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한 번에 오지 않는다

보령의 불러 보령과 보령 무궁화수목원에서 느낀 느린 계절이야기

이동의 속도를 낮추면, 계절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했던가. 여행을 하다 보면 어디에 도착했느냐보다 어떻게 이동했는지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 4월에 방문해 본 보령에서는 그 시작이 조금 달랐다. 무궁화수목원으로 가는 길 위에서 우연히 마주한 하늘빛을 닮은 차량 한 대가 눈에 뜨였다. ‘불러 보령’이라는 이름이 적힌 그 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라기보다 이 지역의 시간을 보여주는 하나의 방식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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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러 보령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민의 이동을 빠르고 편리하게 돕는 통합 교통 서비스이다. 수요 응답 교통이란 고정된 경로를 주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자가 호출하면 최적 경로를 실시간으로 생성해 운행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정해진 노선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곳으로, 필요한 사람에게 향하는 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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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인구감소가 되는 지방도시는 AI 기술 기반의 셔클 플랫폼을 실증 운영하고, 이를 통해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공공교통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장면을 뒤로하고 무궁화수목원으로 향하는 길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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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수목원에 도착해서 이동의 속도가 조금 느려졌을 뿐인데 풍경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아직 잎이 피지 않은 나무들 사이로 햇빛이 길게 내려오고 그 아래에서 계절이 바뀌고 있었다. 수목원 입구에 도착했을 때 봄은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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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은 완성된 봄이 아니라 막 움직이기 시작한 봄이었다. 특히 개나리가 많이 보이는 무궁화수목원의 안으로 들어가면 계절의 층이 보인다. 어느 곳은 아직 겨울의 색을 품고 있고 어느 곳은 이미 봄의 빛을 띠고 있다. 노란 개나리가 먼저 피어 이곳이 봄의 시작점임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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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으로는 아직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무들이 있다. 같은 공간 안에서 서로 다른 계절이 공존하고 있었다. 길을 따라 걸어서 올라가 본다. 곧게 뻗은 나무 사이로 햇빛이 길처럼 이어지고 그 길 위를 천천히 지나간다. 이곳에서는 걸음이 자연스럽게 느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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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수목원은 무언가를 보려고 걷는 것이 아니라 그저 걷는 것만으로 충분해지는 공간이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물과 빛이 만나는 풍경이 나타난다. 잔잔한 연못 위에 햇빛이 내려앉고 그 위에 떠 있는 꽃잎들이 시간처럼 흩어져 있다. 봄은 소리를 내지 않지만 이런 장면에서는 분명히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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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 무궁화수목원은 이 계절에는 아직 중심이 아니다. 이곳의 진짜 이야기는 여름이 되어야 완성된다. 무궁화는 기다리는 꽃이다. 다른 꽃들이 봄을 채우고 떠난 뒤 자신의 시간을 시작하는 꽃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의 봄은 더 조용하고 더 여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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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무궁화의 시간이 펼쳐진다. 하루를 살고 다시 피어나는 꽃으로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이면 스스로를 내려놓고 다음 날 다시 피어나기를 반복한다. 그 짧은 생과 긴 시간의 연결이 이 꽃의 의미를 만든다. 다시 밖으로 나오면 수목원의 풍경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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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지만 지금 피어 있는 것과 아직 피지 않은 것이 있고 이미 지나간 것과 곧 시작될 변화들도 있다. 모든 시간이 한 공간 안에 겹쳐져 있다. 처음 길 위에서 보았던 ‘불러 보령’ 차량이 떠오른다. 필요한 곳으로 이동하는 방식처럼 계절도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정해진 시간표가 아니라 자신의 속도로 봄은 한 번에 오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조금씩 이동하면서 천천히 완성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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