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노의 추상회화

비운의 예술가 이응노의 흔적

교수 : 진수는 살면서 예술가가 되고 싶은 적은 없었어?

진수 : 예 없어요! 무언가 그럴 듯 해보이긴 하지만 배고프고 힘든 삶을 살 생각은 없거든요. 얼마 전 예술인 수입을 보니 절반이 50만원 이하라고 하더라구요.

교수 : 맞아. 한국이 예술의 꽃을 피기에는 척박한 것이 사실이야. 예전에는 한국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 예술가도 있었으니까.

진수 : 오늘은 예술인 이야기인가 보네요.

교수 : 맞아 홍성에서 태어나서 파리로 유학가서 세상을 떠난 예술인 이응노 화백이 주인공이야.

진수 : 지금도 그렇지만 예술인치고 외국으로 유학 안가는 사람은 드문 것 같아요. 가까운 일본이나 유럽, 미국등지로 떠나는데 다 타이틀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요?


MG0A2559_resize.JPG 고암이능노생가기념관 (충남 홍성군 홍북면 이응노로 61-7)

교수 : 지금은 한국도 예술 관련한 역량이 있는 교육기관이 많이 있어서 환경이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유럽의 예술의 본고장이긴해. 일제시대나 해방이 되고 나서도 일본은 한국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예술을 배우기 위한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곳이야. 이응노 화백을 와롯하여, 주경, 손일봉, 김준식, 박봉수, 이인성, 서진달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동경미술학교나 동경 가와바타미술학교등에서 배웠었어. 특히 동경미술학교는 일본 내에서도 예술 수재들이 가기로 유명한 곳이야. 동경미술학교에서 수학하고 유럽 유학을 갔다온 사람으로 고지마 토라지로가 잘 알려져있지. 고지마 토라지로가 더 유명해진 것은 그의 강력한 후원자인 오하라 마고사부로가 그를 기념해 세운 미술관 오하라미술관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수 : 역시 일찍 문호를 개방한 덕분에 많은 것이 앞서 있었나 보네요. 메이지 유신이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네요. 건축적으로 보아도 일본이 한국보다 많이 앞서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교수 : 이응노는 일본 가와바타에서 전통적인 동양화나 문자추상, 꼴라쥬 등을 발전시켜 나갔고 이후 프랑스로 가서는 파리에 동양미술학교(Acadmie de Peinture Orientale)를 설립하여 서양에 동양미술을 알리는데 일조하면서 동양적 추상의 경지를 이끌어 냈어.

진수 : 예술가라면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사람 같긴 한데 어떻게 보면 제정신이 아닌 것 같고 남들과 다른 독특한 천재 같은 사람들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교수 : 원래 예술가는 기술자에서 출발한 개념이야. 고대 그리스에서는 '기술'(라틴어 ars)이라는의미로 화가, 건축가, 조각가들은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기술자였거든. 15세기까지는 예술가들은 오늘날 3D 중에 하나인 힘든 육체 노동자로 간주되었었어.

진수 : 예술가가 3D Job이라고요? 그럼 그냥 육체 노동을 해서 먹고 사는 사람의 일종이었네요.




MG0A2560_resize.JPG 생가 측면에 있는 이응노 미술관

교수 : 굳이 말하자면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런데 레오나르도 다빈치같은 사람이 나오면서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하고 그들에게 열광하는 대중들을 그들의 지위를 전문가로 만들어 놓은거야. 16세기 부터는 유럽에 아카데미같은 교육기관이 세워지기 시작했고 일본은 메이진 유신 이후인 1885년에 동경 미술학교를 세우면서 일본을 대표하는 예술인을 다수 배출하게 된거지.

진수 : 르네상스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네요. 서양의 관점과 동양의 관점은 확실히 다르네요.

교수 : 처음에는 서양의 예술이 훨씬 앞서 있는 것 같았으나 지금 보면 서로 부족한 것을 찾아 메워나가고 있어. 이응노는 콜라쥬를 이용해 새로운 작품을 창조하기도 했는데 동양에서는 없었던 개념이기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을 거야. 원래 콜라쥬는 프랑스어 coller(붙이다)에서 유래한 건데 놀이의 일종으로 취급되다가 피카소가 '등의자가 있는 정물화(1912)'를 공개하면서 회화의 반열에 콜라쥬를 올려놓은 거야.

진수 : 저도 학교 다닐 때 종이나 신문지로 작품이라고 만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상당히 쉬운 것 같지만 작품으로 만드는 것은 다른 이야기일거에요.




MG0A2563_resize.JPG 복원된 이응노 생가

교수 : 아까 전에 문자추상이야기가 나와서 그러는데 진수는 그림이 잘 이해가 안가고 난해하다고 생각할 때 뭐라고 그래?

진수 : 교수님이 말한 것처럼 추상을 붙이죠. 추상적이다. 그러면 무언가 있어 보이잖아요.

교수 : 19세기 까지는 대부분의 예술은 상상한 것을 '재현'하는데 집중했었어. 20세기에 들어와서 '추상'은 예술가들을 재현과 모방에서 해방시키면서 예술의 표현 영역을 더 넓히게 돼. 예술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제약장치가 있었던 것이 추상이라는 것이 들어오면서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모를만큼 넓어진거야. 러시아의 화가 카지미르 말레비치는 '추상은 순수미술의 재발견이며 대상으로 부터 해방된 더 없는 행복한 느낌'이라고 기술한 적이 있어.

진수 : 그거 참 편하네요. 이해하지 못할 그림을 그려놓고 이건 이걸 말하는거다라고 말하면 알아서 상상해야 하는 거잖아요.

교수 : 예술 작품은 너무 많은 해석을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그자체로 느끼면 되. 사람마다 느끼는 것은 모두 다르니까. 그렇게 왕성한 예술 활동을 하던 이응노의 인생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는데 바로 동백림(동베를린)사건에 연루되면서야. 중정요원들에 의해 고국에 납치돼 서울.안양.대전교도소에서 1년 8개월 동안 옥고를 치루고 파리로 돌아가 1989년 이국땅 파리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작품 활동을 지속했어.



MG0A2570_resize.JPG 대나무를 사랑했던 이응노

진수 : 외국에 있는 사람을 납치해올 정도로 중앙정보원의 파워가 대단했었네요. 한국에 정이 뚝 떨어졌을 것 같긴 해요.

교수 : 시간이 지나 대중들이 기억해주니까. 예술가들은 그것이 최고의 행복 아니겠어.이응노의 작품을 한 마디로 말하면 '추상회화'라고 볼 수 있어. 그리고 그의 작품들은 2005년 프랑스 건축가 로랑 보두앵이 '산책(promenade)'을 주요 테마로 설계하여 만든 미술관에 전시되었는데 예술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은 거장들의 예술작품만큼이나 컨셉이 중요하기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해.

진수 : 미술관은 아무나 설계할 수 없겠네요. 저도 제이름 걸고 미술관을 설계하는 그날을 꿈꿔 봐야겠어요

교수 : 그럼 일본 미술관을 참고해봐.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했다는 국립서양미술관, 하코네의 자연속에 조화를 이룬 폴라미술관, 나고야 성의 조형을 차용한 나고야시 미술관, 미쓰비시1호 미술관등 참고할만한 미술관이 적지 않아.


"나는 그래도 고독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말했을 뿐.

나는남몰래 가벼운 마음으로 줄곧 그리고 또 그렸다.

땅 위에,

담벼락에,

눈 위에,

검게 그을린 내 살갖에,

손가락으로, 나뭇가지로 혹은 조약돌로." - 이응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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