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무게

흥부

글이 가진 힘을 필자는 분명히 체감하고 있다. 물리적인 힘은 한계가 있지만 글의 힘에는 한계도 그 파동의 범위도 가늠할 수 없다. 글을 잘 쓴다 혹은 잘 못쓴다로 구분 지을 수는 없지만 글의 무게는 마치 손오공위에 얹어진 관음보살의 손만큼이나 가늠하기 힘들다. 과거보다 문맹률은 거의 없어질 만큼 낮아졌지만 책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독서하는 책의 양이 줄은 것은 활자를 읽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혹은 상상할 수 있는 뇌의 능력의 부재 때문이다. 좀 더 쉽게 살고 싶다는 생각에 귀찮은 것 혹은 가치 있는 것은 조금 아니 저 멀리 뒤로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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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주혁의 유작이라는 흥부는 조선시대에서 가장 혼란하고 서민들이 살기 힘들었던 헌종 시대를 배경으로 그렸다. 보고 싶은 형을 찾아 수소문하던 흥부는 우연하게 조혁을 만나 부모 잃은 아이들을 돌보며 백성들의 정신적 지도자로 존경받는 ‘조혁’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다. 야한 이야기만을 쓰며 나름의 명성을 얻고 있던 흥부가 새롭게 탄생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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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민담 혹은 수십 가지의 판본이 존재하는 흥부전은 우리네 서민의 로또(?) 같은 삶을 말하고 있다. 악하고 착한 형제가 등장하는 선악 형제와 동물이 사람에게서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보답한다는 동물 보은, 어떤 물건에서 한없이 재물이 쏟아져 나오는 무한재보는 지금의 힘든 삶을 견뎌내면 무언가의 보답이 올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그리고 있다. 흥부놀부전은 그 선악구도가 명확하다. 욕심을 너무나 가진 자와 그 없는 삶에 익숙하지만 착한 자와의 구도는 서양이나 동양에서 익숙한 구도다. 붓 하나로 조선을 들썩이게 한 천재 작가의 삶이 더 와 닿은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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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인 맥락은 나쁘지는 않았으나 내용에서는 흥미가 떨어진다. 너무 밋밋하다고 해야 하나. 누군가를 찾아야 하고 누군가를 그것을 위해 그것을 활용한다. 천재 작가라고 하지만 그렇게 천재 같아 보이지는 않은 설정이 이 영화의 흥미를 떨어트린다. 그냥 너무 쉽게 변신하고 너무 쉽게 쓴다. 어떤 천재 작가라도 그렇게 쉽게 쓰지 못한다. 그러나 글은 사람에 따라 아주 즐겁게 쓸 수 있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어떻게 보면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그런 쾌락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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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놀부전을 넘어선 작가의 고뇌와 시대적으로 겪어야 하는 서민들의 고충을 제대로 표현했다면 이 영화가 그렇게 혹평받지 않았을 것이다. 코미디도 아닌데 코미디처럼 그렸고 내용은 진지한 그렸다. 글의 무게는 작가마다 다르다. 마음속에서 1kg의 무게를 1 ton으로 그릴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오히려 1kg를 10g 정도로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글을 쓰다 보니 모든 신문의 타이틀 기사만 보아도 어떤 의도를 가지고 사람들을 움직이려는지 너무나 잘 보인다.


글의 무게는 어떤 방향을 지향하는냐에 따라 그 무게감의 차이가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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