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 초보가 써 본 프로캠핑러 관찰기
캠핑초보, 마미손
“OK 계획대로 되고 있어” 마미손은 계획이 중요하다. 캠핑카 트립을 함께할 멤버들과 처음 만나 화기애애한 밥상 위에서도 마미손은 노트북을 열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회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이토록 자유로운 영혼들과 함께한 첫 여행은 어색하고, 유쾌하고, 깊었다. 앞으로의 여행은 이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다.
캠핑카라는 단어에 혹-했다. '캠핑 클럽'에서 핑클 언니들이 쏘아 올린 캠핑카 트립에 대한 로망 때문이다. 캠핑카를 타고 같이 이동하는 동안 수다 떨고, 밥을 짓고, 자연 속에서 요가를 하고, 밤에는 모닥불 앞에서 마음을 여는 모습이 낭만적이었다. 캠핑 전문가들이 나왔더라면 장비도 자랑하고 정글의 법칙 김병만처럼 문제를 뚝딱 뚝딱 해결했을텐데, 캠핑 초보들이 자기 모습대로 캠핑을 즐기는 모습들을 조명해주니 꽤 인간적이었고 말이다. 그렇게 나 같은 캠핑 초심자에게도 '어쩌면 나도 할 수 있어'라는 마음을 주었다.
들뜬 마음으로 생애 첫 캠핑카 트립은 네 명의 친구들과 함께 하게 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친구들은 프로캠핑러들이었다. 바이칼 호수에서 노지 캠핑도 했던 •허당•은 밴 라이프를 꿈꾸는 사람이다. 1년 간 남편과 함께 세계 여행을 다녀온 •고슴도치•는 그 중 2개월을 SUV 위에 설치한 루프탑텐트에서 자며 캠핑 여행을 했다. 20대에 미국에서 캠핑 헬퍼로 일한 경험이 있고 지금도 캠핑을 즐기는 •행동대장•은 Women's Basecamp라는 이름으로 밀레니얼 여성의 아웃도어 라이프를 널리 퍼뜨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차 한 대로 미국을 종단하며 비영리 펀드레이징 활동을 한 여행하는 다이버 •도라에몽•까지. •행동대장•을 주축으로 모인 우리는 이 모임을 '제주 캠핑 크루'라고 불렀다.
제주 캠핑 크루들은 보통 사람들이 다 가는 곳은 가지 않고,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베테랑 여행자였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의 정신으로, 아니 그 잇몸으로 무언가를 하는 걸 좋아하는 변태적? 성향도 있다 (후후) 와일드한 여행 경험에 있어서라면, 이야기보따리가 줄줄이 나오는 기깔나는 멋진 사람들이었다.
반면에 나는 여행을 꽤 편하게 해온 사람이다. 그리고 MBTI 성향 검사에서 끝이 TJ인 사람들은 군인 같다고도 표현하는데, 그게 나다. 여행 가기 전에 방문할 곳을 구글 맵에 빼곡히 표시해놓고, 이미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도 꼼꼼히 읽는 편이다. 그래서 이들과의 여행이라면, 평소의 나라면 하지 않았을 많은 것들을 새로 해보는 재미있는 시간이 될 거란 기대가 있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프로캠핑러들의 공통적인 패턴들을 하나씩 발견할 때마다, 이들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아웃도어 라이프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의 궤적에서도 과감하고 결단력 있는 행동, 신념이 일치하는 부분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사랑과 존경의 눈으로 바라본 프로캠핑러 4인의 관찰의 기록을 정리해본다.
일단 캠핑카를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여행 일정의 자유도를 극대화하겠다는 뜻이다. 원하는 곳에서 먹고, 쉬고, 자겠다는 목적이 담긴. 처음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우리가 정한 여행의 컨셉은 '좋은 곳이 있으면 거기서 멈춘다'였다. 실제로는 '좋은 곳을 찾기까지 멈추지 않는다'였다는 걸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첫째 날, 우리는 바다에서 밤을 보냈다. 그래서 둘째 날 숙박할 곳을 숲으로 결정했다. 주변이 나무로 둘러싸인 콘크리트 주차장이 아닌, 진짜 숲 속에서 야영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우리가 꼭 원하던 그런 야영지는 없었다. 휴양림에 전화를 돌려도 캠핑카는 출입 금지라는 답변뿐이었고. 차 안에서 지도 검색과 전화를 돌려가며 묵을 곳을 계속 찾아보았다. 1시간 남짓 캠핑카를 끌고 다니던 중, 정말 우연히도 우리가 딱 바라던 완벽한 숲 속 야영장을 발견했다. •행동대장•은 이렇게 소리쳤다.
“이거지! 이래서 무계획 여행에 중독되는 거야!”
