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의 소송

동물들의 권리는 누가 말하는가.

동물들에게 권리가 있을까?

어떤 동물들은 마땅히 보호받아야 하고 어떤 동물들은 보호받을 권리조차 없는 것일까. 집에서 기르는 반려동물과 접시 위에 얹어진 고기 둘 다 사랑하는데 별 문제는 없어 보인다. 개인적으로 동물 애호가를 지향하지도 않고 고기를 먹는데 반대하지도 않지만 반려동물을 기른다던가 동물을 학대하는 것도 바람직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생각해보자. 어떤 집에서 기르는 개가 돼지나 소나 닭보다 값어치 있는 존재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귀여운 외모를 지녔거나 사람이 좋아하는 재주를 부릴 수 있는 동물들만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TV를 보면 감정에 치우쳐서 지나치게 동물 입장에서 헌신적이면서 저돌적인 동물보호 운동가들을 적지 않게 접해보았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편협되어 있고 균형적이지 않다. 이제 얼마 남지 않는 팬다나 코끼리를 보호하는 일에는 헌신하기도 하지만 드 넓은 바다에서 서식하는 물고기들은 그 씨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싹쓸이한다. 물고기들은 덜 고통을 느껴서 그런 것일까. 예전에 베트남의 전통시장을 갔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한국은 도축된 소나 돼지를 덩어리째 매달아놓는 경우를 보기 힘들지만 그곳에서는 그런 장면들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보기 힘들 정도는 아니었지만 무언가 다른 감각을 자극시킨 것은 사실이었다.


우리는 사람과 비슷한 구석이 있는 정확하게 말하면 동물이 인간에게 반응을 보낼 경우 그 동물에 대한 가치를 부여한다. 꼬리를 흔들고 몸을 비비고 혀로 핥으며 뛰어오고 반겨하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감에 빠진다. 즉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피드백을 주어야 한다는 의미다. 음식으로 많이 접하는 소나 돼지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심지어 닭은 대체 무얼 원하는지 알 수가 없다.


동물의 인간에게 위협받지 않고 생존능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동물에 대한 애착이 커지다 보면 애니멀 호딩이 되기도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동물의 생존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자신의 소득과 관계없이 많은 동물을 집안에서 키우기도 한다. 동물과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냉정히 말해 어떠한 동물도 배우자나 친구, 자식을 대신할 수는 없다. 반려동물이라고 부르지만 개나 고양이는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해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체가 아니다.


인간의 관점으로 볼 때 동물원에서 보호받고 있다는 동물들은 TV에서 자주 등장한다. 동물들이 원하는 방식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다른 동물들과의 소통을 요구받는다. 심지어 사육사들에게 혼을 나기도 하고 잘못된 행동(?)에 지적을 받고 강제로 고쳐질 때까지 수없이 같은 과정을 거친다. 인간이 먹는 약물이나 다양한 치료는 이미 동물을 통해 수없이 시험을 거치게 된다. 식량으로서의 동물은 인간의 식탁에서 중요한 한 부분을 담당한다.


과연 우리는 동물을 어떠한 존재로 보는 것인지 그 동물의 권리를 지켜주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적어도 우리가 자주 접하는 동물들에 대한 관점에 객관성이 부여되었는지 알고 싶은 사람이나 아닌 사람이나 모두 동물에 대한 인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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