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 기획전
개관 30주년을 맞이한 독립기념관에는 뜻깊은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겨레가 하나 되고 부당한 것에 대항하는 조직적인 행사가 개최되었던 1919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곳이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 민족이 독립을 위해 하나가 되었던 그날의 함성과 열정을 느껴볼 수 있었다.
누구나 다 아는 운동이며 그들의 운동은 일제 강점기에만 끝난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지배하려는 강자에게 저항하는 삼일운동은 한민족의 혼을 상징한다. 이 땅에 사는 국민 중 일본의 편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 중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공간에 모여서 목소리를 냈다.
1910년 일제는 한반도를 지배하기 위해 식민통치 기구로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한반도에 대한 입법이나 행정, 사법에 대한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유가 박탈되고 일제의 지배에 의해 국민들의 반일 감정이 고조되던 중에 상징적으로 남아 있던 조선의 왕 고종황제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다.
지금도 수많은 단체가 있지만 서로의 목적에 부합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단체가 결성되던 시기는 1910년으로 대한독립의군부, 대한광복회, 조선 국민회 등 비밀결사와 함께 해외에서는 대한광복군 정부, 경학사, 신한 청년당, 대한인국민회, 대조선국민군단 등의 독립운동 단체가 조직되었으며 독립에 대한 염원과 군자금 마련을 위한 활동을 전개해나갔다.
중국에서 1919년 2월에 독립운동가 39명의 명의로 중국 지린에서 발표한 대한독립선언서를 비롯하여 1909년 미국에 흩어져 있던 한인 독립단체인 국민회 이사회 등이 동포의 친목과 독립운동 지원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3월 1일 오후 2시 민족대표들은 서울 종로의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였으며 같은 날 탑골 공원등에서 학생들이 시민들과 모여 민중대회를 개최하였다. 삼일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자 일제는 경찰과 군대를 동원하여 시위를 탄압하였으며 많은 참가자들이 무차별적으로 억압되었고 가담자들은 고문받고 투옥되었다.
천안의 유관순 열사의 복원된 집에 가보면 태극기를 만들던 장면이 재현되어 있다. 말로만 하는 것은 의미가 약하지만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선언서는 공식적으로 무언가를 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의 의지대로 살 권리 그리고 이 땅의 사람으로 자주를 지킬 것을 가질 권리를 외쳤지만 1919년의 염원은 오랜 시간이 지난 1945년에 실현이 된다.
태극기는 한민족의 혼이 이어진 상징이다. 오랜 시간 이 땅에 여러 국가들이 있어왔다. 그 과정에서 태극은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뜻을 간직해 왔다. 우주 만물의 생성·소장(消長)의 이치가 숨어 있고, 조화와 상생의 원리가 함축되어 왔다. 이태극은 태극기에 그려진 것처럼 바람개비 모양의 양의(兩儀)가 원상 안에서 상하로 상대하며 회전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위쪽에 있는 것이 양의(陽儀)이고 색은 적색이며, 아래쪽에 있는 것이 음의(陰儀)이고 청색이다.
"1919년은 당시의 젊은이와 늙은이들에게 진 커다란 빛을 잊지 마오.
국민은 불의에 항거해야만 하고 목숨을 버려야 만 할 때가 있다.
그럼으로써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고 광명을 찾을 수 있다."
- 스코필드
전 세계는 근대화 과정에서 열강들에게 땅이 지배당했다. 영국에 지배를 당하고 있던 인도, 역시 영국에 지배를 받고 있던 이집트, 프랑스에 지배받던 베트남, 일본에 이권을 강제로 양도당한 중국과 미국에 지배당하고 있던 필리핀은 한반도의 삼일운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최소한의 자극의 세기를 ‘역치(閾値)’ 또는 ‘문턱 값(threshold)’이라고 한다. 역치 이상의 강한 자극이 지속적으로 주어지면 감각 기관의 민감성이 변화되어 역치가 상승하므로 감수성이 둔해져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게 되는데 이를 ‘순응(adaptation)’이라고 한다. 한민족은 일제의 압박과 자극에도 굴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았던 민족이다.
독립을 위해 모두가 하나가 된 그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겨레의 뜨거운 함성이 있던 그 중심에는 삼일운동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