이 완벽한 야영장은 아직 오픈 전이라 문이 닫혀있었는데, 배려심 깊은 촌장님은 우리 크루들이 하룻밤을 보낼 수 있게 허락해주셨다. 우리는 정확히 이 곳에 오기로 계획하지 않았다. 계획하지 않았기 때문에 길 위에서 보낸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캠핑 크루들은 원하는 그림이 아주 구체적으로 있었다. 본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기 때문에, 거기에 다다를 때까지 계속 시도해보는 것이다. 그러니 원하는 그곳을 찾았을 때 얼마나 기쁜가! 운명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운명이라는 것을 알아채려면,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도 구체적인 목표와 원하는 상(이미지)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
캠핑은 온라인 검색이나 간접적인 타인의 경험담만으로는 정확한 결과값을 얻기 어렵다. 실제 눈으로 보고 살펴봐야 내가 원하는 곳인지를 알 수 있다. 계획을 한다고 해도, 자연의 법칙에 따라 계획이 망가지기도 한다. 우리도 둘째 날 저녁에 완벽한 숲 속 야영장에서 불멍하며 마시멜로까지 구워보려고 했지만, 비가 와서 어쩔 수 없이 캠핑카 안으로 들어왔다. 캠핑카에서 언젠가 하려고 했던 '아이엠 카드'로 수다 떨며 배 찢어지게 웃었다. 계획이 틀어져도 괜찮다. 우리가 바라던 그 모습에 이미 서있으니까.
생각해보면 우리는 계획성에 대해 많은 것들을 요구받으며 살아왔다. 손자병법에도 '새벽녘의 계획이 하루 일을 결정한다'는 말처럼 전략적인 태도를 일 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유지해왔다. 철저하게 계획하고 그것을 성실하게 이행해가는 시간 속에서 내 몸이 계획에 이렇게 익숙해져왔다. 서퍼가 잘 맞는 파도를 타기까지 여러 번 바다로 나아가는 것처럼, 여행에서 만난 운명적인 만남, 그 여지를 남겨두는 재미를 발견했다.
자연에서 캠핑을 한다는 건, 단순히 자연 안에 있는 것만이 아니다. 자연을 이루는 작은 단위의 것들, 예를 들면 동물, 식물, 토양, 바람 등을 인식하게 되는 시간이다. 캠핑 크루들은 고동, 소라게, 갈매기, 야자수, 흙, 바위 뭐 하나 그냥 훑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소라게가 다른 게와 어떻게 다른지 특징도 읊을 수 있고 제주도 해변의 현무암의 기능도 설명해주는 자연인들이었다.
첫째 날 밤을 제주 금능해변에서 보내며 우리는 운이 정말 좋았다고 생각했다. 밤에 썰물이 쭉 빠지면서 멀리까지 걸어가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다 안쪽으로 걸어갈수록 바닷속 생물들이 잘 보였다.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앞으로 걸어가다 쪼끄만 새우나 게를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혹시나 해를 끼칠까 살금살금 걸으며 이 아이들은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궁금해했다.
바다 탐험 중 하이라이트는 민둥민둥하게 생긴 괴생물체를 만났을 때였다. 평소의 나라면 “으악, 이게 뭐야! 징그러”하고 넘어갔을 텐데. 이들은 "이 친구는 종류가 뭘까?" 하면서 계속 살펴본 것이다. 이들은 만져보기도 하고, 뒤집어 보기도 하고, 눈에 보이는 색깔을 말로 표현해보기도 했다. 색깔이 정확히 갈색인가 검은색인가를 두고도 진지하게 논의도 했다.
이 캠핑 크루들은 자연을 인식하는 이미지의 해상도가 높다. 자연을 바라보는 시력이 좋으니, 작은 것들 하나하나 눈에 잘 들어오는 것이 아닐까? 아웃도어 캠핑 이미지라고 하면 산과 바다 같은 광활한 광경이 떠올랐는데, 실제론 아주 작은 생물체들을 관심 있게 들여다면서 캠핑의 맛도 깊어졌다.
캠핑카 트립을 다녀온 다음 주말 나른한 오후, 집 근처 하천을 걸었다. 종종 오리 가족들을 보곤 했는데, 오리를 자세히 관찰해보니 이들은 풍덩 잠수하고 나서도 깃털에 물이 잘 묻지 않았다. 이런 사소한 발견이 즐거워 남편과 20-30분을 오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시 시력이 회복되는 기분이었다.
