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훤

삼국통일의 꿈을 꾼 남자

후삼국시대를 열면서 초반에 가장 세력이 강했던 사람이 있다. 아버지는 농민군 출신의 장군 아자개(阿慈介)이며, 상주 가은현(加恩縣, 지금의 문경)에서 태어났다는 꿈이 컸던 농민의 아들 견훤이 태어난 곳은 어딜까. 문경의 한적한 마을에 있는 견훤 유적지는 견훤이 태어났다는 설화가 내려오는 금하굴이 있다.


"옛날에 한 부자가 광주 북촌에 살았는데 딸이 한 명 있어 외모가 단정했다. (그 딸이) 부친에게 이르되 매양 자주색 의복을 입은 남자가 침실에 와서 교혼(交婚)한다 했다. 부친이 '네가 긴 실을 바늘에 꿰어 그 남자의 옷에 찔러두라'라고 했다. (그 딸이) 그리했던바 날이 밝아 실을 찾아보니 바늘이 북쪽 담 아래의 큰 지렁이 허리에 찔려 있었다. 그 후 임신이 되어 한 사내아이를 낳으니 나이 15세에 자칭 견훤(甄萱)이라고 했다. - 《삼국유사》 권 2, 〈기이〉 2, 후백제 견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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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에 의해 백제가 멸망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 통일신라는 신분제의 한계로 인해 내부로부터 무너지고 있었다. 나라가 멸망할 때 그렇듯이 신라의 지배세력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비장의 위치에 있던 견훤에게 모여 세력을 형성하였고 892년(진성왕 6)에 무진주(武珍州), 지금의 광주(光州)를 공격해 차지하고 나라를 세울 기반을 다지게 된다. 금하굴이 있는 견훤 유적지는 경북 문경시 가은읍 갈전리 1037-11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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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게 눈이 내린 길을 발자국 내면서 걸어가는 것은 매번 의미가 남다르다. 마을 사람 두세 명과 개 한 마리가 먼저 눈을 밟고 지나갔다. 삶에서 내가 원하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삶보다 더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기에 구차하게 삶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오직 어진 사람만이 삶보다 간절히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으며 잃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견훤은 어떤 꿈을 꾸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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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에 내린 하얀 눈보다도 그동안 떨어진 노란 낙엽이 황금색으로 물들어 있어서 오랜 고택을 더 빛나게 해주는 것 같다. 이곳에서 태어난 전라도에 자리 잡은 견훤은 920년(태조 3), 견훤이 군사 6만 명을 이끌고 대야성을 다시 공격해 함락하고 그 일대를 점령하기도 했지만 물러나게 된다. 927년(태조 10)에 경주로 쳐들어가 견훤은 술에 취한 경애왕을 죽이고 왕비를 욕보인 후 신라 왕족인 김부(金傅)를 왕으로 세웠다. 그리고 신라를 지원하기 위해 들어온 왕건의 부대를 크게 물리쳤다. 왕건은 여기서 자칫 목숨을 잃을 뻔했으나 신숭겸(申崇謙) 등의 희생으로 겨우 달아나 목숨을 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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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하굴 옆에 있는 정자는 금하정으로 금하의 이름을 그대로 딴 금하정은 순천 김씨 의관 호 하은 휘 태영공이 선군에게 지어 올린 효정이라고 한다. 최근에 지어진 것으로 기사(1929) 갑년에는 선군의 뜻을 새겨 정자 한 채 지어 올리며, 금하정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신라의 도읍과 왕실까지 유린하고 고려 태조의 목숨까지 위협했던 후백제는 한창 세력을 확장하던 때의 영광을 다시 찾지 못하고, 936년(태조 19)에 멸망하였다.


견훤에게는 열 명이 넘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견훤은 기골이 장대하고 지략이 뛰어난 넷째 아들 금강(金剛)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다. 그러자 세 형 신검(神劒), 용검(龍劒), 양검(良劒)이 반발해 반란을 일으키면서 결국 후백제 역시 통일신라의 폐단을 답습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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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하굴은 견훤의 어머니에게 밤마다 찾아왔던 큰 지렁이가 살았다는 동굴이다. 1000년에 훨씬 넘었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에 얽힌 전설과 그 물리적 흔적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문화가 가진 흔적이다.


신라의 잘못된 점을 개혁해 새로운 이상적 나라를 구현하지 못하고 그대로 답습함으로써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게 된다. 큰 꿈을 가지고 왕이나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해서 귀하게 된 것은 아니다. 귀하게 되고 싶은 것은 사람마다 공통된 마음이지만 그 귀함이 자신의 몸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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