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건너 도착한 시간, 통영 사량도에서 보낸 하루
벚꽃이 피어나는 시기에 섬으로 떠나는 여행은 다른 느낌을 선사해 준다. 섬은 고립의 느낌과 함께 여행이 주는 독특함이 있어서 즐거움이 배가 된다. 섬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육지에서의 시간과는 조금 다른 흐름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이번에 떠나볼 곳은 바로 통영의 섬 중에 유인도이며 주민만 1,000명이 넘는 큰 섬인 사량도다. 사량도에는 그 유명한 지리산이 있다. 한국의 100대 명산에 들어가 있는 산이기도 하다.
통영에서 사량도로 향하는 배에 오르는 순간부터 그 감각은 시작된다. 차량들이 천천히 배 안으로 들어가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속도를 늦춘다. 도시에서는 당연했던 빠름이 이곳에서는 필요하지 않다. 누군가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바다를 바라보고, 누군가는 말없이 난간에 기대어 바람을 맞으면서 바다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을 만끽한다.
출발을 기다리는 시간조차 이곳에서는 하나의 장면이 된다. 배가 출발하면 뒤로 밀려나는 것은 풍경이 아니라 시간이다. 잔잔한 바다 위로 남겨진 물결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서둘러야 했던 이유들이 조금씩 희미해진다. 참고로 사량도와 통영의 가오치항으로 왕복하는 배는 2시간의 간격을 가지고 운항된다.
멀어지는 육지를 바라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무언가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다른 리듬으로 들어가는 느낌에 가깝다.
사량도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섬만이 가지고 있는 공기의 밀도다. 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인데도 이곳의 공기는 조금 더 느리고, 조금 더 부드럽게 다가온다.
사량도는 상도와 하도로 나뉘어 있지만 그 경계는 지도로 보는 것만큼 분명하지 않다. 다리 하나로 연결되어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여행에서 주는 기대감이 남다르다. 상도는 조금 더 단단한 느낌이 든다. 산과 바다가 맞닿아 있는 풍경 속에서 사람이 살아온 시간이 층처럼 쌓여 있다.
좁은 길을 따라 이동하다 보면 바다와 산이 번갈아가며 시선을 끌어당기는 여행을 해볼 수가 있다. 사량도의 숲길은 1, 2, 3, 4, 5코스로 조성이 되어 있고 금평, 옥녀봉, 가마봉, 월암봉, 옥동, 봉화대, 대곡산, 칠현산, 사량대교, 전망데크, 대항해수욕장등을 모두 돌아볼 수 있는 코스다.
어디를 바라봐도 풍경이 완성되어 있는 곳이 바로 사량도라는 섬의 매력이다. 하도는 조금 더 느슨하게 다가온다. 바람이 머무는 자리처럼 잠시 멈춰도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배에 차를 가지고 왔다면 차를 세워두고 한참을 바라봐도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곳이 하도라는 섬이다. 그저 머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공간이다. 사량도라는 이름은 두 섬 사이를 가로 흐르는 물길이 가늘고 긴 뱀처럼 구불구불한 형세를 이룬 것에서 유래하여 이 해협을 사량이라고 일컬은 것에서 유래하였다.
같은 섬이지만 다른 리듬을 가진 공간으로 사량도는 한 번의 방문으로도 두 번의 여행을 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사량도가 잇는 사량면은 통영시의 가장 서쪽 해역에 위치한 사량도 및 수우도를 중심으로 한 도서지역이다. 사량도의 옛 섬 이름은 박도였으며 고려시대에는 박도구당소가 있어 봄과 가을로 관할 고성수령이 남해의 호국신에게 망제를 지냈다고 한다.
사량도에서의 하루는 길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오래 남는 것은 왜일까.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이곳에서는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괜찮았기 때문이다. 많이 보고, 많이 이동하고 많이 경험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그저 머무르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시간이 좋다.
여행의 매력이라면 바로 먹는 것이다. 가장 현실적인 즐거움으로 돌아온다. 물회 한 그릇을 먹을때 느껴지는 잘게 썬 회 위에 얹어진 양념과 채소가 어우러진다. 그리고 차갑게 풀어지는 국물이 있는데 처음에는 단순한 한 끼라고 생각하지만 한 숟가락을 뜨는 순간 알게 된다.
물회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지금까지 지나온 바다의 연장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배를 타고, 섬을 걷고, 바람을 맞고 그 모든 시간이 한 그릇 안에 담겨 있다. 입안에서 퍼지는 시원함은 단순히 맛이 아니라 이곳의 공기와 시간까지 함께 전해준다. 어쩌면 여행의 완성은 풍경이 아니라 이런 순간일지도 모른다.
이제 안쪽에 자리한 최영장군으로 걸어가 본다.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시간이 머무는 장소에 가깝다. 고려 말, 왜구를 막아냈던 장군의 이름은 지금 이 섬에서 여전히 조용히 살아 있다.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돌담과 기와,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나무들까지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그 시선은 아마도 바다일 것이다. 바다는 이곳에서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지켜야 했던 대상이었고 살아가기 위한 터전이었기 때문이다. 여행이 깊어지는 순간은 이렇게 공간이 이야기를 갖게 될 때다. 그저 지나가는 장소가 아니라 잠시 멈춰 서게 만드는 이유가 있는 섬 사량도는 그런 장소들을 품고 있는 섬이다.
아마도 그 이유는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길어서가 아니라 다르게 흘렀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하루였지만 다른 밀도를 가진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이 섬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그 배에 오르게 된다. 그때는 또 다른 속도와 감성을 담아서 또 다른 마음으로 물길과 골목길을 걷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