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치하늬커 Feb 27. 2020

제주 캠핑카 여행 계획 세우기

오늘 처음 만났습니다.

오늘로 두 번째 만난 사람의 공간. 이곳에서 나는 오늘 잠을 잔다.



그러니까 (나보다 에너지 지수가 높은) J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멤버로 가입되어 있는 빌라선샤인(일과 삶을 스스로 기획하는 여성들의 커뮤니티) 온라인 공간에 나의 사이드 프로젝트인 WBC를 소개하는 글을 올렸고, 그 글을 본 J가 WBC 인스타로 DM을 보내왔다.




WBC는 Women's Basecamp의 약자로, 자신의 방식으로 삶을 돌보는, 자연을 사랑하는 밀레니얼 여성들의 아웃도어 커뮤니티다. LA에 거주하면서 시작한 프로젝트라 한국에도 마음이 맞는 여자들이 있으면 같이 작당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던 차였고,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니 당장 만나기로 했다. J는 망원동에 자기 작업실이 있다며 그곳으로 초대를 했고, 나는 당연히 '작업실'이라길래 프리랜서 디자이너나 작가를 떠올리며 망리단길을 걸었다.


꼭대기 층에 자리한 A 프레임 하우스 문을 여니 뭔가 히피스러우면서도 아늑한 비밀의 공간이 나왔다. 어디서 막 주어온 가구들 같은데 묘하게 어울렸다. 디자이너가 틀림없다고 생각한 나의 예상과는 달리, 공간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이었다! 공간 기반 모임들을 만들어 보고 싶어서 이 집이 나오자마자 바로 겟 한 뒤 취향껏 꾸며봤다고. 합정에 에어비앤비도 같이 돌리면서 고정 수입을 만들 수 있는 삶을 실험하고 있단다. 최근에는 취미가 일이 되어 공공 도시재생사업 기획 일을 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게 6개월 동안 일어난 일이다.


1월 21일에 J와 처음 만난 작업실.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제로퍼제로 캠프파이어 실크스크린 판화도 붙여 있었다.


흥미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웃도어 라이프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바로 다음 주에 친구들과 지리산 등반 일정이 있었고, 내년 여름에는 사하라 사막 250km 마라톤에 참가한다는 계획을 들려줬다. 둘 다 시간을 쪼개서 만났기에 속사포 랩으로 자기소개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이렇게 말이 잘 통하면 같이 뭐라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WBC 한국 모임 파일럿 차원으로 지인들을 불러 모아 제주 캠핑카 여행을 갈 거라는 얘기를 슬쩍 꺼내니, 곧바로 일어나 옆 책장에서 "여행하는 집, 밴라이프" 책을 꺼내 들고 온 J. 그렇게 4명이 가려고 한 캠핑카 여행이 5명이 됐다. 만난 지 1시간 만에.


헤어지자마자 '2020 제주 캠핑 크루' 단톡 방에 J를 만난 이야기를 남겼다. 모두의 동의를 5분 만에 받고, 그녀를 초대했다. 그렇게 우리는 (하필) 발렌타인데이에 떠나는 제주 캠핑카 여행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여행 전에 한 번은 다 같이 만나야 되지 않겠냐고 오프라인 미팅 날짜를 잡았고, 장소는 당연히 J의 작업실이 됐다.


나를 기준으로 멤버들을 소개하자면,

M - 전 직장 동료. 원래 K와 아는 사이. 캠핑 경험 무. 여행은 좋아함.

K - 전 직장 동료. 원래 M과 아는 사이. 제주 살이 2년 차. 2년 주기로 세상을 떠돌며 사는 중.

Y - 동종 업계 종사자. M과 페북 친구. 제주에서 유년시절을 보냄. 작년에 남편과 1년 세계일주 경력 보유.

J - 온라인으로 만난 사이. 오늘로 두 번째 봄. 모두와는 처음 만나는 사이.


제주에 있는 K를 제외한 네 명이 모였고, 알고 보니 M과 Y도 오프라인에서는 처음 만난 사이였다! 언제 어떻게 만난 게 그렇게 중요할 일도 아니다. 공통의 관심사로 만나니 대화는 자연스럽게 흘러갔고, 그렇게 우리의 여행 계획은 노트에 옮겨졌다.



