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가야 할 길
책을 읽는 대신 TV를 보고 프로그램 중에서 자극적인 것을 좋아한다. 사람들은 점점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인간의 가치 대신에 돈만 바라본다. 필자는 TV를 거의 보지 않는다. 다른 연예인들이 나와 희희낙락하면서 자신들끼리 즐거워하고 그들의 가족 이야기를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내 삶의 가치를 가볍게 만들 뿐만 아니라 무의미하게까지 만든다. 특히나 한국의 드라마들은 케이블 방송의 몇몇 프로그램을 제외하고 여전히 자극적이고 현실에서 없는 삶을 그려나간다. 이런 자극적이고 의미 없는 신변잡기가 일상이 된 것은 비단 방송사나 제작사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시청자도 책임이 있다. 그리고 우리 삶은 풍요로워 보이지만 정신은 빈곤해져 간다.
영화 수어사이드 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청률에 연연하며 자극적인 프로그램만을 만들어내는 방송사의 추한 이면을 잘 그려냈다. 억만장자와의 결혼을 두고 서바이벌 포맷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애덤 로저스는 생방송 도중에 선택받지 못한 여성이 남자를 죽이고 자신이 자살하는 총격사건을 겪게 된다. 충격을 받은 그는 자극적인 예능 방송이 가진 문제점을 깨닫고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나 사건 당시 높은 시청률을 본 제작자 일라나 카츠는 합법적인 자살쇼를 통해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그리고 그 진행자로 애덤 로저스를 추천하지만 그는 거절한다. 며칠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는 오히려 자살쇼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죽음에 담긴 진정성을 통해 오히려 삶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겠다는 시도로 진행을 시작했지만 회가 거듭되고 자살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자 그 역시 방송의 자극적인 색깔에 녹아들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TV를 보고 만들어진 그들의 이미지를 소비한다. 그들에게 진정성이란 그다지 의미가 없다. 그냥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그렇게 TV는 사람들을 현혹하고 사람들은 시간을 소비한다. 생각의 근육이 없는 사람들을 한 방향으로 몰고 사람들은 자극적인 뉴스나 방송을 보며 그들이 만들어준 이미지에 흥분하고 마녀사냥을 한다. 진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를 공격해야 하는지 누군가를 사랑해야 하는지 누구를 미워해야 하는지 그들이 보여준 대로 휩쓸릴 뿐이다.
초중반의 높은 시청률이 주춤해지자 진행자는 결국 자극적인 방송을 하기 위해 돈을 올린다. 그리고 사람도 한꺼번에 세명이 자살하는 마지막회를 기획한다. 제작자 일라나 카츠의 방을 청소해주던 메이슨 워싱턴은 실업으로 돈을 벌지 못해 가족을 부양하지 못하자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항상 올바른 철학을 가지며 산다고 생각했지만 자극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변한 오빠를 바꾸기 위해 참여한 카리나가 끼어 있었다. 죽음에 대해 개똥 같은 철학을 떠벌리며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오던 애덤 로저스는 여동생의 죽음의 순간에 어떻게든 멈추어 보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우리는 타인의 절망에 대해 너무나 쉽게 결정을 내려버린다. 수많은 자살자들은 마지막까지 삶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절망의 끝을 쉽게 폄하하고 재단해 버린다. 이 사회의 어금니 아빠 이영학 같은 사람들은 바로 우리가 만들어내고 있다.
자극적인 방송 거짓된 진실에 속아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생각하지 못한다면 인간이 가진 가치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