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마지막 영웅 후백제 견훤왕

견훤왕 논산에 잠들다

진수 : 교수님은 어떤 책이 가장 기억에 남으시나요?

교수 : 딱 한권을 꼽기는 그렇고 지금 생각나는 것을 말하면 총, 균, 쇠, 월든, 그리스인 조르바, 위대한 개츠비, 맹자, 심판, 양철북, 악마의 시, 상대성 원리, 코스모스, 나의 투쟁등 셀 수가 없을 정도구만.

진수 : 들어본 것도 있고 처음 들어보는 것도 있네요. 전 삼국지입니다. 삼국지를 읽으면 인생사가 모두 담겨 있는 것 같거든요. 그리고 한국에는 그 정도로 다이나믹한 이야기도 없구요.

교수 : 왜 없다고 생각해? 통일 신라말에 고려, 후백제, 신라가 대립하던 그때의 상황을 잘 그려보면 다이나믹한 세 나라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도 있거든. 실제로 그런 역사소설이 나온 적도 있었어. 그럼 내가 하나 물어볼게 후백제를 세웠던 견훤은 삼국지의 누구와 비슷한 것 같아?

진수 : 견훤이요? 문득 생각나는 사람은 없는데요. 조조처럼 주도면밀한 것 같지도 않고 유비처럼 사람을 품는 스타일도 아닌데요. 아! 후계자 선정으로 인해 망국을 초래했던 오나라의 손권과 상황은 비슷하네요.


MG0A9130_resize.JPG 견훤왕릉 (충남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 산17)

교수 : 진수 말이 맞아. 손권과 견훤의 비슷한 면으로 보자면 권력 놓기를 주저했고 그 때문에 오나라는 망국의 길을 걷게 되지. 나라를 세웠으며 영웅의 면모를 갖춘 두 사람은 의심과 시기심때문에 신하들도 많이 죽였어. 큰 기업의 대표가 아들에게 기업을 맡겼어도 믿지 못해 문제가 발생된 사례도 많아. 헨리 포드가 외아들이었던 에드셀 포드에게 회사를 맡기고도 모든 사안에 사사건건 간섭하고 결정한 일조차 뒤집기 일쑤였지. 그래서 암으로 병사하게 되는데 이런 비극은 조선시대 영조와 사도세자에서도 발생한 것은 알거야.

진수 : 왜 아버지는 아들을 잘 믿지 않는 걸까요.

교수 : 역사속에서 아들을 죽음으로 몰았던지 불화가 있었던 아버지의 유형을 보면 스스로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이 많아. 후백제를 건국했던 견훤이나 오나라의 손권, 포드의 창업자 헨리 포드, 무수리의 아들로 왕위에 올라선 영조까지 모두 불굴의 의지로 상황을 개선하고 앞서 나간 사람들이지.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아들에게 많은 것을 바란다는 점이야. 그러다보니 쉽게 실망하고 조급하게 판단해버리는 우를 범하게 되고 보통은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

진수 : 견훤은 아들 문제도 그렇지만 너무 방심했던 것 같아요.

교수 : 맞아 후삼국 초반의 상황은 견훤이 최강자였지. 마치 초나라 항우 같았던 기세였지만 결국 왕건에게 패배하고 지금은 잊혀진 영웅이 되버린거야.


MG0A9129_resize.JPG 견훤의 마지막 유언대로 완산주가 보이는 곳에 묻혔다

교수 : 본래 이씨였던 견훤은 상주의 호족 아자개의 장잠으로 태어나 통일 신라의 장군이 되었으나 무진주를 점령하면서 후백제를 세우고 세상을 구원할 미륵이라고 자칭했어. 후백제를 세운 견훤은 서기 900 ~ 935년까지 후백제 왕으로 재위하면서 후삼국의 강자로 자리하지.

진수 : 팔공산전투에서 승리하며서 자신이 승자라고 생각했었을텐데요.

교수 : 사실 927년에 고려가 대패한 전투는 팔공산 전투가 아니라 공산 전투야. 공산이라는 지역 에서 왕건의 여덟장수가 죽었다고 해서 후일 팔이라는 숫자를 앞에 붙여서 팔공산이라고 부른거지. 아이러니 한 것은 백제를 세울 때 큰 공을 세워 개국공신으로 알려진 십제 전씨의 16대손 전낙이 왕건을 살리는데 큰 공을 세웠다는 사실이야.

진수 : 아이러니한데요. 백제를 세웠던 사람의 후손이 그 역사를 이으려던 사람을 방해한 꼴이네요.

하여간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것이 사람일이니까요.

교수 : 역사는 반복되기도 하고 의외성을 가지기도 해. 후백제가 무너지는데에 결정적인 사건은 알다시피 후계자 문제 때문이었어. 10여 명의 아들이 있었던 견훤은 자신이 아끼던 후비 소생인 넷째 아들 금강을 태자로 삼자 적자인 신검과 양금, 용금이 궁정쿠데타를 일으켜 아버지 견훤을 절에 유폐시킨거야.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아?

진수 : 잠시만요. 아~ 조선시대 왕자의 난 말씀하시는거죠? 이방원이 방석을 세자로 책봉한 것에 반대하여 일으킨 난이요.

교수 : 그렇지. 상황은 비슷한데 다른 점이라면 조선은 위협하는 세력이 없었고 후백제는 고려라는 위협세력이 존재했다는 것이야. 아직 통일을 하지도 않았는데 후계자 자리를 놓고 다투니 망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거야.

MG0A9134_resize.JPG 후백제왕견훤릉 비

진수 : 고려가 강해서 후백제를 이겼다기보다는 견훤의 판단착오와 왕자들의 과욕이 부른 결과네요.

교수 : 이후 금산사에 유폐되어 있다가 탈출한 견훤은 얼마나 억울했던지 왕건에게 귀순하여 아들이 이끄는 후백제군과 싸워 그들을 망하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해.

진수 : 그건 너무했어요. 그래도 자신이 세운 국가고 그 국가를 이끌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아들인 데 말이에요.

교수 : 아무튼 내부 분열로 무너진 백제의 후예들은 그 후로 다시는 백제의 혼을 이어가지는 못했어 왕건이 자신의 아들인 신검을 살려준 것을 보고 원통했던 것인지 1년 후인 936년에 쓸쓸하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면서 완산주가 보이는 논산에 묻힌거야.

진수 :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의 쓸쓸한 퇴장이네요.

매거진의 이전글이응노의 추상회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