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의 배고픔을 해결한 조엄
대표적인 구황작물이면서 지금은 간식으로 많이 먹지만 고구마는 조선 백성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었던 작물로 조선시대 관리인 조엄이 일본에서 가져왔다. 국내에서 많이 생산되는 곳으로 인천 강화, 전북 익산, 전남 해남이 있고 그곳이 아니더라도 전국의 대부분의 밭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먹어볼 수 있다. 원주에 가면 문익공 조엄의 묘와 기념관이 있는데 그곳에 가면 백성을 생각했던 조엄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명서(明瑞), 호는 영호(永湖). 조중운(趙仲耘)의 증손인 조엄은 1719(숙종 45)∼1777(정조 1).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1738년(영조 14) 생원시에 합격한 후 1752년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면서 지평·수찬·교리 등을 역임하고 동래부사·충청도 암행어사를 거쳤다가 1758년에 이례적인 승진으로 경상도 관찰사에 임명되었다.
문익공 조엄은 경상도 관찰사일 때는 한전(旱田)에 대한 감세(減稅) 비율을 적용, 전세 부담을 줄이기도 하고 토호세력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공채(公債) 30여만 냥을 일시에 징수하는 등 적폐(積弊)를 해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조를 왕위에 올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홍국영의 무고를 받아 파직된 후 유배되었다가 결국 김해에서 병사하였다.
이곳에 남겨진 조엄의 흔적은 일본에서 가져온 것이 많다고 한다. 문장에 능하고 경사(經史)에 밝았을 뿐만 아니라 경륜(經綸)도 뛰어났던 그는 민생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특히 창원의 마산 창(馬山倉), 밀양의 삼랑창(三浪倉) 등 조창을 설치, 전라도에까지만 미치던 조운을 경상도 연해 지역에까지 통하게 하여 세곡 납부에 따른 종래의 민폐를 크게 줄이는 노력을 했다.
여기까지는 그냥 일반적인 좋은 모범의 관리의 모습이라면 문익공 조엄이 새롭게 느껴진 것은 바로 통신사로 일본에 갔을 때 고구마를 보고 백성들의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는 점이다. 고구마는 제주도에서는 고구마를 조저(趙藷)라고 부르며, 고구마라는 말 자체가 그가 지은 『해사 일기(海槎日記)』에서 일본인이 이를 ‘고귀위마(古貴爲麻)’라고 부른다고 기록한 데서 유래되었다 한다.
조엄이 태어난 시기는 임진왜란의 상처가 아물었던 때로 일본과의 관계가 안정적이면서 기존의 조선통신사들이 문화적으로 우월하다는 화이론적인 사고로 일본인들을 아래로 보고 있는 반면에 그는 객관적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영조 재위 당시 오랜 기간 평화가 유지되었다고 조선의 백성들은 굶주림에 죽는 것이 일상다반사였다. 도토리, 솔잎, 칡뿌리, 소나무 껍질로 연명하였다. 화이론적인 사고로 본다면 일본은 저 아래로 볼 수밖에 없었지만 실용주의 사고를 가지고 있었던 조엄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이나 상업을 눈여겨보았다.
백성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조엄은 고구마의 숨겨진 가치를 보고 생태, 맛, 저장법, 재배법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물론 그 전에도 통신사들이 일본에서 고구마를 보았지만 별로 눈여겨보지 않았다고 한다. 이곳에 있는 한사빙래도는 흥정사의 허락을 받아 만든 복제품이다.
일본에는 조선의 다양한 기록들이 남겨져 있는데 이 책은 한객인상필화로 지금의 오사카인 나니와의 관상 니야마 다이호가 조선통신사 일행의 관상을 보여주며 받은 필담을 정리한 책이다.
현대인들에게는 다이어트 식품이면서 여러가지 효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이것만을 먹는 사람들도 있지만 고구마는 구황작물로는 좋은 농작물이면서 재배하기가 쉽고 수확량이 많아 서민층에게는 좋은 대용식품이 될 수 있었다. 조엄은 일본에서 가져온 고구마를 봄 파종기에 절영도(오늘날의 영도) 봉래산 동쪽 해안지대 야산에다가 이 종자를 심어 처음 재배한다.
"봄에 양지바른 곳에 심었다가 넝쿨이 땅위에 올라와 조금 자라거든 넝쿨의 한두 마디를 잘라 땅에 붙여 흙을 덮어주면 그 묻힌 곳에서 알을 안게 되는데, 알의 크기는 그 토질의 맞고 안 맞음에 달렸다. 잎이 떨어지고 가을이 깊어지면 그 뿌리를 캐서 구덩이를 조금 깊이 파고 감저를 한층 펴고 흙을 두어 덮고 다시 감저를 한층 펴보, 또 흙을 덮어 다지고, 이렇게 하기를 5,6층 한 뒤에 짚을 두텁게 쌓아 그 위에 덮어 비바람을 막아 주면 썩지 않는다. 또 봄이 되면 다시 위와 같이 심는다고 한다." [해사일기]
조엄 기념관에서 조금 더 걸어서 위쪽으로 올라오면 조엄의 묘가 있다. 고구마는 원래 멕시코의 유카탄반도지역과 베네주엘라 오리노코강 하구지역 사이가 원산지로 적어도 2,000년 이상 인간에 의해 고구마가 이용되었으며 콜럼버스가 유럽에 전파한 이후 아프리카와 아시아로 전해지게 된다. 스페인 탐험가들의 으해 필리핀에 전파되고 포르투갈 사람에 의해 말레이시아군도에 전달되었으며 일본으로 전달된 것은 1723년이라고 한다.
문익공 조엄이 누군가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땅에 전파된 고구마는 지금은 모든 사람이 먹고 있다.
"정조 22년 (1798년) 11월 30일 정조가 신하에게 고구마 심는 일에 대해 언급하며 각도에 심기를 권장하는 전교를 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