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포항에서 만나는 시간의 층위, 채석강 그리고 부안 마실축제
정말 오래간만에 전북 부안이라는 지역을 방문해보았다. 부안하면 먼저 생각나는 곳은 바로 지질이 독특하게 형성되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채석강이다. 바다는 언제나 바깥에서 먼저 보인다. 수평선은 단순하고, 물결은 반복되며, 풍경은 쉽게 연상된다. 하지만 어떤 바다는 그 안으로 들어가야만 비로소 의미를 드러내기도 한다. 부안 격포항이 그런 곳이다.
격포항에 도착하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절벽이다. 바다를 향해 길게 드러난 암벽은 마치 누군가 오랜 시간 동안 한 장씩 페이지를 쌓아 올린 것처럼 보인다. 세월의 힘으로 쌓아올린 것이어서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곳이 채석강이다. 이름만 들으면 돌을 캐내던 장소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바다가 만들어낸 시간의 구조다. 파도는 끊임없이 바위를 깎고 바람은 그 위를 스쳐 지나가며 층을 더 또렷하게 드러낸다. 그렇게 쌓인 시간은 눈앞에서 하나의 풍경이 된다. 가까이 다가가면 그 풍경은 더 이상 ‘풍경’이 아니다.
겹겹이 쌓인 지층 사이로 물이 스며들고 작은 동굴들이 입을 벌리고 있다. 파도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빠져나오며 형태를 만들었다가 지운다. 이곳에서 고정된 것은 없다. 이곳에서 형태는 항상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다.
채석강을 걷는다는 것은 길을 걷는 일이 아니다. 시간 위를 걷는 일에 가깝다. 발 아래 놓인 돌은 지금 막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흐름의 일부다. 그 위를 지나가는 순간 사람은 잠시 그 시간의 일부가 된다.
격포항으로 시선을 옮기면 조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잔잔한 물 위로 갈매기 몇 마리가 떠 있고 멀리서는 배가 천천히 움직인다. 바다는 여전히 같은 모습이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간은 조용히 지나가고 았다.
관광지와 생활의 경계가 이곳에서는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이곳의 풍경은 어딘가 더 현실적이고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 조용한 공간에도 계절이 바뀌면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곧 열리는 부안 마실축제는 그 흐름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든다. ‘마실’이라는 말처럼 이 축제는 누군가의 삶 속으로 조용히 들어가는 방식에 가깝다. 화려하게 소비되는 이벤트가 아니라 지역의 시간과 사람을 가까이에서 만나는 자리다. 먹거리와 이야기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온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다시 바다를 바라보며 걸어본다. 채석강의 층은 시간이 만든 구조이고 격포항의 풍경은 사람이 살아온 흔적이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지 잠시 생각하게 된다. 바깥에서 바라보고 있는지 아니면 이미 그 안에 들어와 있는지를 느끼게 된다.
역시 여행은 색다른 풍경을 만나보는데에 매력이 있다.
바다는 형태를 만든다. 그리고 사람은 그 안에서 의미를 만들어낸다. 격포항과 채석강은 그 두 가지가 만나는 지점이다. 그래서 이곳의 풍경은 단순히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조용히 머물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