컨셉은 "자연".


캠핑카도 빌렸으니, 그 장점을 살려 발 가는 데로 멈춰서 자기로 했고, 해 지는 노을을 보기 위해 서쪽 해변을 중심으로 다니자는 대략적인 동선만 정했다. "자유시간"을 군데군데 박아 놓고, 각자 자연 속에서 할 수 있는 작은 활동을 리딩 하기로 했다. 드로잉, 요가, 명상, 조깅, 하이킹.


발렌타인데이가 이렇게 기다려졌던 때가 있었나. WBC 인스타 계정을 일단 파고 사람을 모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일은 벌이면 또 굴러가는 거니까,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장치 같은 게 되는 거다. 작당할 사람을 찾았고, 또 비슷한 결을 지닌 내 친구들과 연결해 놓으니 일사천리로 제주도 캠핑카 여행이 성사됐다. 게다가 오늘은 이 아늑한 공간을 혼자 누리는 호사를. 아까워서 어케 그냥 자!? 난로 옆에 앉아 맥북을 열어본다.


이렇게 따뜻하고 편안한 공간에 앉아 WBC 매거진에 글을 쓴다. 오늘 일은 왠지 써야 할 거 같아서.

써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면 뭐라도 남겨 놔야 한다.



오늘로 두 번째 만난 사람의 공간. 이곳에서 나는 오늘 잠을 잔다.






제주 캠핑카 여행을 다녀와서 우리 다섯 명의 닉네임이 정해졌다.

각자의 시각에서 느낀 여행의 감상을 매주 한 편씩 소개한다.


마미손

“OK 계획대로 되고 있어” 마미손은 계획이 중요하다. 캠핑카 트립을 함께할 멤버들과 처음 만나 화기애애한 밥상 위에서도 마미손은 노트북을 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회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이토록 자유로운 영혼들과 함께한 첫 여행은 어색하고, 유쾌하고, 깊었다. 앞으로의 여행은 이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다.


행동대장

마음이 시키는 일은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행동에 옮기고 있는 행동대장은 원하는 모습을 보기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행동해야 알게 되는 것들에 확신을 갖는 편. 어쩌다 캡틴이 된 행동대장은 멤버 모으기도, 캠핑카 운전도, 회계도, 정박지 탐색도 자처하며 ‘자연스러운’ 캠핑을 꼭 만들어내야겠다는 두려움이 엄습하는데. 그 과정을 통해 감격과 환희의 감정을 느끼며 무엇을 좋아하는지 더 분명히 깨닫게 된다.


허당

해본 건 많지만 제대로 아는 건 별로 없는 찐허당이다. 잘 모르고 일단 시작하기 때문에 대체로 용감한 편이라는 점이 장점이라면 장점. 포부는 거창해서 매일이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명상요가를 하자며 그럴싸한 싱잉 볼을 가져왔지만 제대로 연주할 줄 모른다는 것은 비밀(실은 들킴). 캠핑러버라지만 운전도 할 줄 모르고 캠핑카도 처음 타보는 허당은 수시로 터지는 문제에 대책을 찾으며 고군분투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희망의 리액션 담당으로 거듭나기로 결심한다. "모든 것은 잘되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고슴도치

갈수록 진실하게 친구 사귀기가 너무 어렵다고 느낀다. 깐깐한 기준을 거둬들이고 남에게도 나에게도 관대하고 싶다. 10대에 배워야 했던 우정의 법칙들을 30대 중반에 배워가는 중. 인정 욕구와 마이웨이 사이를 정신없이 오가는데 겉으로는 쿨한 척하려다가 가끔 병이 난다.


도라에몽

도라에몽은 스스로를 맥시멀 리스트라 부른다. 그리고 실제로 가끔 집의 하중을 걱정하곤 한다. 거주지를 자주 옮기며 짐을 싸고 풀고를 반복하던 어느 날, 가진 것이 너무 많다며 돌연 미니멀 라이프를 선언한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그럴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래도 우리의 희망적인 도라에몽은 필요에 집착하지 않고, 현재 있는 것들로 만족하는 노멀리스트가 되기를 꿈꾼다. 오늘도 그녀는 3개의 베개 중 하나를 택해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며 잠이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이 없는 캠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