여성 과학자인 자런 호프가 쓴 에세이 <랩걸>에서 그가 팽나무에서 오팔을 추출해내는 데 성공해, 인류 최초의 과학적 발견을 한 후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다른 사람이 나의 발견을 아는지 또는 얼마만큼 대단하게 생각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영겁의 세월을 품은 대자연을 탐구하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숭고한 일이다. 무구한 자연의 역사에서 티끌 같은 나를 아는 겸손함과, 그 무구함에 압도되지 않고 나의 소소한 발견도 즐겁게 만드는 호기심의 균형이 이번 캠핑을 통해 더 가까이 느껴졌다.
캠핑카 렌트업체 사장님은 "그냥 몸만 오세요. 다 있어요."라고 말씀하셨지만 처음으로 캠핑카 트립을 하는 우리는 그 말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캠핑카를 받고 보니 정말 다- 있는 것 같았다. 화장실, 싱크대, 식기류, 이불, 충전기, 히터, 캠핑 체어, 그릴... 다 있긴 있었는데... 땀냄새가 가득한 낡은 가죽을 보며 살짝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캠핑카를 출발하자마자 물탱크 누수로 바닥이 물로 흥건해지고 싱크대 배수관도 고장 나 있었다. 당시 내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을 거다. 억지로 웃긴 웃었지만 혹시나 가스나 폭발하면 어쩌나 싶어서 내적 번민이 일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는 정신으로 어찌어찌 잘 해결했지만, 이 캠핑카의 가장 큰 문제는 아침이 되면 방전이 돼서 움직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자기 전에 시동 키고, 아침 일찍 시동 키고 했지만 방전...되었다.
우리의 크루들, 당황하지 않았다. (화는 났다) 바로 •도라에몽•은 “점핑 잭을 빌려보자!"라고 말했다. 다행히 바다 근처에 캠핑을 즐기러 나온 여행자들이 많이 있었다. 특히 큰 차를 보유한 곳들 위주로 점핑 잭이 있는지 물어보다가 거의 모든 분의 텐트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나는 쑥스러움이 올라와서, 같이 돌아다니던 K에게 괜찮은지 물었다.
“나는 길거리에서 펀드레이징을 해 본 이후로, 이런 요청을 하는데 쑥스러움이 없어”
신기한 건, 우리가 텐트 문을 두드릴 때 우리의 요청을 불편하게 받아들인 분은 없었다. 차가 방전된 것에 대해 또 도움을 더 줄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안타까운 눈길을 보내셨다. 캠핑을 하다 보면 예기치 못한 문제를 마주할 수 있다는 걸 다들 아는 것인지! 도움을 받았던 경험이 있어서일까?
둘째 날, 완벽한 숲 야영장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해준 강영식 촌장님도 그렇다. 장소만 허락해주신 것이 아니라 귀한 표고버섯도 따서 먹는 생태 체험도 하게 해 주셨다. 게다가 촌장님은 자기가 베푼 것을 본인에게 돌려받기 원하지 않은 멋진 어른이셨다. 만일 우리가 그분께 '이 곳을 써도 괜찮을지?' 물어보지 않았더라면, 우리 여행에 등장하지 않았을 소중한 만남이다.
도움이 필요할 땐 요청하는 용기도 용기지만, "내가 베푼 도움을 나에게 갚으라고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주세요" 같은 넉넉함을 갖고 싶단 생각을 했다. 서스펜디드 커피(Suspended Coffee) - 자신의 커피값을 결제하며 다음 사람 커피값을 미리 내는 기부처럼 말이다. 자기에게 돌아올 것을 기대한 것이 아니다. 모두가 돕고 돕는 관계라는 것을 보여주는 그 신호가 얼마나 세상을 다르게 보게 하는지!
2박 3일 동안 한 번도 씻지 않은 몸에서는 숯향이 났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순간, 이제야 캠핑을 마친 기분이었다. 첫 캠핑의 기억은 강렬했고, 이 기억은 '캠핑은 이러해야 한다'는 기준점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이 다음 캠핑은 나에게 새로운 감각과 호기심을 열어주는 또 다른 기회였으면 한다. 캠핑카 트립으로 열린 아웃도어로 향하는 문은 앞으로도 계속 열려있을 예정이다.
그리고 Women's Basecamp에서 이 멋진 크루들을 또 만날 것이다.
자신의 방식으로 삶을 돌보는 밀레니얼 여성들의 베이스캠프, Women’s Basecamp(WBC)는 자연을 사랑하고 아웃도어를 즐기는 여성들의 커뮤니티 입니다. 자연 속에서 생활해 보는 ‘캠핑’을 매개로 쉼을 되찾는 라이프 리트릿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womensbasecamp에서 팔로우하세요!
제주 캠핑카 여행 시리즈 글은 WBC Seoul 팀이 2/14-16에 파일럿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다녀온 내용을 바탕으로 각 크루들의 언어로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