 말씀에 이른 아침을 먹고서야 집을 나설 수 있었다.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밟는 것이 혹은 다른 나라에 처음 배낭여행을 가는 것이, 아니면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한 달 넘게 다녀야 하는 것이 부담이 되었던 걸까.. 비행기가 인도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엎드려 아픈 배를 부여잡아야 했다. 아침을 먹은 것이 체한 것 같았다. 그렇게 나의 첫  인도 여정의 시작은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어릴 때부터 좋지 않은 식습관 때문인지, 약한 소화력 때문인지, 특히 버스, 기차, 자가용을 타고 이동할 때 멀미를 자주 했고,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속이 불편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어느 때부터인지 무언가를 타면 자연스럽게 잠이 들었다. 타면 자고 도착할 때쯤 신기하게 눈이 떠졌다. 간혹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었지만 말이다. 이동 중에는 뭔가를 잘 먹지 않는다. 가끔 먹기도 하지만 역시나 속이 편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꽤 오랫동안 인도와 한국을 오가는 비행기 기내식은 열심히 먹었었다. 여행 시간이 꽤 긴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버스나 기차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티켓 값을 냈으니 약간은 누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거나 인도로 가고 나면 항상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속이 좋지 않고 불편하고, 열이 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때는 그냥 여행 중 잠을 설치고 힘이 들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아유르베다를 공부하면서 그게 왜 그런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요즘 나는 기내식을 먹지 않는다.


    내가 기내식을 먹지 않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이동 중에 무언가를 먹는 것은 기본적으로 좋지 않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굳이 아유르베다에서 명시하는 음식에 대한 원칙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다른 교통수단보다 비행기는 크게 흔들리는 경우가 많지는 않더라도 빠른 속도로 이동한다. 그러한 환경에서 음식을 먹는 것이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니다. 두 번째 이유는 음식의 질에 있다. 아유르베다에서 음식은 재가열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간단히 얘기하면 바로 요리한 음식을 먹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다. 음식은 최초로 조리된 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성질이 무거워지고 소화가 어려워진다. 조리하고 하룻밤이 지나면 (냉장보관을 했다면 더더욱) 그 음식의 성질은 조리한 당일에 비해 확연히 무거워지게 되고 소화에 부담이 된다. 그러한 이유로 모든 가공식품, 반조리 식품 등을 자주 먹는 것이 소화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그 연장선에서 기내식 또한 이미 조리된 음식을 재가열해서 제공되는 음식이다. 소화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세 번째 이유는 나의 소화력에 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내 소화력의 상태에 달려있다. 소화력이 좋다면 소화하기 힘든 음식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소화력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어려서부터 갖고 있던 좋지 않은 식습관이 큰 몫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음식을 먹고 소화가 잘 되는지 혹은 잘 되지 않는지 민감하게 알아차리는 편이다. 물론 아유르베다를 배우기 전에는 음식에 대한 기본 원칙이나 소화력에 대해 몰랐고 몸 상태를 관찰하지 않았기에 그에 대해 거의 인지하지 못했다. 네 번째 이유는 경험으로 이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몸소 느껴왔기 때문이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을 한다는 것 자체는 많은 움직임을 유발한다. 그 과정에서 내 몸과 마음은 일종의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동 중 음식을 먹는 것이 꽤나 부담이 된다고 느꼈다. 기준은 내 몸이 그리고 마음이 어떻게 느끼고 반응하고 있는가에 있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기내식을 거부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고, 평소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있다면 참고해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기내식을 먹지 않는다. 같은 이유로 이동 중에는 되도록 최소한의 음식만을 섭취한다. 비행기를 타는 일이 그리 자주 있는 일은 아니므로 가끔 하루 단식을 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더불어 속은 더 편안하다. 언제부턴가 디톡스 열풍이 불고 있다. 어디에나 '디톡스'란 말이 따라온다. 뭔가를 더 먹어서 하는 디톡스보다 적절하게 먹지 않아서 하는 디톡스를 해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수 있겠다. 해보면 알겠지만, 이동 중 음식을 제한하는 것 만으로 몸 상태를 적절하게 유지하고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무리 없이 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된다. 


    누군가 좋다, 나쁘다를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것을 무조건 따르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먼저 좋거나 나쁜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납득할 만하다면 일정기간 실천으로 옮겨본 후 이것이 나에게는 어떤지 경험해 보고 판단하는 것이 좋다. 누군가에게 좋았다고 해서 나에게도 언제나 좋을 수도, 좋지 않다고 해서 나에게도 언제나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 몸과 마음의 상태와 특성을 기준으로 이롭고 해로운 것을 구별해서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니 기내식을 먹지 않는 이유가 스스로 이해할 만하다고 생각한다면 꼭 비행기를 타는 것이 아니라도 이동 중 음식을 제한하는 것을 몸소 실천해 보고 전후를 비교해서 판단해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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