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절
정절의 상징은 전국에 많이 남겨져 있지만 보령에 있는 도미부인 사당의 주인공 도미부인만 한 것도 드물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도미부인의 정절이 남성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쉽게 느껴지는 것 같다. 어쨌든 간에 도미부인 사당이 있는 곳은 보령의 자연을 볼 수 있는 곳이어서 시간 내어 한 번쯤은 들러볼 만한 공간이다.
눈이 올 때는 이곳까지 차가 올라오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밑에 차를 세우고 걸어 올라오는 것이 좋다.
“백제 사람 도미(都彌)의 아내는 용모가 아름답고 절개가 곧기로 이름 높았다. 백제 4대 개루왕(재위 128∼166년·21대 개로왕이라는 설도 있음)이 도미의 아내를 탐하자, 그녀는 계집종을 단장시켜 대신 왕을 모시게 했다. 뒤늦게 알고 분노한 왕이 도미의 두 눈을 멀게 하고 작은 배에 태워 멀리 쫓아버렸다. 왕의 눈을 피해 나루터로 달아난 도미부인이 서럽게 통곡하자 배 한 척이 뭍에 닿았다. 천신만고 끝에 남편을 다시 만나 죽을 때까지 함께 살았다.”
도미부인 사당의 문이 마침 열려 있었는데 만약 닫혀 있을 때는 왼쪽의 열린 공간으로 들어가서 볼 수 있다. 예로부터 정절이 높은 여자들은 미모가 상당하였다. 미모가 평범하면서 정절을 지켰다는 이야기는 별로 들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정절사 안쪽에는 도미부인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실제 도미부인을 그렸는지는 모르지만 백제 여성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렸다고 한다. 왕이 천한 백성의 아내를 차지하기 위해 애쓰다가 끝내 실패했다는 것이 사실이지는 않을 것이다. 요즘에 말하는 기득권층의 적폐에 대항했던 하층민의 삶이 투영되었던 것이 아닐까.
「미인도(美人島)」(원래 이름은 「빙도」), 「도미항」, 「상사봉(想思峰)」, 「원산도(怨山島)」 등 도미 설화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지명이 자시(自市)에 남아 있음을 근거로 보령시는 보령 근거설의 말하고 있다. 도미부인에 대한 이야기는 조선시대의 '상감행실도'에서 편찬물에 「미처담초(彌妻啖草)」라는 제목으로, 그림을 곁들인 이야기로서 수록되어 전해지기도 한다.
도미부인의 설화가 백제의 2대 왕인 개루왕인지 21대인 근 개루왕 때인지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여성의 선택권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정절사를 보고 오른쪽으로 나오면 묘가 있는데 이곳은 보령시가 도미부인과 관련된 관광지를 개발하면서 1994년에 도미부인 사당인 ‘정절사(貞節祠)’를 세우고 2003년에는 경남 진해의 도미 총을 보령으로 이장하여 도미 부부 합장묘를 조성하면서 만들어졌다.
도미부인 사당 옆에는 도미부인 묘도 있다. 도미부인 이야기를 접하고 나니 철학자의 말이 생각난다.
"남성은 인간으로 규정되고 여성은 여자로 규정된다." - 시몬 드 보부아르 (1908 ~ 1986)
보령이 산천이 한눈에 펼쳐지며 멀리까지 충남의 산과 언덕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역의 철학은 구전되는 전통에서 비롯이 된다. 문헌기록을 바탕으로 수행되기도 하지만 일상적 상황 속에서 대를 이어 내려오는 지역 사람들의 사상과 행동은 또 다른 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