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의 옛 골목을 거닐고 오래된 맛과 영산포 풍물시장 5일장
갑자기 무더워진 날씨로 인해 마치 여름이 일찍 마중 나온 느낌마저 드는 요즘이다. 이런 때에는 여행을 가기에 너무나 좋다. 우선 짐이 가벼워지기 때문에 훌쩍 떠나듯이 나갈 수가 있다. 나주 구도심으로 들어가는 길은 그저 한 도시의 중심으로 향하는 길이 아니라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게 한다. 나주향교, 관아 그리고 나주목 향청으로 가볼 수가 있다.
‘나주목 향청’이라는 이름이 걸린 표지판 아래를 지나면 이곳이 단순한 생활공간이 아니라 한때 행정과 문화의 중심이었던 자리였음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 나주는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전라도에서 매우 중요한 ‘목(牧)’이었다. 즉, 단순한 지방 도시가 아니라 행정·군사·경제의 중심지였다.
나주만 방문하면 음식점을 돌아가면서 곰탕을 한 번씩 먹어본다.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느낌의 곰탕과 김치맛도 모두 제각각이지만 모두 만족스럽다. 곰탕 한 그릇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삶이 풍성해지는 이야기다.
나주 여행의 시작은 언제나 한 그릇의 곰탕이다. 맑은 국물 위로 얇게 썰린 고기가 떠 있고 그 위에 올려진 파 한 줌이 이 음식의 전부다. 특별한 양념도, 과장된 맛도 없지만 한 숟갈을 뜨는 순간 이곳의 시간과 방식이 그대로 전해진다. 항상 만족스러운 그런 맛이다.
나주 곰탕은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끓여야만 완성되는 음식이다. 살고 있는 도시에도 나주곰탕을 하는 음식점이 있지만 나주에서 먹는 그런 맛을 재현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이 도시에 잘 어울린다.
빠르게 변하지 않고 천천히 쌓여온 것들의 맛으로 한 그릇을 깔끔하게 비운 후에 잠시 나빌레라 문화센터에 들려본다. 곰탕으로 속을 채운 뒤 걸음을 옮긴 곳은 나빌레라 문화센터다. 오래된 건물을 다시 살려낸 이 공간은 과거를 지우지 않고 그 위에 새로운 시간을 덧입힌다.
벽에 그려진 한 여인의 얼굴은 마치 이 도시가 기억하고 있는 누군가처럼 보인다. 이곳은 전시를 보는 공간이기보다 잠시 멈춰 서서 생각을 정리하는 공간에 가깝다. 바쁘게 흘러가는 여행 속에서 유일하게 ‘머물러도 되는 시간’이 허락되는 곳이다.
낡은 건물들은 그대로 남아 있고 그 사이사이에는 새로 들어선 공간들이 조심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경쟁하지 않고 서로를 비켜서 있는 풍경이 같이 공존하고 있다.
이제 영산강으로 흘러가는 물줄기가 있는 곳으로 가면 풍물시장을 볼 수가 있다. 5일마다 열리는 5일장에는 살아 있는 도시의 현재가 살아있다. 그리고 다시 밖으로 나오면 완전히 다른 시간이 펼쳐진다.
나주 5일장은 지금 이 도시가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이기도 하다. 길가에 늘어선 좌판 위에는 바다에서 올라온 생선과 땅에서 막 캐낸 뿌리들이 함께 놓여 있다. 가격을 묻고, 흥정을 하고, 서로 안부를 묻는 소리들이 겹치면서 이곳은 하나의 거대한 생활공간이 된다.
나주를 방문한 관광객에게는 낯선 풍경이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매번 반복되는 일상의 리듬이다. 그래서 더 진짜에 가깝다. 큰 솥으로 끌어낸 맛은 나주만의 맛이다.
여행의 끝에서 다시 떠오르는 것은 결국 처음 먹었던 그 곰탕이었다. 큰 솥 안에서 오랜 시간 끓고 있는 국물이 느껴진다. 그 안에는 이 도시의 방식이 그대로 담겨 있다. 서두르지 않고 시간을 들이고 결국 깊은 맛으로 완성되는 것처럼 나주만의 여행을 해보기에 좋은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