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운항의 멍게

조류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통영의 멍게가 유난히 달달한 이유

처음 본 어민이었지만 경남 특유의 사투리로 말을 걸어왔다. 필자에게 통영의 아침은 풍경이었지만 어민들에게는 삶이었다. 그렇지만 이날은 조금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통영의 바다와 항구를 수없이 오가면서 어민들도 만나고 때론 여행을 온 사람들을 보기도 한다. 통영은 섬이 많고 바다가 깊지 않으며 파도가 비교적 잔잔하다. 이런 환경은 양식 시설을 설치하기에 안정적이다. 한국 멍게 생산량의 대부분이 통영을 중심으로 한 남해안에서 나온다. 특히 통영 주변 포구들은 오래전부터 멍게 양식이 발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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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로 먹는 것도 좋지만 통영의 맛이기도 한 멍게비빔밥도 좋아한다. 흔히 유곽비빔밥이라고도 부르는 그 음식에는 바다가 있다. 이번에 방문해 본 통영의 영운항 같은 포구를 보면 단순히 항구 풍경이 아니라 바다 위에서 자라나는 멍게와 그걸 수확하는 어민들의 삶이 함께 보였다. 경남 통영시에는 크고 작은 포구들이 많다. 그 가운데서도 조용히 바다의 시간을 품고 있는 곳이 바로 영운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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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방문해 본 통영의 영운항은 관광객이 많이 찾는 화려한 항구라기보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생활의 공간에 가깝다. 항구에 서 있으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잔잔한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어선들이다. 크지 않은 배들이 줄지어 정박해 있고, 그 주변에는 바다에서 막 일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들의 움직임이 이어진다. 이곳에서는 바다가 풍경이 아니라 곧 생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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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많은 멍게가 끊임없이 올라오는 것은 오래간만에 본다. 쌉싸름한 멍게가 이렇게 구분되고 손질되어 전국으로 나가게 된다. 통영은 예부터 남해안의 중요한 수산업 중심지였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해상 교통의 요지였고, 조선 수군의 활동과도 깊이 연결된 도시다. 통영이라는 이름 자체도 삼도수군통제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지금은 군사적 기능은 사라졌지만, 바다는 여전히 사람들의 삶을 지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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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운항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포구다. 바람을 피해 배가 머물 수 있는 지형 덕분에 어민들이 모여들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작은 항구가 형성됐다. 거대한 항만시설이 있는 곳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런 점 때문에 더 생활의 냄새가 짙게 남아 있다. 이곳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풍경 중 하나가 바로 멍게 작업이다. 통영은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멍게 산지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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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 양식장에서 자란 멍게를 어민들이 매일 수확하고 손질한다. 새벽부터 배를 타고 나가 멍게 줄을 끌어올리고, 항구로 돌아와 하나하나 손질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막 바다에서 건져 올린 멍게는 특유의 향을 품고 있다. 바닷물과 햇빛, 그리고 시간의 맛이 스며 있는 음식이다. 관광객들에게는 별미로 알려진 식재료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일상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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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민들의 하루는 바다의 시간에 맞춰 흘러간다. 날씨와 조류, 계절의 변화에 따라 일이 달라진다. 어떤 날은 바다가 잔잔해 작업이 수월하지만, 어떤 날은 파도와 바람 때문에 배를 띄우기도 어렵다. 그렇게 자연과 맞서기보다는 자연에 맞추며 살아가는 삶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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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를 걷다 보면 사람들의 말소리와 작업하는 소리가 섞여 들린다. 그 사이로 바닷바람이 지나가고, 물결이 부딪히는 소리가 배경처럼 흐른다. 관광지에서 듣는 소음과는 다른, 삶의 리듬에 가까운 소리들이다. 바다를 잠시 떠나서 영운항 앞에 조성된 마을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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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운항의 풍경은 화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간이 쌓여 있다. 매일 반복되는 작업과 일상 속에서 이 항구는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어쩌면 항구의 진짜 풍경은 바다가 아니라 사람일지도 모른다. 멍게를 수확하고 그물을 정리하며 하루를 보내는 어민들의 모습 속에서 바다의 시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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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의 많은 포구들처럼 영운항도 그렇게 조용히 하루를 시작하고 또 하루를 마무리한다. 화려하지 않지만 꾸준히 이어지는 삶의 풍경, 그 안에서 바다는 여전히 사람들과 함께 숨 쉬고 있다. 갑자기 멍게의 쌉싸름함을 접하고 싶은 것은 단지 기분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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