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의 매력

경산시립박물관에서 만난 경산

경산시라는 곳에 대해 사실 많이 아는 것은 없다. 그러나 어떤 도시를 알기 위해서 가장 쉬운 방법은 박물관을 찾아가는 것이다. 경산 역시 시립박물관이 있는데 경산이 어떤 곳인지 어떤 역사와 인물들이 배출되었는지 잘 보여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대구의 위성도시로만 알려진 경산시는 경상북도 근처에 거주하는 사람들 외에 제대로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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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경산이라는 곳을 보면 대구와 포항, 울산, 부산, 경주 등을 가는 길에 거쳐가는 지역이다. 경산은 백악기에 형성된 경상계 퇴적암이 대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양읍 은호리에서 발견된 스트로마롤라이트는 지구 상 생물 가운데 가장 역사가 오래된 화석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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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면 저런 지도를 가지고 어떻게 지역을 찾아갔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지리지로 본 조선시대의 경산은 읍지가 편찬되면서 기록이 있는데 1849년 ~ 1851년 사이 경산 현령으로 있었던 강희영의 '옥산문첩'과 1888년 현감이었던 오홍묵의 일록인 '자인총쇄록'을 통해 기록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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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그릇의 일종인 분청사기는 오늘날 매우 귀중한 대접을 받고 있다. 전국의 흙이 좋은 곳에는 도자기 가마들이 있었는데 경산 역시 산전리 분청사기나 흑산동등에서 분청사기들이 출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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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책 중에 하나가 맹자다. 맹자 역시 과거를 보기 위해서는 필독서중 하나였다.


"인은 사람의 마음이고 의는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을 내버려 두고 따르지 않으며 그 마음을 잃어버리고 찾을 줄을 모르니, 슬프도다. 사람들은 닭과 개를 잃어버리면 찾을 줄을 알면서도 마음을 잃어버리고는 찾을 줄을 모른다. 학문하는 방법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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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8년에 간행된 '경산현 읍지'에 따르면 "경산현 서쪽 7리 위치에 있다"는 경산 사직단이 있다. 사직단은 땅의 신인 사와 곡식의 신인 직에게 나라와 백성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인 사직제를 지내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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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에서 여러 불상들도 나왔지만 가장 대표적인 불상은 팔공산 관봉 정상 바위 위에 조성된 여래좌상인 관봉석조여래좌상으로 일명 '갓바위 부처'라고 불린다. 전체적으로 볼륨감이 있게 조성된 석불은 굳은 얼굴과 굵고 짧은 목, 불거진 어깨와 가슴을 가졌는데 다른 여래상과는 달리 강하고 굳은 의지를 가진 불상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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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를 쓴 일연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인물이 지금의 경산인 장산군에서 태어난 것은 알지 못했었다. 일연은 원나라 간섭기 고려 불교계를 주도한 스님으로 1283년에 스님으로는 처음으로 국존의 지위에 올랐으며 우리나라 고대문화 연구의 기본이 되는 삼국유사를 지었다. 삼국유사에는 단군 신화를 비롯해 많은 신화와 향가 등이 담겨 있으며 우리 미술 연구와 역사, 지리, 언어, 종교, 문학, 고고학 등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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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의 일연뿐만이 아니라 원효대사도 경산의 압량군에서 태어났는데 원효는 당나라로 유학을 갔다가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시고 "진리는 결코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터득하고 다시 신라로 온 일화로 유명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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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에 가서야 생소한 압독국이라는 고대국가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경산지역에 자리한 압독국은 중국 전국시대 연나라 계통의 철기를 보유했던 유이민 집단의 국가였던 것으로 추측이 된다. 고대국가가 그렇듯이 무덤의 체계가 완성될 때 권력이 완성이 되었다. 덧널무덤이 축조되기 시작하는 기원후 2세기 중엽부터 다양한 철제 농기구와 무기, 장신구를 가진 세력이 발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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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자원이 풍부한 곳이 아니지만 경산 역시 소소한 볼거리가 있는 곳인 듯하다. 아직은 경산지역에 있었다는 고대국가인 압독국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저습지였던 임당유적에서는 물과 습기가 외부의 공기를 차단해서 토기, 목기, 골각기, 철기, 석제품 등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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