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녀유혼 (倩女幽魂)

왕조현의 전설적인 영화

아무리 생각해도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명백하게 갈리는 부분이 있다. 아무리 남자 같은 성격을 가진 여자라고 해도 여자는 여자고 아무리 여성적인 성격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남자는 남자다. 남자는 단순하고 여자는 복잡한 것 같지만 때론 남자가 더 복잡할 때가 있고 여자가 더 단순할 때가 있다. 오로지 자신 역시 단순하다고 표현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지 자신이 단순하기 때문이 아니다. 상대방은 그냥 복잡하다. 왕조현이 20살에 출연한 천녀유혼은 홍콩뿐만이 아니라 한국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은 영화다.

중국 땅이 큰 덕분일까? 중국에는 온갖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그 이야기를 집대성한 것이 포송령의 요재지이라는 책이다. 세 권으로 된 두꺼운 하드커버에 수백 개의 이야기가 있는데 거기에는 천녀유혼의 뼈대가 되는 이야기도 있다. 영화관은 생각지도 못했던 그때 비디오방에서 빌린 천녀유혼 1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자에 대한 매력이 무엇인지 제대로 가르쳐준 영화였다. 몇 번 빌려서 수십 번을 보다가 결국 카세트로 녹음해서 그 장면을 상상하면서 500번쯤 반복 재생한 기억이 있었다. 덕분에 중국어 대사를 거의 외웠던 기억이 난다.

천녀유혼의 스토리는 많은 분들이 알다시피 남루한 행상으로 수금을 하러 다니던 녕채신(Ning Tsei-Shen : 장국영 분)은 장부가 젖어 지워지는 바람에 착수금은 커녕은 돈이 없어 하룻밤 숙박도 해결을 못할 지경에 이른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어느 장의사가 가르쳐준 난약사(蘭若寺)라는 오래된 절로 찾아간다. 그러나 이곳 난약사에 사는 귀신은 미모의 귀신이 남자들을 유혹한 뒤 기를 빨아먹는 나무의 대모가 살고 있었다.

천녀유혼은 손에 잡히지 않는 사후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그려내어서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다가 귀신까지 아름답고 서생인 영채신은 평범하기 그지없다. 즉 거지 왕자 스토리 같은 느낌? 여기에 무술을 잘하는 연적하를 등장시킴으로써 막강한 요괴로부터 인간을 지켜줄 수 있다는 마지막 보루를 남겨 놓는다.

자신이 상상하던 여인을 그린 그림 하나쯤은 집에 간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녕채신은 이 그림이 무척 탐이 났다. 영화 속의 섭소천은 녕채신에 비하면 매우 강자 축에 속한다. 자유롭게 비행을 하고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하늘거리는 옷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다. 그러나 녕채신에게 보일 듯 말듯한 힘만 보여주고 나머진 가녀린 여자의 그것이었다. 여자란 저런 존재구나. 할 수 있으면서도 남자를 위해 남겨두는 여지를 두어 남자의 몫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천녀유혼의 의상들은 화려하기가 그지없다. 원색 위주로 사용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은 느낌이다. 게다가 살짝 손을 턱에다가 올리는 동작들은 오글거린다기보다는 정말 포즈가 잘 어울린다. 당시 20살의 왕조현의 연기는 20살 답지 않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데 눈빛 연기부터 시작해서 강한 캐릭터까지 잘 소화할 수 있는 그 이면에는 하늘거리는 보라색, 흰색, 분홍색 등의 고운 자태의 옷이 한몫을 단단히 해낸 것도 있다.

섭소천이 사라질 때 나오는 음악인지 귀신의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머릿속에 흥얼거림이 왔다 갔다 한다. 왕조현이 등장할 때나 퇴장할 때 나오는 음악과 살짝 들려오는 허밍음은 천녀유혼의 백미다. 사라질 때마다 가슴이 찌릿해지는 그 당시의 느낌은 마치 녕채신으로 빙의한듯한 느낌마저 들게 만든다.

장국영이라는 배우가 연기한 녕채신은 가난한 서생의 이미지를 제대로 살렸다. 가난하고 힘없고 여리지만 여자의 보호본능을 일으킨다. 어떤 강한 남자도 부족한 부분이 있다. 인간사가 묘한 것이 한 사람을 절대 완벽하게 만들어 놓지 않는다. 무언가 재능을 많이 준 것 같은 사람도 어딘가가 부족하게 만들어서 반쪽을 찾게 만든다. 그 반쪽을 가슴이 아닌 눈으로 찾다 보니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게 된다.

영화 속에서 여성의 매력을 이만큼 잘 살린 영화를 찾아보기도 힘들다. 사랑에 대한 보편적인 감정과 귀신의 모습을 아름답게 챠색한 영화 천녀유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