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불의 염원이 담긴 사천 매향비
기원하는 일과 바라는 일은 같으면서 다르다. 기원하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면서 지금은 오지 않을 그런 때를 기다리는 것이고 바라는 것은 인간 생애에서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길 원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 사천군 홍사리의 남해고속도로 부근에 가면 일찍이 1970년대에 발견된 사천 매향비가 있다. 국가지정 보물 제614호가 무색하게 외진 곳에 있어서 이 지역에 사는 사람이 아니고는 잘 알지 못하는 흔적이다.
고려 말 우왕 13년 (1387년)에 사천에 사는 지방민 4,100명이 모여 세운 사천 매향비는 당시의 인구를 고려하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만든 것이다. 사천에는 이순신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한데 그만큼 왜구가 이곳을 빈번하게 찾아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순신의 바닷길이 코스별로 만들어져 있는데 2코스인 최초 거북선 길부터 4코스 실안노을길과 거북선을 숨겨주었다는 사천 대방진 굴항도 사천에 있다.
매향 의식에서 사천 매향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크다. 대부분 비문의 글자가 워낙 적어서 세워진 전모를 알기가 힘들뿐더러 왜 하필 매향으로 집단적 기원을 담았는지 알기가 힘들다. 그러나 사천 매향비에는 당시의 이야기가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어 당시 사회상을 알 수 있다.
지금 이곳으로 가는 길은 한참 공사 중이라서 먼지를 풀풀 날리며 접근해야 하는 곳이다. 산기슭 농로와 논 사이의 도랑의 누각 속에 사천 매향비가 모셔져 있다. 매향비는 검은 빛 도는 장방형 화강암 자연석에 만들어져 있다.
이 매향비의 바위 앞면에는 음각으로 204자를 새겼는데 탁본에 의하면 제4행 6자를 제외하고 해독이 가능하다. 홍 사리 입구의 가산리는 가산오광대가 유명하다. 가산리는 조선 말기까지 조창(漕倉)이 있었던 곳으로 7개 군의 조곡(租穀)을 징수하여 제물포로 운반한것들은 이 탈놀이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가산오광대는 1960년 마지막 놀이를 한 뒤 중단되었다가 1971년 대사를 채록하고, 1974년에 재연한 이후 1980년에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 매향비의 서두의 비제(碑題)는 ‘천인결계매향원왕문(千人結契埋香願王文)’으로 4,100명이 모여 침향목(沈香木)을 묻어서 미륵불(彌勒佛)이 당래(當來 : 마땅히 올 때)하여 용화삼회(龍華三會 : 미륵이 성불한 후 중생을 제도하는 법회)하기를 기다려 대원(大願)이 이루어지도록 기구하는 내용이 있다. 침향이란 참나무를 베어 바닷가에 묻어서 천년이 지나 침향이 된다 하였다. 이렇게 먼 장래를 기원하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