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Food democracy

한 끼 식사가 최근 화두가 되고 있다. 수많은 프로그램에서 맛있는 것 혹은 몸에 좋은 것을 표방하면서 전국으로 해외로 나가서 음식을 먹고 만드는 것을 찍고 있다. 한 끼 식사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누군가와 한 끼 식사를 한다는 것은 그 순간만큼은 건강하기 위한 시간을 공유한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식탁에는 어떤 것이 올라올까. 대한민국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씨앗에 대해 무지했었다. 90년대에 들어서야 조금씩 종자에 관심을 가지고 지속 가능한 한국음식의 재료에 예산을 투입하고 관리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식탁을 차지하는 음식 중 쌀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해외에서 건너온 것들이다. 특히 미국에서 건너온 수많은 음식의 재료들은 대규모 산업농 기반 아래 재배된 것들이다. 대량생산이 좋다는 말에 속아 마치 대량생산을 거치면 음식값이 싸지고 품질은 표준화되며 우리의 식탁은 안정적으로 공급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과연 그럴까. 세계화 속에서 우리의 식량 주권은 생각보다 빠르게 잃어가고 있다. 불과 수십 년 사이에 종자의 70% 이상의 다양성이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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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도의 물리학자이며 환경운동가인 반다나 시바가 주장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객관적으로 기술한 부분이 적지 않고 지금의 기업화 논리가 미래지향적이지 않다는 부분에 충분히 동의할만하다. 1차 세계대전 때 많은 사람들은 한꺼번에 죽일 수 있는 독가스를 개발한 독일의 과학자 하버가 질소를 개발한 것은 식량을 많이 생산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날 무렵 칠레를 경제적으로 부강하게 만들어준 질소의 원료인 칠레 초석은 머지않아 바닥을 보일 터였다.


우리가 땅에서 재배하는 작물은 수확을 하게 되면 토양의 질소를 가져가 다시 돌려보내지 않는다. 즉 토양의 질소가 부족해지는 사태가 벌어진다. 그래서 비료를 사용하여 재배 중인 작물에 질소를 공급하였는데 이것도 한계가 있었다. 공기 중에 있는 질소를 고정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질소 분자(N2) 자체는 질소 원자 두 개가 삼중 결합을 하고 있어서 식물이 이용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게 결합이 되어 있는데 이를 암모늄 이온의 형태로 만들기 위해서는 높은 압력과 열을 가해야 하지만 하버가 개발한 촉매를 이용한 방식은 더 낮은 온도에서 암모니아를 합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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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가 만들어낸 합성법으로 인해 농업에서의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높아졌지만 그 결과 토양은 자생력을 잃어갔다. 쉽게 표현하자면 살아 있는 인간의 좀비 화가 된 것과 유사하다. 질소의 결합을 끊을 수 있는 효소를 가진 토양 미생물인 질소 고정 세균이나 지렁이, 토양 속 작은 동물들은 농약 사용으로 죽어갔고 더 많은 생산을 끌어내기 위해 대규모화되고 기름은 더 많이 사용하며 자본의 투자는 더 거대해졌다. 산업농 패러다임의 근본은 착취와 지배에 있다. 그러면서 아프리카와 식량 빈국에서의 삶은 더 피폐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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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나 이런 곳을 가보면 생산자 이력 추적제도 있지만 수많은 가공식품이 어떤 원료로 생산되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식량은 생명이지만 기업은 생명이 아닌 소비자 그 자체로만 본다. 우리의 식량을 어디서 길러내고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그 속에는 무엇이 담겨 있는지 알지 못한다. 과학의 신화 아래 만들어진 유전자 조작 씨앗인 GMO가 도입될 때 이 세계를 먹여 살린다는 명분으로 들어왔다. 연구 결과 GMO는 해충을 죽이지도, 생산량을 증대하지도 못하며 되레 생산량을 감소시키며 새로운 슈퍼 해충, 슈퍼 잡초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그런데도 왜? 투자 대비 생산량이 많은 것처럼 보이는지 궁금한 사람들은 미국이 기업농에 지원하는 엄청난 세금에 초점을 맞추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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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발견한 하버의 합성법으로 인해 살상 무기 기업에서 산업농으로 변신한 기업들은 질소 고정 설비를 갖춘 공장들은 합성 비료를 사용할 시장을 창출해냈다. 겉으로는 평화로운 전환을 한 것 같지만 오랜 시간 그 합성비료는 지구의 토양을 성공적으로 파괴해 갔다.


미소 식물이 득시글대는, 건강한 생명력을 갖춘 토양은 건강한 식물들을 길러내기 마련이며, 이러한 식물들은 동물과 인간의 입으로 들어가 동물과 인간에게 건강을 선사하다. 하지만 비옥하지 않는 토양, 즉 미생물류와 균류 및 또 다른 생명체들이 충분치 않은 토양은 식물에 모종의 결핍을 고스란히 전하고, 그러한 식물은 모종의 결핍을 동물과 인간에게 전하게 될 것이다. - 하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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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착취와 지배는 유통기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농가들은 안정적인 공급처를 찾아 이들에게 불공평한 계약을 참아내야 했다. 화학 농법과 유전공학을 사용하여 단일 경작을 주장하는 농기업들은 효율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상 그렇지가 않다.


단일 경작이 이용 가능한 값싼 식량이 더 많이 생산된다는 주장의 허구성


첫째, 단일 경작은 완전무결한 생태계와 여러 작물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총 생태계 수확량이 아니라, 단일 작물이라는 부분에만 초점을 맞춘다.

둘째, 산업형 경작은 사람들이 실제로 먹는 다양한 작물이 아니라 한두 개의 글로벌 상품에만 수확에만 집중한다. 여기서 초점이 높이는 부분은 단위 면적당 영양분이 아니라 수확량인데, 사실 지금 우리는 산업농의 결과로써 단위면적당 영양분이 감소한 시대를 살고 있다.

셋째, 유전자 변형을 포함하는 산업형 경작은 자연자원들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고 또 허비한다. 만일 생산성이 자연 자원 사용에 근거해 산정된다면, 산업농의 생산성은 매우 낮은 셈이다.

넷째, 핵심적인 것으로 화학 물질 집약적인 단일 경작 농업과 유전공학은 생물 다양성 집약적인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생태학적 대안보다 더 적은 양의 식량을 생산한다.


인간뿐만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은 존귀한 것이다. 살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먹어야 하고 무언가를 먹는 것은 실로 의미 있는 일이다. 우린 먹는 것을 너무 경시해온 듯하다. 잘 먹어야 사는데도 불구하고 먹는 것에 대해 생각보다 무관심하다. 먹고 사는 것과 잘 사는 것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게 살아오지 않았나 다시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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