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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Nov 01. 2017

가을 옷

장태산의 가을

가을이 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건만 밖으로 나와보니 가을 옷을 입은 산이 그곳에 있었다. 산이 입는 가을 옷은 매일 달라지고 시시각각으로 변화한다. 그 큰 산이 쉽게 옷을 갈아입는 것을 보니 자연의 힘이 위대하긴 위대한가 보다. 사람의 옷 색동저고리보다 울긋불긋한 색채가 더 화사하다. 이렇게 날 좋은 날 대전의 남쪽에 자리한 장태산을 찾아가 보았다. 


임진왜란 때 장씨 성을 가진 사람이 난을 피해 장군종 아래 베틀굴에 숨어서 3년 동안 베를 짜며 살다가 지금의 원장 안에 터를 잡아 편안히 살기 시작하였다 하여 장안동이라 이름 붙여졌다는 전설이 남아 있는 장태산은 대전 사람들의 휴식처 역할을 톡톡히 하는 곳이다. 

올해 그렇게 잘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이런 이쁜 가을 선물을 받았다. 삶의 방식과 방향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같다. 남의 인생은 좋아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볼 때는 비극일 때가 있다. 모두들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살아갈 뿐이다.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지만 떠나지 않으면 좋은 일도 만날 수 없다. 

지인이 준 인삼우유를 마시고 이렇게 공기 좋은 곳에 오니 몸이 절로 치유되고 정신은 맑아지는 느낌이다. 나를 안갯속에서 빼준 사람이 있고 그 사람도 같이 안갯속을 나온다. 

장태산 일대의 울창한 침엽수와 활엽수림 17만여 평에 빼곡히 심어져 있다. 인공으로 조성된 일만여 주가 넘는 메타세쿼이아 나무는 이국적인 풍치를 보여줌과 동시에 자못 올곧은 자태가 이쁘다. 

이 순간의 기억이 그대로 남아 있기를 기대하면서 연못을 거닐며 다시 한번 마음을 잡아본다. 내가 사랑하는 이 시간들을 잊지 않고 살겠다고 말이다. 

여러 번 왔지만 매번 시간대가 맞지 않아서 가지 못했던 숲 체험 스카이웨이를 걸어가 본다. 다행히 오늘은 시간과 요일에 맞춰서 왔다. 이곳은 어떤 곳일까. 봄에 자라난 나뭇잎들이 비처럼 내리고 마음이 울긋불긋해지는 것을 느낀다. 

천천히 걸어 올라가 본다. 건물 구조가 흔들리는 형태로 만들어져서 그런지 휘청휘청 거리는데 인생의 길 같다. 이 길을 한 번 걷고 나면 필자는 언제든지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짜릿하다. 과거에 자꾸 연연하는 것은 돌아가지도 않는 시계를 억지로 돌리는 것이다. 앞으로의 살아있는 시간을 만나고 싶다. 누구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은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 

올라와서 보니 장태산의 산세가 꽤나 볼만하다. 산 정상의 형제바위 위에 있는 전망대에서 낙조를 바라볼 수 있으며 장군봉, 행상 바위 등 기암괴석도 보인다. 

눈이 번쩍 깨이는 장관이다. 아직 온전한 오색 옷을 입지 않았지만 이 정도로도 가을의 정취는 충분해 보인다. 내려오다가 두 손을 잡고 걸어가는 장년의 남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걸어내려 갔다. 걸음의 속도가 달라 잡은 손을 놓기도 했지만 그들은 다시 얘기하고 얘기하며 계속 같이 걸었다. 


나의 길과 너의 길 서로 달리 걸어왔던 길이 합쳐질 때 꽃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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