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판단

국민이 원하는 사회

최근 이재용의 판결이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판결의 요지는 이렇다. 이재용의 죄가 있기는 하나 뇌물을 강요당한 입장에서는 피해자이기에 그 죄가 이해할만하여 석방한다. 아주 재미지고 희한한 논리다. 뇌물을 주는 사람은 잠재적인 피해자이기 때문에 그걸로 인해 충분히 공정하지 않은 경쟁에서 압도적인 우위에 있을지라도 그런 권한을 주는 사람에 비해 약자이기에 납득할 하다는 논리다.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왜 전화를 하고 밥을 사고 심지어 접대까지 할까. 특별하게 잘 봐달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특별하게라는 말은 동일한 조건이라면 아니 동일하지 않더라도 손을 들어주어 일을 따던가 법적/행정적인 것을 잘 풀어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람 사는 사회는 온전히 깨끗할 수 없으니 그럴 수 있다 치자. 그렇다면 법은 어떨까. 법을 해석하는 법관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까.


공격하는 입장에 있는 검사와 방어하는 입장에 있는 변호사가 있어서 아무리 법리적으로 해석을 잘하는 원고 혹은 피고가 있다 하더라도 법률적인 조언을 해주고 문서를 써주는 사람은 필요하다. 이는 재판정에 앉아서 판결을 하는 판사에게 논리적이면서 법리적으로 말이 되는 이야기를 해야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걸 해석하는 사람이 한쪽으로 쏠릴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의 판결들을 보면 사법의 독립성이 의심받을 만한 적지 않은 판결들이 나오고 있다.


뇌물을 주는 사람을 과연 피해자라고 볼 수 있을까. 피해자라고 하면 가해자가 존재해야 한다. 가해자는 무언가 혜택이나 이득을 주는 존재가 아니다. 가해를 가하여 금전적 신체적 손실을 준 사람을 의미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가해자가 누구인지 정도는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관계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삼성이 그것으로 인해 얻은 이득이 훨씬 커 보인다. 손실보다 이득이 큰 피해자가 존재할 수 있을까.


이번 판결로 인해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뇌물을 준 사람은 모두 피해자로 취급될 듯하다. 김영란법도 시행된 마당에 뇌물을 주는 것이 합법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실력보다 학연과 지연을 더 쳐주는 한국사회는 여전히 변한 것이 없다. 이제 학연, 지연의 연고주의에 뇌물까지 더해지면 트리플 조건을 갖춘 한국사회로 진화를 하게 된다.


왜 법과 정의의 여신인 아스타리아는 눈을 가리고 있을까. 그것은 재판을 내릴 사람을 보지 않음으로써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가리기 위해서다. 이곳저곳의 눈치를 봐야 한다면 공정한 재판이 될 수가 없다. 만약 판사가 검사와 변호사의 문서를 보고 나서 소신 있게 판결한 것이라면 그 누구도 쉽게 비판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뇌물을 준 사람을 피해자라고 판단한 것은 백번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래간만에 재미있는 궤변을 보니 한국 사회가 생각보다 참 재미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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