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보지 못한 사람이 본 인간의 얼굴
사람의 얼굴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사람의 얼굴을 꼴이라고도 한다. 그 값을 못하면 꼴값이라고도 하고 안 좋은 상태에 놓이면 꼴좋다고도 하기도 한다. 사람의 얼굴은 어느 순간 그 사람이 살아온 세월을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나이가 들어서는 더욱더 그 모습을 숨기기가 어렵다. 품격이라던가 내면의 모습이 드러나는 나이가 40부터이기도 하다. 아무리 좋은 화장품과 기술로 가리지 못하는 것이 내면이다. 그렇다면 얼굴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할까.
“이 분이 저희 어머니라고요?”
아마도 영화 얼굴을 설명하는 데 이보다 더 강한 문장은 없을 것이다. 어머니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들이 경찰의 전화를 통해 처음으로 어머니의 존재를 마주하는 순간. 이 영화는 그 한 문장에서 시작해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성을 천천히 파고든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시각장애인 임영규.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장을 만드는 장인이다. 얼굴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사람의 이름을 새기는 일을 평생 해왔다는 사실은 이미 이 영화가 던지려는 질문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름은 남았지만 사람은 사라졌다. 어느 날 경찰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40년 전 실종된 아내이자 어머니 ‘정영희’의 백골 사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다. 아들 임동환에게 어머니는 존재하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얼굴을 본 기억도, 함께한 시간도 없다. 그런 어머니가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그는 과거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여정에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 아버지의 삶을 촬영하던 다큐멘터리 PD 김수진.
두 사람은 40년 전 청계천 의류 공장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을 찾아가며 잊힌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며 흐려진 기록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다듬어진 기억에 가깝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얼마나 악한 동시에 또 얼마나 악한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이것이다. 인간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존재인가. 영화 속 사람들은 거대한 악인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가난했고, 살아남아야 했고, 시대 속에서 버티며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평범함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 있다. 돈 앞에서 인간의 관계는 생각보다 쉽게 무너진다.
가족이라는 이름도,
오랜 시간 쌓아온 관계도,
심지어 죄책감조차.
현실이라는 이름의 압력 앞에서는 너무 쉽게 흔들린다.
이 영화는 단순한 범죄 미스터리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들여다보는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얼굴을 보지 못한 사람이 가장 정확히 본 것이다. 이 영화의 가장 아이러니한 지점은 바로 여기 있다. 세상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가장 순수한 인간으로 남아 있다는 것. 임영규는 얼굴을 볼 수 없는 맹인이다. 하지만 사람의 존재를 기억하고 이름을 정성스럽게 새기며 살아간다. 반면 세상을 보는 사람들은 진실을 외면한다. 침묵하고, 기억을 바꾸고, 혹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사실을 밀어낸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 얼굴은 단순한 외형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내면을 말한다. 또 하나의 얼굴, 기록하는 사람이다. 영화에서 흥미로운 인물은 다큐멘터리 PD 김수진이다. 그녀는 사건을 기록하는 사람이다. 진실을 찾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이 이야기가 얼마나 강한 콘텐츠가 될 수 있는지 계산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웃는 얼굴로 공감하며 인터뷰를 이어가지만 그 속에는 또 다른 목적이 숨어 있다. 타인의 비극을 이야기로 만드는 것을 통해 자신의 이득을 추구한다. 이 인물은 영화 속에서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진실을 찾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고 있는 것일까. 필자는 사람의 말과 얼굴과의 괴리를 본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성공을 좋아하지 않는다. 불행이 있을 때 더 즐거워한다.
이 영화는 오히려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 다기도 하다. 인간의 얼굴은 무엇인가. 약하지만 잔인해질 수 있는 인간, 가족이지만 서로를 배신할 수 있는 인간, 그리고 타인의 비극을 콘텐츠로 소비하는 인간, 그 모든 모습이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얼굴을 본다는 것은 과연 사람을 아는 일일까. 어쩌면 이 영화는 얼굴을 보지 못했던 사람이 가장 정확하게 인간을 이해하고 있었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난 뒤 남는 감정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다. 조금 더 깊고 불편한 질문이다. 나는 어떤 얼굴로 살아가고 있는가.
당신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본 적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